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한 사생활에 돈이 되는 일이라면 기생장사까지 해 '색작'(色爵)으로 불려

『화중선을 찾아서』(김진송 지음, 푸른역사)란, 참 놓치기 아까운 소설이 있다. 1920~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기생과 룸펜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역사소설인데 '역사'에 방점이 찍힌 작품이다.
이야기의 실마리가 되는 기생 화중선도 『시사평론』에 "사내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기생이 되었노라"는 내용의 투고를 한 실재 인물이고, 책 곳곳에 당대의 사실을 충실하게 재현해낸 점이 그렇다.
그러니 색다른 근대사 책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인데 여기서 대표적 친일파 송병준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송병준 백작은 원래 색마로 기생이고 침모고 행방계집이고 왜갈보고 친지인의 첩이고 할 것 없이 머리만 반반히 빗고 옷만 희끔하게 입은 것을 보면 다 주워 먹었으며…"
일제의 조선 병탄에 기여한 공로로 영화를 누린 친일파와 부호들의 첩질 행각을 꼬집은 잡지 『개벽』의 기사 중 일부다. 주석에서 문인이자 언론인인 차상찬의 글임을 어엿이 밝히고 있으니 그저 창작이 아닌 '사실'인데 어지간히 신랄한 비판이다.
아무튼 그 송병준은 기생업도 영위했다. 관의 통제와 관리 대상이었던 기생제도는 갑오경장 이후 조합 형태로 바뀌었는데 이것이 1915년부터 일본식 표현인 '권번'으로 불렸다. 이 중 경성에있던 한성권번, 대정권번, 경화권번, 한남권번, 대동권번이 기부(妓夫·기둥서방)의 유무, 예기와 창기 등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데 이 중 송병준은 대정권번을 운영했다. 권번 운영이 돈이 되는 사업이었던 만큼 세력가들이 끼어드는 것이 당연했달까.
송병준은 처음에는 자기가 경영하는 고리대금업체 대성사가 권번을 감독하는 간접 경영을 했는데 '바지사장'이던 하규일이란 이가 송의 측근과 알력이 생겨 퇴사한다. 그러자 그간 하 씨의 인물됨에 반했던 소속 기생들이 뿔뿔이 흩어져 다른 네 권번으로 옮겨버리고 만다. 기생들이 떠난 빈 권번을 지켜봐야 얻을 게 없자 송병준은 그 권리를 대동권번에 있던 홍병은이란 인물에 넘겼다.
홍병은은 일본인 나가노(長野)의 돈을 끌어들여 대정권번을 주식회사 형태로 바꾸었는데 형태는 '회사'지만 나가노의 단독영업이었다. 한편 송병준을 떠난 하규일은 연고가 있던 기생과 손을 잡고 경화권번을 인수하여 조선권번으로 명칭을 바꾸고 기업(妓業)을 이어갔으니 당시 '경성의 밤'은 그야말로 요동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종내는 이 조선권번도 송병준이 매수했다고 한다.
이용구와 더불어 한일병합에 앞장선 공로로 조선총독부 고문에 이어 1920년 일제의 백작 작위를 받았던 송병준. 지저분한 사생활에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물부를 가리지 않았으니 당대인들이 그를 호색귀족이란 뜻의 '색작(色爵)'이라 불렀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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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