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18:00 (화)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19) 의사와 환자…뒷북 편향의 함정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19) 의사와 환자…뒷북 편향의 함정
  •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sms085@naver.com
  • 승인 2024.02.2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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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건의 결말을 안 다음에 돌아 보면 그런 결말이 당연해 보여
사후확신편향은 자신이 훌륭한 예언가라고 믿게 만들어 매우 위험
경제 전문가는 대표적 '사후확신편향자' … 너무 귀담아 들어도 독

술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술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술을 마셨으며 식사를 거르는 날도 많았다. 몇 년 동안 그렇게 생활을 했지만 그는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에는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가 그 사람의 상태를 진찰해보았다. 그 사람의 건강은 아주 나빴다. 불규칙적인 식사 때문에 위에 염증이 생겼고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간에도 이상이 생겼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병은 너무나 깊었다. 의사의 치료에도 결국 그 환자는 죽고 말았다. 의사는 자기 일을 도와주는 조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환자는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술만 끊었더라도 이렇게 일찍 죽지는 않았을 거야." 그러자 조수가 의사를 향해 대답했다.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이제 와서 그런 말씀을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살아 있을 때 그런 조언을 했더라면 돈이라도 벌 수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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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아무리 치료를 잘 하더라도 그 시기를 놓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치료도 치료지만 이 우화처럼 뒷북이나 치는 의사가 많은 게 현실이지요. 뒷북을 치는 일이 반복되면 신뢰를 잃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럴줄 알았어' 효과= 심리학에 '사후확신편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뒷북편향'이라고도 하는데, 영어로는 'knew-it-all-along-effect'라고 씁니다. '그럴 줄 알았어' 효과쯤으로 해석됩니다. 사건 전에는 알 수 없던 징조나 단서 같은 것을 사건 이후 쉽게 알 수 있는데, 이것이 판단에 오류를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어떤 사건의 결말을 안 다음에 돌아보면 그런 결말이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나 사후확신편향은 자신이 훌륭한 예언가라고 믿게 만들기 때문에 매우 위험합니다. 사람을 오만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릇된 판단을 내리도록 인도합니다.

경제전문가나 의사처럼 개인의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전문가 집단이 뒷북 진단으로 자신의 실수를 덮어버리는 경향이 강하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예를 들어 보죠. 미국 달러화 강세로 한국의 주가가 올랐습니다. 달러화가 강세면 달러화로 표시되는 한국 기업의 수출 상품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이 늘어납니다. 시장은 수출기업들의 매출 증가를 예상해 관련 주식이 상승합니다.

이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타당한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달러화 가치가 상승한다는 정보를 듣자마자 주식을 사야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글을 읽고 생각해 봅시다. 달러화 강세로 한국의 주가가 내렸습니다. 달러화 강세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미국 금리가 올라 지금처럼 국내 금리보다 높으면 한국에 투자됐던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집니다. 외국인 자금의 이탈은 보유 주식의 매도를 의미합니다. 외국인 매도세를 받쳐줄 만한 매수세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주가는 내려가게 돼 있습니다. 특히 증시가 어려울 때 외국인 매도세는 경제 전체를 흔들 수 있습니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때가 그랬습니다.

이 역시 타당하게 들립니다. 그러므로 달러가치가 상승한다는 정보를 듣자마자 주식을 팔으려고 서둡니다. 도대체 사후에는 설명하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습니다. 1996년 경제전문가란 사람들이 1997년 한국경제를 왜 그렇게 장밋빛으로 그렸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알다가 모를 일입니다. 1년 후인 1997년 한국정부는 위기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습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해 논리 정연한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한국의 재벌 기업들이 방만한 경영을 해 부실을 자초했고 정부도 외환관리를 엉터리로 해 달러 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냈다는 둥, 신용평가 기관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졌다는 둥, 은행들이 자기자본 규정을 소홀히 했다는 둥 그럴듯한 이유를 댑니다.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경제위기가 완전히 논리적이고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경제위기를 미리 경고해주지 않았을까요? 경제학자는 많지만, 그 누구도 IMF 사태의 과정에 대해 정확하게 예언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물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니 배신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경제 전문가들은 대표적인 '사후확신편향자'입니다.

경제전문가나 의사처럼 개인의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전문가 집단이 이런 뒷북 진단으로 자신의 실수를 덮어버리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런데 사후확신편향이 일반 개인한테 나타나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보이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건을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바로 불행의 시작입니다.

주식투자를 해본 사람이라면 분명 사려고 했는데, 또는 했어야만 했는데 하면서 아쉬워하는 경험이 있을 겁니다. 사후 확신편향은 대부분 투자기회를 놓치거나 수익성 높은 투자자산을 미리 처분했을 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투자자들 중에는 IMF사태 때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면 떼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시 이 회사 주가는 3만원대.

삼성전자는 2017년 50대 1의 액면분할을 단행했고 지금 주가는 7만 5000원 대이니 그동안 250배나 오른 셈입니다. 수 차례의 유·무상증자에 참여했다면 수익률은 300배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에 투자해 백만장자가 된 투자자는 지금 얼마나 있을까요. 사실 알 수 없고, 없을지도 모릅니다. 삼성전자는 잘 나가는 반도체 회사인 건 맞지만 거대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주는 어떤 정보도 없었습니다.

만일 그때 삼성전자에 투자했다고 해도 20년 동안 주가가 상승과 하락을 거듭하는 와중에도 우직하게 보유할 확률은 번개를 맞아 죽을 확률보다도 낮을 겁니다. 그런데도 이를 잘 모르는 투자자는 주가차트를 보면 배가 아프고 후회가 밀려옵니다. 사후확신편향은 속삭입니다. 한 번에 팔자를 고칠 수 있는 대박 주식을 찾아내기만 하면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요. 많은 투자자가 사후확신편향의 달콤한 유혹에 걸려들어 제2의 삼성전자를 찾아나서며 대박의 헛된 꿈을 좇느라 아까운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전문가 말 믿지 말아야= 물론 주식투자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투자의 방법이 문제일 뿐 재산을 늘리려면 주식투자는 꼭 해야 합니다. 주의해야 점은 먼저 차트 분석을 너무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차트를 자주 들여다 보면 저절로 사후확신편향에 빠지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사야 하는 데 못 샀어" 하다가 그 지점이 다시 돌아오면 매수에 들어가 덜컥 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주식 전문가의 말도 너무 귀담아 듣지 말아야 합니다.

우연이 판을 치는 주식시장에서 주가 전망은 어쩌면 무의미합니다. 누군가가 주가를 예측할 수 있다고 떠들면 "그래서 얼마나 벌었는가"라고 물어보세요. 주식투자는 시장과 거리를 두고 장기전으로 가야 열매를 딸 수 있습니다. 장기전은 투자 위험을 시간으로 녹일 수 있어서입니다. 분산도 중요합니다. 주식 50개 이상에 분산 투자한다면 전체 위험성이 60% 감소하고 장기 보유로 갈수록 그 위험성은 더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물론 아무 주식이나 사면 안 되겠죠. 실적이 뒷받침되고 전망도 밝은 회사라야 하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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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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