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교 교수가 1663년 작성된 서울 북부 호적을 분석한 결과, 노비가 53.3%

역사책, 특히 한국사 책을 읽다 보면 종종 울화가 치민다. 학생 시절 익혔던 교과서와는 너무 다른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다. 학교 교육이란 것이 기본적으로 '국민'을 길러내는 것이란 사실을 인정한다 해도, 잘난 사람과 뛰어난 문화 등 자부심만 잔뜩 키울 내용으로 점철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짜증을 넘어 울화를 느끼는 게 당연하다.
이를테면 조선 시대 백성들의 생존기를 파헤친 『모멸의 역사』(조윤민 지음, 글항아리)가 그런 책이다. 여길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지금 민생이 날로 위축되어 백성이 극심한 고난 속에 살고 있으니 '우리를 보살펴주면 임금이고, 우리를 학대하면 원수다'라는 말을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건 우리가 잘 아는 율곡 이이가 각 지방에서 일종의 세금으로 바치는 공물(貢物)제도를 쌀로 통일하도록 개선하자며 올린 상소 중 일부다. 책은 『조선왕조실록』을 인용해 이이가 이 상소를 선조 15년(1582)에 올렸다고 소개한다. 이것은 교과서에서 백성의 부담을 줄여주는 정치개혁의 사례로 나오며, 이이는 이른바 이 '대동법'을 처음 제안했다고 해서 그의 '10만 양병설'과 더불어 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다. 이이가 왜 그런 제안을 했는지, 백성들의 고초는 어땠는지 무시되고 말이다.
같잖은 것은 백성이 추위에 떨고 굶주리다 못해 얼어 죽는 사례까지 나왔는데 임금 선조와 문무 대신들의 행태다. 같은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임금이 경희루에서 문신들이 활 쏘는 것을 지켜보았다. 당상(堂上)에서는 홍연이, 당하(堂下)에서는 이성임이 각각 으뜸을 차지했으므로 이들에게 말을 하사하고 그 이하도 차례로 상을 내렸다." 이 역시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사실'인데 선조 16년(1583)의 일이다. 요컨대 '나으리'들은 백성의 곤궁은 아랑곳하지 않고 활 쏘기 대회 같은 것이나 즐겼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읽은 글에서 노비에 관한 외국 학자의 논문을 인용했던 부분이 떠오른다.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1663년 작성된 서울 북부의 호적을 분석한 결과, 양반 신분 호주가 16.6%, 평민 신분 호주 30%, 노비 호주 53.3%였다고 한다. 경화세족이라 해서 양반들이 대거 집중해 사는 서울의 지역적 특성을 감안하면 이를 전국에 확대 적용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이는 조선 백성의 절반 안팎이 노비였다는 것을 뜻한다. 전쟁에 승리한 전리품이거나 이민족을 사들여 노예를 삼은 것이 아니라 같은 핏줄을 이 정도로 노예화하는 나라라면 누가 이를 '우리나라'라 할까.
사서삼경 중 하나인 『서경(書經)』의 '민유방본(民惟邦本)'이란 구절을 들어 유교 정치는 오직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 보면 그런 것은 지배층의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따름이다. 이런 지배층이 비단 조선 시대에만 있었겠냐만은.
---------------------------------------------------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