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05:15 (일)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20) 처녀에 눈 멀어 '이빨 뽑은' 사자와 게임이론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20) 처녀에 눈 멀어 '이빨 뽑은' 사자와 게임이론
  •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sms085@naver.com
  • 승인 2024.02.29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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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상대방 행동을 예측한 후 현재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는 방법은 게임이론의 기초
사자가 '퍼스트 무버', 농부가 '세컨드 무버'인 셈인데 순서상 대개 '세컨드 무버'가 유리
상대방의 선택을 알고 배신의 대가 혹독하거나 협력 보상이 더 많다는 판단서야 손잡아

어느 농가에 아름다운 딸을 가진 농부가 있었습니다. 근처의 숲에서 살고 있던 사자는 농부의 딸을 보고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날마다 농가 근처에서 농부의 아름다운 딸을 훔쳐보던 사자는 드디어 용기를 냈습니다. 농부를 찾아가서 딸을 달라고 간청하기로 한 것입니다. 농부를 찾아간 사자는 정중한 태도로 청혼했습니다.

"댁의 따님을 사랑합니다. 따님을 아내로 주신다면 행복하게 해줄 것을 사자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사자의 말을 들은 농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자기 딸을 사나운 맹수에 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자의 청혼을 그 자리에서 거절한다면 사자가 어떻게 나올지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농부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한참동안 고민하다 말했습니다.

"자네처럼 용맹한 사자라면 내 사위감으로 나무랄 데가 없네. 하지만 내 딸과 결혼하기 위해선 조건이 하나 있네. 내 딸은 자네의 이빨과 발톱을 두려워 한다네. 그러니까 그것을 뽑아버렸으면 좋겠네."

사자는 농부의 딸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사자는 집으로 돌아와 비장한 각오로 자기의 이빨과 발톱을 모조리 뽑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농부의 딸을 데려가기 위해 다시 농부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이빨과 발톱이 빠진 사자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고약한 녀석, 사자 주제에 감히 내 딸을 넘보다니···. 썩 물러가지 못해!"

농부에게 모욕을 당한 사자는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자는 어깨를 늘어뜨린 채 숲속으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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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상대방 행동을 예측한 후 현재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는 방법은 게임이론의 기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사랑에 눈이 멀면 눈에 콩깍지가 씐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자는 농부의 제안대로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이빨과 발톱을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빨과 발톱이 없는 사자는 종이 호랑이에 불과합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사자가 어디 믿을 만한 구석이 있다고 딸을 주겠습니까?

사자는 농부의 꾀에 너무 쉽게 넘어가벼렸습니다. 앞으로 먹이 사냥에 쓰는 이빨과 발톱도 뽑아버렸으니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이솝우화는 중요한 경제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경제학에서 가장 핫하다는 '게임이론'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이론이란 상대방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를 예측해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을 지 연구하는 경제학의 한 분야입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게임 상황은 도처에서 발생합니다. 혼잡한 도로에서 운전하는 운전자는 운전이라는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싼 값에 물건을 사기 위해 온라인 매장에서 입찰하는 사람은 경매라는 게임을 하는 것이고요. 기업과 노조가 임금 및 단체협약을 논의하는 것은 협상이라는 게임을 합니다. 정당들은 선거에서 정책과 정강을 통해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 정치적 게임을 합니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게임을 한다고 봐도 됩니다.

◇'이빨 뽑은 사자'에 숨은 게임이론= '이빨 뽑은 사자'의 이야기도 게임이론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자칫 목숨이 위태로워진 농부는 아무래도 게임이론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않고 결정권을 사자에게 넘겨 불리한 상황을 유리하게 반전시켰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게임이론으로 따져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농부 입장에서 따져보겠습니다.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경우 농부에게 세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사자에게 대들다 죽는 것, 딸을 사자에게 빼앗기는 것, 사자를 때려잡는 것이죠, 하지만 사자에게 이빨을 뽑으면 결혼을 허락할테니 이빨을 뽑을지 말지 선택하라고 결정권을 넘기게 되면 선택지가 바뀌게 됩니다.

사자에게 이빨을 뽑으면 결혼을 허락하고 이빨을 뽑지 않으면 결혼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농부는 속으로 이빨을 뽑으면 바로 때려잡고 이빨 뽑기를 거부하면 딸에게 미안하지만 결혼을 시킬 수 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선택지에서 최악의 결과인 죽는 것은 사라지게 되죠. 사자를 때려잡는 것과 딸을 빼앗기는 것이라는 선택지만 남기 때문입니다.

반면 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최선의 선택은 농부의 제안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농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않고 당장 결정하라고 선택을 종용하는 것이죠. 그러면 농부를 죽이고 처녀를 차지하든 무조건 사자에게 유리한 상황이 됩니다. 하지만 사자는 착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모자랐습니다.

농부의 제안을 받자마자 상황이 불리하게 변했기 때문입니다. 사자가 이빨을 뽑을지 말지를 스스로 선택해야 되기 때문이죠. 자신의 최대 강점인 이빨을 선택지에 놓은 실수를 한 것입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한 듯 합니다. 결국 순진한 사자는 이빨을 뽑고 결혼을 청했죠. 한마디로 농부의 전략에 완패를 당한 셈입니다. 이처럼 미래의 상대방 행동을 예측한 후 현재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는 방법은 게임이론의 기초입니다.

◇퍼스트 무버보단 세컨드 무버=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을 플레이어라고 하는데, 먼저 움직이는 플레이어를 퍼스트무버(first mover), 나중에 움직이는 플레이어를 세컨드 무버(second mover)라고 합니다. 이솝우화에선 사자가 퍼스트 무버, 농부가 세컨드 무버인 셈이죠. 게임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게임하는 순서인데, 대개 세컨드 무버가 유리합니다.

왜냐하면 퍼스트 무버의 행동을 보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둑이 그렇습니다. 서로 퍼스트 무버가 안 되려고 하기 때문에 '흑'을 잡은 퍼스트 무버에게 4집반의 덤으로 줌으로써 게임의 균형을 맞춥니다.

요즘 남북관계도 서로 세컨드 무버가 되겠다며 상대방에게 퍼스트 무버를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남한은 풍부한 경제력이, 북한은 핵무기 보유라는 이슈가 있습니다. 남한은 북한에게 핵무기를 포기하면 경제원조를 하겠다는 것이고, 북한은 경제원조를 먼저 해주면 핵 개발을 자제하겠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한은 북한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북한이 원조만 받고 핵 개발을 지속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입장인 데 반해 북한은 핵이 사라지면 이빨 뽑은 사자 꼴이 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그래서 중국 등 믿을 만한 제3자의 중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만 제3자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게임이론은 헝가리 출신 컴퓨터 과학자이자 수학자인 폰 노이만과 독익 경제학자 모르겐 슈테른이 1944년에 공저한 <게임이론과 경제 행태>가 발간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두 경기자 사이의 '영합게임(zero sum game)'을 연구했습니다. 영합게임의 본질은 게임 참가자가 서로 경쟁하고 그 결과 한 사람의 이득이 다른 사람의 손실로 귀착되는 게임입니다. 화투나 포커가 대표적인 영합게임입니다. 영합게임은 게임 이득이 패자의 손실보다 큰 '양의 합 게임(positive sum game)' 과 양쪽 모두 손실을 입는 '음의 합 게임(negative sum game)'이란 이론으로 나뉘어집니다. 양의 합 게임은 국제무역을 통해 무역 당사국 모두가 유리해지는 경우나 주식 투자에서 호황기에 투자 이익이 발생하는 경우가 해당합니다. 음의 합 게임은 전쟁, 폭력 등이 있습니다.

게임이론이 한단계 더 발전한 전기는 1994년 게임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존 내쉬에 의해서였습니다. 게임이론이 경제학에서의 여러 가지 문제, 특히 과점시장의 문제를 분석하는 틀로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게임이론은 미시경제학에서는 필수 불가결한 분석 도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내쉬는 게임이론의 모든 의사결정은 이기적 개인이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성립한다는 '비협조적 게임'이론을 주장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한테 뭔가를 주었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그에 상응하는 반대 급부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이빨 뽑은 사자'우화나 제로 섬 게임이 협조적 게임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처음에는 많은 경제학자가 내시교수의 가정을 지나친 주장이라고 비난했지만 그로부터 수십년 지난 현재는 게임이론 연구의 99%가 비협조적 게임이론이 세운 가정하에 이루어지고 있지요.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에 자산이 속한 마을이나 국가 친족 심지어 가족마저 자기 자신에 비하면 중요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마을 사람들이 협력한다는 것은 이웃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 협력함으로써 나에게 더 큰 이익이 오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겁니다.

◇게임이론 발전시킨 '내쉬균형'= 내쉬는 게임이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인 '내쉬균형'을 정립했습니다. 내쉬균형이란 간단히 말해 정보가 차단되고 여러 상황이 동시에 발생할 때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익이되는 최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전략을 예상해 여기에 대응하는 선택, 즉 차선책을 선택한다는 뜻입니다.

경쟁관계에 있는 개인, 기업, 혹은 조직들이 동시에 결정을 내리려하는 경우에 대한 분석에 초점을 맞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 참여자들 각자의 선택이 어떻게 상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역으로 상대의 전략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감안해 의사결정을 내리는지를 이론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균형'은 참여자들 모두가 상대방이 내린 선택에 대한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라고 여기는 결과에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내쉬균형에는 여러 유형이 있는데, '죄수의 딜레마'(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185페이지 참조)가 그중 가장 대표적입니다. 죄수A와 B가 있고, 조사관이 각각의 죄수와 따로 따로 취조를 진행합니다. 이 때 조사관이 죄수들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합니다.

-만약 네가 자백하고, 옆방에 있는 죄수도 죄를 자백하면 둘 다 5년 형을 받는다

-너는 자백했는데, 옆방 죄수는 부인할 경우, 너는 풀려나고 다른 죄수는 20년 형을 받는다

-반대로 너는 부인하고 옆방 죄수는 자백한 경우, 너는 20년 형을 받고 옆방 죄수는 풀려난다

-만약 둘 다 부인할 경우에는 둘 다 1년 형을 받는다

​이때의 내쉬균형은 둘 다 자백을 하는 상황입니다. 이게 차선책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내쉬균형이 언제나 최적인 것은 아닙니다. 내쉬균형에 해당하는 '둘 다 자백을 하는 경우'에는 죄수들이 각각 5년형을 받지만, 만약 둘 다 죄를 부인하는 경우에는 각각 1년형만 받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두 죄수가 자백을 선택하는 이유는 두 죄수가 서로 고립되어 전략을 공유할 수 없는 환경에 있어서입니다. 두 죄수가 서로 합의 할 수 있다면, 둘 다 죄를 부인하고 1년형을 받을 수 있겠지만, 현재는 상대가 어떤 선택을 할 지 모르기 때문에 혼자서 죄를 부인할 경우 받을 수 있는 20년형이란 최악의 경우를 피하고자 자백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수의 딜레마는 여러 분야에서 실제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군비경쟁이라든가 기후변화 대응, 환경문제, 공공재 사용 등에서 죄수의 딜레마 문제가 제기됩니다. 이들 분야의 특징은 개별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충돌한다는 점입니다. 죄수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론 우선 정보의 공유를 꼽을 수 있습니다. 죄수의 딜레마는 각자가 상대방의 선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만약 각자가 상대방의 선택을 알게 된다면 협력이 가능해집니다. 또 죄수의 딜레마는 상대방이 배신할 경우 더 많은 이익을 얻기 때문에 생기기도 합니다. 만약 배신의 대가가 혹독하거나 협력할 경우 더 많은 보상을 받게 한다면 협력이 가능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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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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