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21:30 (토)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17)늑대의 자만이 부른 화(禍)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17)늑대의 자만이 부른 화(禍)
  •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sms085@naver.com
  • 승인 2024.01.11 1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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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길목에서 의기양양하게 걷다가 단숨에 사자에게 제압 당해
주식투자자 중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은 경솔한 투자 성향
보통이상의 실력있고 나쁜 일은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다고 착각
주식시장 흐름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

푸른 초원의 저녁. 저물어 가는 태양은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늑대 한 마리가 들판을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늑대는 부드러운 저녁 바람을 맞으며 평화로운 산책을 즐겼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땅위에 길게 드리운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했습니다. 그 그림자는 마치 사슴처럼 긴 다리와 황소처럼 커다란 덩치와 사자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 세상에 어떤 동물도 그보다 더 용맹하고 씩씩한 모습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나의 우람한 몸집 좀 봐. 이 정도 몸집이라면 사자도 결코 무섭지 않아. 나라고 동물의 왕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사자도 이런 그림자는 갖지 못할 거야."

늑대는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전혀 없다는 기분이 들어 의기양양한 태도로 들판을 걸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사자가 잘 다니는 길목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잔뜩 자만심에 부푼 늑대는 지금 당장 사자가 나타난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사자는 늑대의 그림자를 보고 달아나기는커녕 엄청난 힘으로 늑대를 단숨에 쓰러뜨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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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할수록 경솔한 태도를 보인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가끔 자기 나름대로 기업을 분석한 자료라며 해당 주식을 사보라고 말하는 후배가 있습니다. 가치가 높은 주식인데 주가가 저평가돼 있으니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을 거라는 설명을 덧붙입니다.

물론 이런 권유는 시장이 좋을 때만으로 국한됩니다. 시장이 내리막길일 때 그는 잠수모드로 바뀝니다. 이 후배의 분석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입니다.

몸 담은 직업이 주식과 상관이 없고 금융상품과 관련한 교육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주식 매매를 업으로 하는 전문가보다 투자를 잘한다고 자랑합니다. 후배는 어째서 위험한 주식시장에서 우화의 늑대처럼 자만에 빠지게 된 것일까요?

◇통제의 환상의 포로된 주식 투자자= 사람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할수록 경솔한 태도를 보입니다. 심리학에선 이를 '통제의 환상'이라고 합니다. 통제의 환상은 사람들이 자신을 통제할 수 있거나 외부환경을 자신의 의지대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심리적 상태를 말합니다. 사기꾼은 이런 심리를 파고들어 순진한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갑니다.

2013년에 출간된 베스트셀러 『감정독재』의 저자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여러 가지 예를 들어 통제의 환상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예컨대 로또에 당첨되기 위해 1등이 많이 나온 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그간 나온 당첨번호를 분석하는 등 다양한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버드대학 심리학자 엘렌 랑거 교수는 실험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A그룹의 사람들에게는 직접 선택한 번호의 로또를, B그룹의 사람들에게는 기계에서 자동 선택된 로또를 각각 1달러어치씩 사게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참가자들에게 "이웃 사무실에서 꼭 로또를 사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남은 로또가 없다. 혹시 로또를 팔 생각이 있는지, 판다면 얼마에 팔고 싶은지 적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자동 선택된 번호의 로또를 구매한 B그룹은 약 19%가 팔지 않겠다고 답한 반면 자신이 선택한 번호의 로또를 구매한 A그룹의 사람들은 B그룹의 2배 수준인 39%가 팔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큰 차이를 보인 것은 기계에서 나온 숫자보다는 자신이 직접 선택한 숫자의 당첨 가능성이 클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인데, 자신이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통제의 환상입니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에서 투자자가 통제의 환상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요?

주식투자자들도 대부분 자신이 보통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만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주식투자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나쁜 일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상황을 맘 먹기에 따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합니다. 이런 투자자들에게 기술적 분석이나 종목 분석은 통제의 환상을 부추기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그래서 관련 지식을 쌓아갈수록 통제의 환상이 심해져 시장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하고 돈을 벌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사실 기술적 분석이니 종목 분석이니 하는 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 대상입니다. 가치투자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주가수익비율(PER)만 해도 이미 기업이 일궈낸 순이익이 바탕이 된다. W형·이동평균선 따위도 주가가 지나온 발자취입니다. 이들 지표는 주가의 앞날이 미리 결정된 것처럼 보이게 해 투자자가 미래의 시세를 알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이제 투자자는 모든 걸 통제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욕망에 불을 지릅니다. 욕망은 증시가 호황일 때, 그리고 어쩌다 투자한 주식이 올랐을 때 풍선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그러다 있는 재산을 다 날리고 한숨의 나날을 보내는 투자자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주식으로 돈 벌었을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주가 변동은 우연한 사건입니다. 과거의 흐름이 미래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주가도 과거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금리 하락, 재난, 전쟁, 악천후, 선거 결과 등 증시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건은 현재의 작품입니다. 기술적 분석이나 종목 분석으론 답을 얻지 못하는 변수이지요. 결국 투자의 성패를 판가름 하는 것은 주식시장에 관한 지식의 해박함이 아닙니다. 투자자의 시장에 대한 공포와 탐욕, 그리고 매매행태가 지금의 주가를 좌우한다고 봐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펀드매니저의 투자수익률이 개인투자자보다 좀 더 높습니다. 주된 이유를 알고 보면 그들이 개인보다 전문 지식이 더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개인이 빠지기 쉬운 심리적 함정에서 한걸음 물러 서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펀드매니저는 상대적으로 장기 투자를 하므로 시장 상황에 일희일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반면 개인들은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하며 단기 승부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 한 증권사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개인들이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이용해 단타하기 전후의 투자수익률을 보면 HTS 사용 전에는 연평균 -0.06% 였지만 HTS 사용 후에는 놀랍게도 -30.72%라는 쪽박 수준의 투자수익률이 나왔다고 합니다.

◇개인들이 단타매매에 빠지는 이유= 이처럼 기술적 분석과 종목 분석을 용이하게 해 주식매매의 과학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은 HTS가 아이러니하게도 투자를 망치는 괴물로 둔갑했습니다. 이건 HTS가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이를 이용하는 개인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투자자는 주식과 관련한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 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는 주식매매에서 과잉 낙관을 불러일으켜 경솔한 판단을 하게 돼 잦은 매매를 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거래가 잦아지면 수익률도 수익률이지만 수수료 등의 비용 발생을 늘려 결국 전체 실질 수익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낳습니다.

개인들은 투자 실패를 최소화하려면 자신이 주식시장에 흐름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주식 관련 공부를 좀 했다고 해서 통제의 환상에 빠져 자신이 마치 고수가 된 양 함부로 투자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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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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