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02:55 (월)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21) 위기 모면한 항해의 뒤끝---"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냐"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21) 위기 모면한 항해의 뒤끝---"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냐"
  •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sms085@naver.com
  • 승인 2024.03.14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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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는 당장 보상 원하지만 '미래의 나'는 당장의 유혹에 빠지기 쉬워
하기싫은 계획은 단기목표 정해 이를 끝낼 때마다 보상 해주면 '실행력' 커져

몇사람이 먼나라로 가 신기한 구경도 하고 무역을 해 돈벌이도 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마침내 배를 한척 장만한 그들은 장밋빛 미래에 대한 꿈을 품고서 먼 바다를 향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거센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배는 균형을 잃고 당장이라도 가라앉을 것처럼 출렁거렸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여 모두 자신의 옷을 잡아 뜯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일제히 엎드려 바다의 신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우리의 목숨과 배를 구해만 주신다면 우리가 소유한 물건들 중에서 가장 값비싸고 고귀한 것을 감사의 제물로 바치겠습니다. 부디 폭풍이 가라앉도록 해 주십시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토록 사납게 불던 폭풍이 차츰 가라앉더니 거짓말처럼 바다가 조용해졌습니다. 뜻하지 않은 위험에서 겨우 살아난 사람들은 몹시 기뻐하면서 춤을 추었습니다. 하지만 신에게 감사 기도를 드리거나 약속한 재물을 바칠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때 항해자 중 한 사람이 "여러분 제말을 들어 보십시오. 물론 위험에서 벗어났으니 모두들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언제 다시 무서운 폭풍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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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따르는 계획에 대해 단기적 성과를 부여한다면 동기를 오랫 동안 유지하고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된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배에서 폭풍을 만나 목숨이 위태로워진 항해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에게 폭풍을 가라앉혀 준다면 값비싼 물건을 받치겠노라고 기도를 올린 것은 그 절박한 상황에선 최선의 선택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때 뿐, 폭풍이 지나가자 없었던 일이 돼 버렸습니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이처럼 어느 시점에서는 최적으로 보였던 행동이 미래에는 최적이 아닌 것으로 달라지는 현상을 경제학 용어로 '시간비일관성'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새해 시작과 함께 이런저런 목표를 세우는 것은 그런 목표를 최적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새해 목표로는 운동으로 살 빼기, 저축으로 재산 늘리기, 외국어 공부하기 등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목표 달성의 의지는 흐물흐물해집니다. 어제 술 한잔 했으니 하루 쯤 쉬는 것은 괜찮아, 저축은 뒤로 미루고 일단 여행이나 갔다 와야지, 외국어는 당장 필요하지 않아···. 이런 핑계를 대며 새해 다짐을 뒤집어 버린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시간비일관성 문제가 생기는 것은 내 안에는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표를 정하는 것은 미래의 나를 위해서입니다. 미래의 내가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걸 바라는지는 알기 쉬워 별문제 없이 이를 목표로 계획을 잘 세웁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실제로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나'입니다. 목표를 실현하려면 반드시 현재의 내가 움직여야만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당장의 보상을 원합니다. 미래의 나는 운동을 해 건강하고 날씬한 몸매를 계획하지만 현재의 나는 피곤해 하루쯤 쉬고 싶습니다. 미래의 나의 건강한 몸매보다 당장의 피곤 해소를 위해 잠을 더 자는 것이 더 큰 유혹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심리적 장애물은 우리가 계획을 세워놓고 끝까지 실천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한 은행이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급여의 10%를 자동이체해 저축하는 것에 참여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모두가 동의한다는 답변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즉시 저축이 시작된다는 질문을 던졌을 때엔 오직 20%만 참여하기로 했고, 1년 뒤 저축이 시작된다고 했을 때엔 70%나 동의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저축참여율에 차이가 나는 것은 시간 때문입니다. 미래보다는 현재를 더 중시하는 인간의 속성이 부른 결과입니다. 같은 돈이라도 미래에 사용하는 것보다 지금 사용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느낍니다. 지금 당장 저축을 해야 장기적으로 재산을 불릴 가능성이 크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현재의 효용이 더 급하기 때문에 저축을 미룬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효용은 저축에 대한 이자율을 발생시키는 이유가 됩니다. 같은 돈이라도 미래에 사용하는 것보다 지금 사용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저축금에 이자를 지급해 보상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내집 마련 행태를 돌아보죠. 내집을 장만하려면 저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집값이라는 게 일, 이백만원도 아니고 수억원이 들기 때문에 어지간한 저축액 가지고는 오랜 세월이 필요합니다. 내집 마련 결심을 쉽게 하는 것은 결심을 통해 얻는 만족감 때문입니다.

저축금액이 불어나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 자신의 미래를 기대하며 뿌듯해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지켜나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축 때문에 당장 먹고 싶고 입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수 십년을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아야 하는 고통을 견뎌내기가 간단치 않습니다. 그래서 저축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쉽게 합니다만 정작 저축을 할 때가 되면 망설이거나 핑계를 대며 저축을 미룹니다. 마치 다이어트를 미루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저축을 미루면 미룰수록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예를 들어 매달 100만 원씩 10년 저축하면 이자 없이도 1억 2000만 원을 모을 수 있습니다. 수익률 3%만 잡아도 1억 4000만 원입니다. 같은 금액을 30년 넘게 같은 수익률로 굴리면 5억 8000만 원이 됩니다. 수익률이 5%라면 8억 2000만 원으로 늘어납니다. 일찌감치 꾸준히 저축할수록 수익은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인플레 잡는다며 통화량 늘려= 시간비일관성 문제는 1970년대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이론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습니다. 정책당국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정책당국이었습니다. 인플레이션 억제에 나서야 할 주체가 원인제공자이기도 했던 겁니다. 인플레이션율을 낮추려고 통화공급을 줄이다가 그 목표가 달성될 즈음에 실업을 줄이려는 유혹에 빠져 슬그머니 통화공급량을 늘렸던 것이죠. 바로 시간비일관성의 문제입니다. 핀 쉬들란과 에드워드 프레스콧이란 미국 카네기멜론대학의 두 교수는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이론화한 공로로 200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두 학자는 시간비일관성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로 정책당국이 경제정책을 단기적 혹은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래서 중앙은행이 경기침체에 그때그때 대응하기보다는 특정한 규칙을 정해 일관성 있게 추진하라는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렇다면 개인에게 나타나는 시관비일관성의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요? 사람은 현재의 내가 미래를 나를 항상 이기게끔 돼 있습니다. 즉, 같은 값이라도 미래보다 현재에 더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이 따르는 계획에 대해 단기적 성과를 부여한다면 동기를 오랫 동안 유지하고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면 운동으로 다이어트를 실천하려고 하는 데, 단 것을 좋아한다면 운동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초콜릿을 먹습니다. 하기 싫은 계획은 단기 목표를 정해놓고 이를 끝낼 때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보상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장기적인 만족감을 현재로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계획을 미루지 않고 실행하게끔 동기를 부여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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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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