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수준이 14분기 째 '위험 수위'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972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장 기간이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신용 갭은 지난해 3분기 말 10.5%포인트로 2020년 2분기 말부터 줄곧 10%포인트를 웃돌았다. 신용 갭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가계·기업부채) 비율이 장기 추세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나타내는 부채 위험 평가 지표다. 민간신용 비율의 상승 속도가 과거 추세보다 빠를수록 갭이 벌어진다.
BIS는 잠재적인 국가별 신용위기를 가늠하는 데 이 지표를 사용한다. BIS는 신용 갭이 10%포인트를 초과하면 '경보' 단계, 2~10%포인트이면 '주의' 단계, 2%포인트 미만이면 '보통' 단계로 분류한다.
우리나라 신용 갭은 2017년 4분기 말(-2.9%포인트)을 변곡점으로 상승 전환해 2019년 2분기 말(3.0%포인트) 주의 단계로 진입했다. 이후 가파르게 치솟은 신용 갭은 2020년 2분기 말 12.9%포인트로 10%포인트를 넘어서며 위험 수위인 경보 단계에 이르렀다. 2021년 3분기 말 17.4%포인트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년 뒤 2022년 3분기 말 16.8%포인트를 단기 고점으로 하락 추세이지만, 여전히 10%포인트를 웃돌고 있다. 이는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이 지난해 3분기 말 225.5%로 2020년 1분기 말(200.0%) 이후 15분기 째 200%를 웃도는 상황이 반영됐다. 지난해 3분기 말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1.5%,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124.0%다.
과거 신용 갭이 10%포인트를 넘은 경우는 드물고, 그 기간도 길지 않았다. 외환위기 때인 1997년 4분기 말(13.2%포인트)부터 1998년 3분기 말(10.5%포인트)까지, 금융위기 때인 2008년 4분기 말(10.7%포인트)부터 2009년 4분기 말(11.2%포인트)까지 등이었다. 앞서 1980년대 초반에도 두 차례 10%포인트를 넘은 적이 있지만, 이런 상황이 1년 이상 지속되진 않았다.
외국과 비교해도 지난해 3분기 말 신용 갭이 10%포인트를 초과한 국가는 BIS 조사 대상 44개국 가운데 일본(13.5%포인트)과 한국뿐이다. 태국(8.0%포인트), 사우디아라비아(2.2%포인트), 아르헨티나(1.5%포인트), 독일(0.0%포인트) 등 소수 국가를 제외하면 신용 갭이 모두 마이너스였다.
가계·기업부채에 정부부채까지 더한 우리나라 총부채 규모는 지난해 3분기 말 5988조1910억원으로 직전 분기보다 29조8614억원 증가했다. 총부채 규모는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사상 처음 60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