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20:10 (화)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55) 북한 잠수함 기지에 '크루즈船 항만 건설'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55) 북한 잠수함 기지에 '크루즈船 항만 건설'
  •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 webmaster@econotelling.com
  • 승인 2024.06.25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산항 등 여러 곳 검토한 끝에 '장전항'으로 압축됐지만 북한 강성 군부가 걸림돌
현대 측은 장전항 아니면 금강산관광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강하게 밀어붙여
바로 보고 됐는지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도와주라" 라는 김정일의 지시 나와
정 회장, 김윤규 사장에 "5달안에 건설하라" 특명 … 장전항서 숙식하며 전력투구

금강산관광 사업의 큰 틀은 정해졌으나 실무자들이 협의할 문제가 너무나 많았다.

우선 남한의 관광객들이 금강산에 갈 방법이 없었다. 정 회장이 소 떼를 몰고 갈 때도 북한 군부의 반대가 심했는데 남한의 일반 관광객이 육로로 금강산에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금강산 인근에 공항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때 나온 아이디어가 해상을 통한 선박 관광이었다. 정몽헌 회장이 현대해상 회장답게 크루즈 선박을 통한 금강산관광 이야기를 꺼내자 북측 실무자들도 두 손을 들어 반가워했다.

하지만, 문제는 4만 5,000톤급 크루즈 여객선이 닿을 수 있는 항만 시설이 금강산 주위에 없었다.

가장 먼저 거론된 곳이 원산항이었다. 그러나 원산은 금강산과 100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다시 차로 이동해야 했다. 게다가 도로도 2차선으로 포장 상태도 좋지 않았다. 원산은 너무 멀고, 사고 위험도 있어서 대상에서 제외됐다.

남한의 관광객들이 금강산에 갈 방법이 없었다. 정 회장이 소 떼를 몰고 갈 때도 북한 군부의 반대가 심했는데 남한의 일반 관광객이 육로로 금강산에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김정일의 '도와주라'란 지시가 떨어져 장전항에 크루즈선이 정박할 수 있는 항만 건설이 추진됐다. 사진은 테니스장에서 환담하는 정주영 회장. 사진=현대차그룹.

그다음 고려한 곳이 40km 정도 떨어진 고저항이었다. 현장에 가서 보니 너무나 조그만 어항으로 크루즈 여객선이 정박할 시설을 도저히 만들 수가 없었다.

다음이 장전항이었다. 거리도 가깝고 만灣 형태여서 현대 실무자들은 대형 접안시설을 만들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장전항은 군사 시설이었다. 잠수함 기지로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강성 군부에서 절대로 용인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현대 측은 이곳 아니면 금강산관광 사업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북측 실무진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고하겠다고 했다. 바로 보고가 됐는지 모르지만,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났다. 마침내 "도와주라"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떨어졌다.

정주영 회장이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을 불렀다. "장전항 항구 공사 5개월 안에 끝내. 할 수 있지? 그래서 11월에는 금강산관광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해."

일반 사람들이 들으면 무시무시한 지시다. 국내도 아니고 북한에서 하는 첫 공사다. 중장비나 자재나 모두 남쪽에서 갖고 가야 한다. 도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왕회장의 지시를 거역 하거나 맞추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올지 뻔히 알고 있다. 정주영이 김윤규 사장을 실무 책임자로 지시했을 때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 사고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적 사고가 김 사장의 몸에도 배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김 사장은 현장소장과 함께 장전항에서 먹고 잤다고 했다. 매일 2~3시간만 자면서 공사를 진두지휘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전력을 다했다는 말로 이해한다.

사실이 그랬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다. 혹시 '리틀 정주영'으로 불린 사람들은 정말 그러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극한의 상황과 맞닥쳤을 때 초인의 힘을 발휘하는 게 정주영과, 그를 따르던 '리틀 정주영'들의 주특기였으니까.<계속> 

---------------------------------------------------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29번지 (서울빌딩)
  • 대표전화 : 02-501-63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재열
  • 발행처 법인명 : 한국社史전략연구소
  • 제호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34
  • 등록일 : 2018-07-31
  • 발행·편집인 : 김승희
  • 발행일 : 2018-10-15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5 이코노텔링(econotelling).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unheelife2@naver.com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장재열 02-501-6388 kpb1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