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11월 국내 첫 나일론 직물 생산나서…생산하면서 난관 돌파
최종건은 끊임없이 시도하는 사람이었다. 생각만 해서는 아무것도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무엇이든 도전하고 실천하는 행동가였다. 그것이 비록 어색하고 낯선 것이라고 해도 결코 두려움이 없었다. 이것이 그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얼마만큼 실천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결단은 칼처럼, 행동은 화살처럼!"
1958년 11월, 최종건은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한국 최초로 나일론 직물을 본격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목표였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국내에 처음 선보인 나일론은 질기고 가벼우며 세탁이 간편해 소비자에게 인기가 좋았다. 시판되는 제품 대부분이 밀수에 의한 것이었으니, 국내에서 개발만 하면 시장은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곧바로 나일론 생산에 돌입했다.
"즉각 실행에 옮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망설임은 실기의 원흉이다. 판단은 현명해야 하고 실행은 빠를수록 좋다."
나일론 생산은 험난한 도전이었다. 우선 나일론 원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비싼 '암 달러'를 사용할 수밖에 없어 막대한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또 다른 난관은 기술적인 문제에 있었다. 실이 끊어지거나 실밥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풀을 먹이는 과정이 원활치 않았고, 더구나 정전기가 발생해 제대로 직물을 생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직원들은 여러 모색을 통해 습기가 정전기를 방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궁여지책으로 바닥에 물을 뿌린 거적을 깔고 이를 숯불에 데워 김을 피어오르게 하면서 직물을 짜는 데 성공했다. 비록 원시적인 방법이었으나 나일론 직물은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그렇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닥에 깔아 놓은 거적이 썩어 악취가 피어올라 도저히 작업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었다.
보다 못한 최종건은 일본 출장이 잦은 지인에게 부탁해 그들의 노하우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했다. 실에 윤활유를 바르면 그만이었다. 이후 선경직물은 대량생산에 돌입하며 합섬 시대를 활짝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