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03:45 (월)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46)YS와 극적 화해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46)YS와 극적 화해
  •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 webmaster@econotelling.com
  • 승인 2024.02.2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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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않았던 정주영이 대선 전에 뛰어들어 3파전이 되자 '김영삼의 심기' 극도로 불편
절친이라던 두 사람관계 틀어지고 정주영이 패퇴한 후 현대그룹에 대한 정부 압박 거세져
95년 광복절 특사로 특별사면된 후 YS와 공식 회동한 정주영 "남은 인생 국가발전에 기여"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3당 합당을 통해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김영삼은 김대중 후보와의 맞대결에서 여유 있게 승리할 걸로 예상했다.

그랬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정주영이 대선 전에 뛰어들어 3파전이 되자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이전에 정주영 회장과 김영삼 대통령은 사이가 매우 좋았다. 정 회장이 13살이나 위였고, 기업인과 정치인이라는 입장은 달랐으나 직설적이고 화통한 스타일이 비슷했다. 일부에서는 '절친'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였다.

김영삼이 평생 야당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버리고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3당 합당을 한 이유는 오직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주영 때문에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에 대통령이 되고 난 뒤 현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사진=포토뉴스.
김영삼이 평생 야당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버리고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3당 합당을 한 이유는 오직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주영 때문에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에 대통령이 되고 난 뒤 현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사진=포토뉴스.

김영삼이 평생 야당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버리고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3당 합당을 한 이유는 오직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주영 때문에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에 대통령이 되고 난 뒤 현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김영삼은 정주영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김영삼은 "1991년 말에 정주영이 당을 만든다는 소문이 퍼져 그를 두 번이나 따로 만나 물어봤는데 그때마다 '당을 만들지 않겠다'라고 확언했었다. 정주영은 사기꾼이고 거짓말쟁이"라고 몰아세웠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김영삼은 '정주영 회장이 나를 돕기 위해 국민당을 만들었다'라고 생각했다는 측근의 증언이 있다. 정 회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에도 '정주영은 대선에 나오지 않는다'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러니 대선에서 3파전 끝에 겨우 승리한 김영삼으로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는 순식간에 초상집 분위기가 됐다. 현대그룹 계열사들은 일제히 세무조사를 받았고, 무자비한 금융 제재가 이어졌다. 은행권의 자금 대출이 모두 중단됐다. 현대는 제2금융권으로부터 조달한 연 12~14%의 고금리 자금으로 겨우 부도를 면하는 처지였다.

현대중공업 비자금 사건과 선거법 위반 등으로 현대 임직원 수 백 명이 구속, 또는 불구속으로 기소됐다. 정주영 회장 역시 대통령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돼 나중에 3년의 실형을 받았다.

정권 차원의 계속된 압박에 더 버틸 수 없었던 정주영 회장은 93년 2월 9일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당 대표가 은퇴하자 통일국민당 소속 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졌고, 통일국민당도 94년 5월에 소멸했다.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는 2년 이상 계속되다가 95년 광복절 특사로 정주영이 특별사면·복권되면서 관계를 회복했다. 특사 이후 두 사람이 공식 회동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제 다른 생각하지 말고, 경제발전에 전념 해달라"고 요청했다. 정 회장 역시 "다시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남은 생은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겠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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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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