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31 01:00 (금)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25) 나귀의 그림자는 누구것인가…주인과 대리인(전문경영인)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25) 나귀의 그림자는 누구것인가…주인과 대리인(전문경영인)
  •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webmaster@econotelling.com
  • 승인 2024.05.1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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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대리인 속내 쉽게 알 수 없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 … 고양이한테 생선 맡길수도
대리인을 살피는 '사외이사제'나 동기 부여를 하는 '스톡옵션제도' 역시 감시 기능 한계
다가오는 AI시대에는 주인과 대리인의 관계가 과거와는 다르게 정립될 듯 해 흥미진진

무더운 여름날, 한 청년이 여행 중에 타고갈 나귀와 마부를 고용했습니다. 정오가 되자 햇살은 살갗을 태워 버릴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나귀에서 내린 청년은 나귀의 그림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부가 나귀의 그림자에 대해서는 자기한테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두 사람은 뜻하지 않게 언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청년이 말했습니다. "난 이번 여행길 전체를 놓고 나귀를 고용한 것이오." 마부 역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렇지요. 당신은 나귀를 고용했습니다. 하지만 나귀의 그림자까지 고용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이 서로 옥신각신하고 있는 사이에 정작 그늘을 제공하고 있던 나귀는 냅다 줄행랑을 놓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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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인 문제는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없는 주인, 또는 조직의 책임자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업무의 일부를 위임했을 때 생긴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나귀 그림자의 소유권을 놓고 나귀를 고용한 청년과 마부가 언쟁을 벌였다는 내용입니다.

그림자가 서로 자신한테 권리가 있다고 다투자 그 틈을 이용해 당나귀가 도망쳤고 당나귀가 제공했던 그늘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림자는 소유관계를 정하기 어려운 자연물입니다. 따라서 고용계약을 맺은 당사자인 청년과 마부가 한발씩 양보를 했다면 둘다 그늘 밑에서 쉴 수 있었고 더 나아가 당나귀도 도망치지 못하게 지킬 수 있었습니다. 더 좋기는 고용계약을 맺을 때 아예 그림자에 대한 소유관계도 명확히 하는 것이었습니다만 어디 거기까지 생각했겠습니까?

◇대리인 딜레마에 빠진 주인= 이솝우화의 그림자 소유권과 같은 문제가 현실에서도 일어납니다. 주인이 대리인을 고용해 어떤 일을 맡길 경우 완벽하게 파악될 수 없는 대리인의 행태로 인해 고용계약 체결 후 야기되는 주인과 대리인 간 이해관계의 불일치로 생기는 문제입니다.

흔히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대리인 문제' 또는 '대리인의 딜레마'라고도 부릅니다. 이솝우화에서 청년이 주인이고 마부는 대리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과 대리인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마이클 젠슨 교수와 로체스터 대학의 윌리엄 맥클링 교수가 1976년 발표한 논문입니다. 논문의 내용은 소유구조와 대리인 비용에 관한 것인데, 한마디로 대리인은 자신의 행태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있으나 주인은 대리인의 속내를 쉽게 알 수 없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입니다.

대리인 문제는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없는 주인, 또는 조직의 책임자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업무의 일부를 위임했을 때 생깁니다. 이솝우화에서 뜨거운 여름날 먼 길을 가는 청년이 당나귀와 마부를 고용했듯이 말이죠. 주인 또는 책임자가 해당 업무에 전문성이 부족하다든지 주인 또는 책임자가 할 수는 있지만 다른 업무가 너무 많아 손이 달린다면 다른 사람을 고용해 위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위임을 받은 대리인이 주인의 마음에 쏙 들게 일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입니다. 대리인이 열심히 업무를 해서 조직이 잘된다 해도 그 이익과 명성은 대부분 주인이 가져가기 때문에 대리인은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의욕도 생기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대리인은 주인보다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기도 합니다.

전문경영인 제도가 그렇습니다. 전문경영인이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 체제를 말합니다. 이 시스템의 장점은 경영진의 교체가 가능하고 경영의 전문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전문경영인은 소유 지분이 적기 때문에 방만한 경영으로 실적이 악화할 경우 이사회 결정을 통한 교체가 가능합니다. 또 전문성과 의욕을 가진 새로운 경영자를 지속적으로 유입할 수 있기 때문에 경영진을 효율성 높은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소유한 회사를 위해서는 남이 보지 않아도 열심히 일하지만 남의 회사를 위해서는 일할 동기가 적어지는 대리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단점입니다. 경영진이 주주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 자원을 오용하는 사례가 발생합니다. 2000년대초 미국의 거대기업 엔론의 전문 경영인이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고 급여를 더 받기 위해 회계 부정 스캔들을 저질러 회사를 파산시킨 것이 한 예입니다.

◇단돈 1원에 팔린 영국의 베어링사=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주인과 대리인 문제의 백미는 1995년 2월에 있었던 영국 굴지의 증권사 베어링사의 파산입니다. 이 사건은 닉 리슨이라는 한 청년 펀드매니저의 부정이 발단이 됐습니다. 부정이 발각되기 전까지 싱가포르 선물시장에서 리슨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거래되는 닛케이선물 거래량의 4분의 1이 그의 손에서 좌우됐습니다. 당시 그의 별명은 '트레이딩 플로어의 마이클 조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판단력을 과신했습니다. 1995년 1월 초 그는 일본 주가가 오를 것으로 보고 닛케이선물을 대거 매수했지만 1월 17일 고베에서 큰 지진이 나며 주가가 폭락했습니다.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또 다시 폭락한 선물을 매수하며 '물타기'에 나섰지만 일본 주가는 계속 폭락했습니다. 결국 그는 일본 선물 거래에서 모두 12억달러의 손해를 입었습니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리슨은 이익을 회계장부에 반영했지만 손실은 모두 비밀계좌에 숨겼습니다. 그러니 회사에서는 리슨이 잘하고 있는 줄만 알았지 내부적으로 암덩어리가 자라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베어링사는 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파산했고 마침내 1파운드에 네덜란드 ING에 매각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베어링 같은 큰 증권사도 얼마든지 한 대리인의 잘못으로 쓰러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베어링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닉 리슨이라는 대리인을 회사 측이 과신한 나머지 동시에 맡겨서는 안 될 주식 중개와 거래 결제 업무 권한을 한꺼번에 몰아준 내부 감독 체제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업이든 정부든 모든 조직에는 적절한 견제와 균형 장치가 있어야 그 조직의 건강성은 물론 생존이 보장됩니다. 훌륭한 성과를 올렸다고 견제의 제동장치마저 풀어 버리면 도덕적 해이가 생겨 그 개인은 물론 조직 전체가 헤어날 수 없는 파멸로 치닫게 됨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AI, 대리인 문제 해결사 되나?= 대리인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로 '사외이사제'가 있습니다. 사외이사제는 회사의 경영을 직접 담당하는 이사 이외에 외부의 전문가들을 이사회 구성원으로 선임하는 제도로 대주주를 견제하는 데 목적이 있지만 사외이사는 회사 업무를 집행하는 경영진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에 객관적 입장에서 회사의 경영상태를 감독하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사외이사제가 대리인 문제 해결을 위한 채찍이라면 대리인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회사주식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스톡옵션제도'는 당근입니다. 스톡옵션제도는 회사 경영이나 기술 혁신에 기여한 임직원에게 자사의 주식을 미리 정해진 가격에 따라 일정기간 내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외이사제도든 스톡옵션제도든 주인이 대리인의 행동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주인이 피고용인인 부하를 의심하고 부하는 반대로 주인을 의심하는 상황이라면 같이 일을 해 성공할 확률은 급격히 떨어집니다. 자본주의 경제학은 대리인을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완벽한 승진 제도나 성과보상 제도를 아직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계약서도 일단 서명하면 반드시 원래의 의도대로 약속을 지키게 만들지는 못 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주인과 대리인 사이에 소통과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해지는 데, 이게 그렇게 간단치는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인공지능(AI)이 등장하고 각종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며 조종사 없는 드론 전투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미래의 기업 조직에서는 이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는 모든 직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조직의 목표에 공감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기업이 더 많은 이익을 내며 성공했지만 앞으로는 뛰어난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들이 생산하고 판매하는 시대가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장의 지시에 아무런 불만도 표출하지 않고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면서 밤낮으로 일만 하는 그 기계들에게는 굳이 조직의 목표를 설명해가며 일일이 공감을 얻어낼 필요가 없게 되겠죠. 대리인이 자기의 이익에 따라 회사를 주무르고 부정을 저지르는 것도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다가오는 AI시대에는 주인과 대리인의 관계가 과거와는 다르게 정립될 듯 해 흥미진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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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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