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15:25 (화)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57) 정주영과 김정일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57) 정주영과 김정일
  •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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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7.2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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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 , 대북 사업을 생각한 처음부터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담판' 강조
김 위원장이 김일성주석보다는 유연한스타일이어서 대화 편하다고 생각
북한이 신의주 공단 개발 제의 하자 정 회장"거긴 재미 없다"며 단칼 거부

정주영 회장은 탁월한 전략가였다. 대북 사업을 생각한 처음부터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담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북한에서는 김정일 없이는 아무 일도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군부나 당의 이해관계를 통제하고, 사업 속도를 올리려면 김정일과의 직접 담판이 꼭 필요했다. 그것은 자신의 스타일과도 딱 들어맞았다. 정 회장은 "김정일이 세계에서 최고 부자다. 북한 땅 전체의 주인이니까. 북한을 다 가져오면 땅값만도 얼마냐. 그러니 우리가 그걸 개발하려면 돈을 줘야지"라고 말했다.

정주영 회장은 탁월한 전략가였다. 대북 사업을 생각한 처음부터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담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북한에서는 김정일 없이는 아무 일도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동생 정신영의 대학졸업식 날 부인 변중석 여사와 촬영한 정주영.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정 회장은 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1차 대북 사업 계획이 무산됐으나 김정일 위원장의 등장으로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판단했다. 철저한 톱다운 방식인 북한 체제상 김 위원장의 결정은 여전히 절대 위력을 발휘하는 데다 김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보다는 좀 더 유연한 스타일이어서 대화하기가 편하다고 생각했다.

89년 첫 방북 후 정 회장은 정몽구 회장에게 대북 사업을 찾아 보라고 지시했다. 몽구 회장은 북한에 컨테이너 기지를 만들고, 철도나 공장을 짓는 사업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 회장은 금강산관광을 첫 사업으로 선택했다.

정 회장은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금강산은 평양과 멀리 떨어져 있어 이곳이 개방되어도 북한 정권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내 고향도 금강산이니 안 할 이유가 없다. 관광객이 들어가면 북한도 필요한 돈을 벌 수 있다. 남한 사람들도 금강산을 꼭 가보고 싶어 한다. 이 사업은 성공할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도 금강산관광이 개방에 따른 부담감도 적은데다 외화도 벌어들일 수 있고, 군부의 반발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사업으로 인식했다. 실제로 장전항 개발이나 골프장 건설도 김정일 위원장의 "도와주라"라는 한마디로 해결됐다.

개성공단 역시 판문점에서 불과 4km 떨어진 곳으로 남한 기업에 공단 부지로 내어주기 힘든 곳이었다. 북한은 처음에 신의주 공단 개발을 제의했다. 정 회장은 "거긴 재미없다"며 단칼에 거부 하고 "개성을 달라"고 요구했다. 비무장지대가 코앞인 개성에 공단을 만든다는 발상은 남과 북 누구도 하지 못했다. 북측도 처음에는 기가 막혀서 "현대 선생들, 이건 좀 이상한 거 아닙니까"라며 반발했다.

"왜 신의주가 아니고 개성입니까"라는 김정일의 질문에 정 회장은 "물건을 만들어 남쪽에 팔아야 하는데 신의주라면 불가능하다"라고 대답했다.

'신의주에서 만든 물건은 중국에 팔아야 하는데 경쟁 상품이 많다. 중국 수출은 시기상조다. 또 공단은 풍부한 전력이 있어야 하는데 신의주에는 전력을 끌어올 데가 없다. 공단에는 남쪽 회사들이 공장을 세워서 가동해야 한다. 생산된 제품들은 남쪽에서 소모되거나 제3국에 팔아야 한다. 북측은 전력 사정이 좋지 못해서 남측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으려면 가까운 장소여야 한다. 개성이 가장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 북측에서도 신의주보다는 개성이 인력 공급에서 유리할 것이다.' 대강 이런 설명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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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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