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0 22:05 (목)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30) 초록색 갈증 뒤에 숨은 '죽음의 그림자'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30) 초록색 갈증 뒤에 숨은 '죽음의 그림자'
  •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 mksongmk@naver.com
  • 승인 2024.04.25 0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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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은 유달리 초록 염색 옷을 즐겼지만 자주 변색 돼 애태워
포도주 찌꺼기와 구리를 섞어 만든 염료는 너무 비싸 부자만 사용
비소 실험을 하던 중 변색 않는 녹색 발견해 '초록의 저주'에 빠져
인공 염료와 염색법을 둘러싼 ' 인체 유해성 ' 논란은 아직도 여전

4월의 초록이 5월을 밀어내고 '계절의 여왕' 왕좌에 등극하였다. 지구 온난화 덕분(?)이다. 이러다가 언제 3월에 그 자리를 내어줘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초록은 계절의 여왕답게 아름다울 뿐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녹색옷의 등장은 발해(A.D.698~926년)의 관복(官服)에서이다. 이후에도 고려 광종 때(960년)와 인종 때(1123년)의 <고려도경>, 그리고 1485년 완성된 <경국대전> 등에서도 관리의 공복으로 녹색(綠色)이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녹색은 낮은 계급의 복색(服色)이었다. 아마도 자연의 식물을 원료로 하여 비교적 쉽게 염색은 할 수 있었을 것이나 염색견뢰도(여러 작용에 대한 색의 견딤 정도·染色堅牢度)는 낮았을 것이다.

서양인들은 특별히 초록색을 좋아했다. 중세에 들어와 포도주 찌꺼기와 구리를 섞어서 빛깔 고운 초록 염료를 만들어냈으나, 매우 귀하고 비싸서 주로 부자들만 사용했다. '부자 되고 자식 많이 낳으라'며 녹색 웨딩드레스를 입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녹청색은 아름다웠지만 색깔이 쉽게 바래 사람들의 애를 태웠다.

독일 화학자 오이겐 루키우스(Eugen Lucius)는 녹색 인공 색소를 개발하였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1743년경에 독일의 변호사, 요한 크리스티안 바르트(J. C. Barth)가 청색 수용성 인디고 염료를 개발하면서 그 위에 황색을 가미한 녹색(Saxon green)도 등장하였다.

하지만 이 녹색도 변색이 심했던 것 같다. 이후 1770년대 스웨덴 화학자 칼 빌헬름 셸레(C. W. Scheele)가 비소 실험을 하던 중 우연히 초록을 발견하면서 인류는 변색되지 않는 '초록의 저주'에 빠져든다.

셸레는 자신이 만든 초록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러나 돈에 눈이 먼 상인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어 옷은 물론 아이들의 과자까지 초록으로 떡칠을 했다. 초록은 침묵의 살인자가 되어갔다. '돈' 앞에 귀한 생명이 스러져가게 된 것이다.

비소는 이미 16~17세기에도 적은 양을 화장수(Aqua Tofana)에 넣어 미백 화장품으로 썼다. 이뿐만 아니라 후처나 애인들이 늙은 부자 남편을 살해하고 돈 많고 젊은 과부가 되기 위해 악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도 그 초록을 좋아했다. 여왕은 온통 초록으로 꾸민 별장에서 황실 화가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러나 결국 그 화가는 죽고 말았다. 초록은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도 가장 좋아한 색이었다. 유배지인 세인트헬레나 섬의 온 집 안을 초록으로 꾸몄다가 52세에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사인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는데, 1960년 프랑스 화학자들이 사체를 분석해 머리카락과 손톱에서 다량의 비소를 검출해냈다.

비소 중독의 비극은 미국에서도 일어났다. 1862년 미국에서 처음 달러(dollar) 지폐를 만들었을 때다. 위조하지 못하도록 지워지지 않는 초록색 잉크를 사용한 것이 문제였다. 은행원들이 침을 바르면서 돈을 세다가 죽는 경우가 생겼다. 초록의 비극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세계 최초로 노벨상을 두 차례 받은 폴란드 출신 프랑스 과학자 마리 퀴리 부인이 1898년 발견한 라듐이 또 다시 '저주'를 일으켰다. 라듐은 어둠 속에서도 초록빛을 발산한다. 라듐은 단숨에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아가씨들은 어둠 속에서도 사랑의 신호를 보낼 수 있다며 손톱과 입술 심지어 치아에까지 라듐을 발랐다. 로션이나 기침약에 라듐을 섞기도 했다.

미국 뉴저지주의 한 시계 공장은 시계의 초침과 분침 그리고 숫자에 라듐을 칠해 밤에도 시간을 알 수 있는, 야광 시계를 만들었다. 이 공장의 직원들은 라듐을 정교하게 칠하기 위해 붓끝을 뾰족하게 하려고 입에 넣어 침을 발라가며 작업을 했다. 결국 50여 명의 직원이 암으로 숨졌다. 1924년 퀴리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초록색에 대한 인류의 갈증은 19세기 후반, 독일 화학자 오이겐 루키우스(Eugen Lucius)가 녹색 인공 색소를 개발하며 풀렸다. 그러나 이후 개발된 많은 인공 염료와 염색법의 인체 유해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바람에 간들거리는 저 아름다운 초록잎의 '초록' 뒤에 이런 비극이 있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유해물질들이 나타나 물불을 가리지 않는 상술과 짝하며 우리를 괴롭힐지 마음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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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혜 2024-05-04 13:08:18
공부 좀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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