이 위원회는 비만치료약 개발과 상품화에 관여하는 제약회사들의 '후원' 받는 단체
비만치료 약품의 새 수요자 만들려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만든 기준 의혹 당연

덥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에 땀이 흘러내릴 정도다. 이런 무더위에 특히 괴로운 이들이 있다.
몸집이 크고 살이 찐 이들이다. 비만에는 온갖 당뇨 등 온갖 질환이 따른다 해서 거의 '질병' 수준 취급을 받는 마당에 유례없는 폭염의 습격을 받으니 더욱 괴롭다.
그런데 잠깐! '살이 쪘다'는 기준은 뭘까? 영어 단어를 소재로, 문화며 역사, 정치 등 다채로운 이야기를 소개하는 『재미있는 영어 인문학 이야기 4』(강준만 지음, 인물과 사상사)에는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우선 '비만'의 기준으로 널리 쓰이는 BMI(Body Mass Index), 즉 체질량지수라는 것이 있다. 이는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인데 19세기 플랑드르 과학자 아돌프 퀘틀렛이 고안해 냈단다. 글쎄, 그렇게 정한 과학적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체질량지수'가 비만 판정의 기준으로 쓰여 수치가 높을수록 살이 쪘다고 본다.
그전에는 어떤 내용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1955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체질량지수 기준을 개정한다. BMI 20 미만이면 저체중, 20~24이면 정상 체중, 25~30은 경도(輕度) 비만, 30이상은 비만으로 간주한다고 바꾸었다. 문제는 이 개정이 국제비만대책위원회란 곳의 '압력'을 받아 이뤄졌는데 이 단체는 비만 치료약의 개발과 상품화에 관여하는 제약회사들의 후원을 받아 운영하는 단체라는 점이었다.
WHO의 개정으로, 종래에는 '정상 몸무게'였던 미국인 30만 명이 졸지에 '정상'이 아닌 것으로 재분류되었으니 이들이 비만에 대처하는 식단, 약품의 새로운 수요자로 나섰을 것은 뻔하다. 따라서 '비만'이란 것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정해지는 것이며 거기엔 마케팅 술수가 끼어들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책은 이와 관련된 증거를 제시한다. 수지 오바크란 이에 따르면 195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는 "말랐다고요? 여름의 즐거움을 놓칠지도 몰라요!"란 선전 문구를 동원해가며 '슈퍼 웨이트온'이란 살 찌는 약을 팔았단다. 그걸 먹으면 여성들이 '건강하게 몸무게와 살집을 늘릴 수 있다'나 뭐라나 하면서.
미국까지 갈 것도 없다. 1960~70년대 우리나라에서 한창 성행했던 '우량아 선발대회'에서 뽑힌 '우량아'들을 떠올려 보자. 지금 기준으로는 대부분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아기들이어서 오늘날 부모들은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역대 최고 미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리스 신화의 '미의 여신' 비너스를 형상화한 '미로의 비너스'는 또 어떤가. 그 튼실한 몸매에 굵직한 허리를 두고 과연 '미의 여신'이라 할 이가 요즘 사람들 중에선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짜증이 날 정도로 더우니 공연히 '비만'을 두고 시비를 걸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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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