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1 10:26 (금)
[김성희의 역사갈피] 일제시기 미모에 쏠린 살인사건 보도
[김성희의 역사갈피] 일제시기 미모에 쏠린 살인사건 보도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4.06.03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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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여성이 남편에게 쥐약을 먹여 살해한 사건 공판 진행되면서 샛길로
피고인이 '미인'이란 소문 나자 일부 기자들 ' 범죄형 '아니라는 엉뚱한 기사
심지어 "우리 일제히 미인을 만들어 버리세나"라고 제안하는 '기레기' 등장
1924년 여름 일제 치하의 경성은 김정필 사건으로 들끓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1924년 여름 일제 치하의 경성은 김정필 사건으로 들끓었다. 스무 살 여성이 "무식하고 못난" 남편에게 쥐약을 섞은 주먹밥과 엿을 먹여 살해한 사건이었다. 결혼 직후부터 세 살 어린 남편의 와병으로 아내로서의 권리와 행복을 누리지 못한 여성이 남편을 죽였다는 한 편의 신소설 같은 사연이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물론 지방에서 벌어진 이 사건이 처음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김정필은 청진재판소에서 열린 1심에서 남편 독살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이 남편을 죽이지 않았으며, 처음에 남편을 살해했다고 말한 것은 경찰의 폭력 때문에 거짓 자백을 한 것이라고 했다.

신문 기사는 처음에 김정필에게 그다지 우호적인 논조가 아니었다. 그녀가 평소에도 남편을 냉정하게 대했으며, 억지로 쥐약을 먹였고, 시집 오기 전부터 내통하던 정부가 있던 단정치 못한 여성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일종의 치정 살인 사건으로, '타락녀에 대한 폭로성 기사'가 주를 이뤘다.

그런데 복심 공판이 진행되면서 여론이 미묘하게 바뀐다. 김정필이 '미인'이라는 설명이 붙으면서였다. 동리에서 유명한 미인이었다는 '고향 사람'의 증언이 나오는가 하면, 재판에서 그녀를 본 방청객이나 기자들은 김정필이 남편을 죽일 만큼 사악한 '범죄형' 얼굴이 아니라는 엉뚱한 관상학을 펼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그녀는 범인이 아닐 것이라는 동정론이 담긴 투서가 판사와 검사에게 밀려들었고, 자진해서 무료 변론을 맡겠다는 변호사도 등장했다. 요즘 말로 '팬덤'이 생긴 것이다. 그녀의 재판 당일에는 방청객만 수천 명이 몰려와 근처 도로가 마비될 정도여서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방청권을 발행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런 세상 사람들의 관심과 동정 여론 때문인지 김정필은 '사형'에서 '무기징역' 그리고 다시 '12년 형'으로 감형되었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 1924년부터 그녀가 출옥한 이후인 1935년까지 당시 신문과 각종 잡지에는 그녀의 재판 과정, 방청객 반응, 복역 태도, 출옥 후 생활 등을 다룬 기사가 수십 차례 등장했다. '살인범'이라기보다 '미인 스타' 대접을 받은 셈이었다.

이건 우리 사회의 '미인 강박증'의 유래와 역사, 상황을 살핀 흥미진진한 책 『예쁜 여자 만들기』(이영아 지음, 푸른역사)에 실린 이야기다. 한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김정필이 실은 '미인'이 아니었다는 뒷이야기다. 작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이서구가 잡지 『별건곤』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재판소를 취재하던 기자들이 공판 전에 화제의 인물인 김정필을 '구경'했는데 이때 담합이 이뤄졌다. 어느 기자가 "여보게 우리 일제히 미인을 만들어 버리세나 그려"하자 누군가가 "그러세나 그려. 요새 같이 재판소 기사도 없는 때 미인이나 만들어 놓고 울려 먹세 그려"하고 받는 바람에 그날 밤 신문부터 김정필을 '절세의 미인'으로 그렸다고 한다. '기레기'는 예부터 존재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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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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