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2 02:30 (수)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35) 깊어진 현대와 대우의 골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35) 깊어진 현대와 대우의 골
  •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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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1.2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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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부 스카웃 파문은 세 차례의 소동을 거치며 현대의 '축구단 해체'란 파국 맞아
당시 현역기자 신분으로 만난 구단주 정세영 회장은 다짜고짜 김우중 회장 맹비난

현대와 대우는 일찌감치 김종부를 점 찍고, 물밑 쟁탈전을 벌였다. 1라운드는 현대의 승리였다. 김종부가 대학 4학년이던 86년 3월에 계약금 1억 5,000만 원, 연봉 2,400만 원, 졸업 때까지 장학금 매달 200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고려대에는 경기도 송추에 축구장을 건립해 준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대우는 이미 김종부의 형을 구단 직원으로 채용하는 등 2년 동안 공을 들인 상태였다. 김종부가 현대와 계약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계약을 파기하고 대우 행을 선언하면서 사태가 커졌다. 대우가 과연 어떤 조건을 보장했기에 김종부가 계약을 파기했는지 그 내용은 아직 밝혀진 적이 없다.

정세영은 형인 정주영 회장을 도와 현대자동차를 세계 10위권의 회사로 키웠다. 하지만 그는 형의 종용으로 현대차의 경영에서 손을 떼고 현대산업개발을 받아 독립한다. 오른쪽 정주영 회장의 왼편이 정세영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다.
정세영은 형인 정주영 회장을 도와 현대자동차를 세계 10위권의 회사로 키웠다. 하지만 그는 형의 종용으로 현대차의 경영에서 손을 떼고 현대산업개발을 받아 독립한다. 오른쪽 정주영 회장의 왼편이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다.

고려대 축구부에서는 김종부를 제명했고, 대표팀에서도 제외 됐다. 많은 축구인의 탄원으로 겨우 대표팀에 복귀한 김종부는 86년 멕시코 월드컵 불가리아전에서 동점 골을 넣어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첫 월드컵 승점을 안겨준 선수가 됐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무적 선수가 된 김종부는 1년 가까이 경기를 뛰지 못했다. 87년 11월, 대우가 일방적으로 김종부를 소속팀 선수로 등록해버렸다. 2라운드는 대우의 승리로 보였다.

하지만, 3라운드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났다. 열 받은 현대가 팀 해체를 선언한 것이다. 프로축구의 존폐까지 거론될 만큼 상황이 심각해지자 대우가 김종부를 포기했다. 파문의 책임을 지고 당시 최순영 대한축구협회장도 사퇴하기에 이른다. 김종부 본인은 물론, 고려대·현대·대우·축구협회 모두가 만신창이가 됐다.

현대가 축구팀 해체를 선언한 며칠 후, 나는 아버지와 함께 계동에 있는 현대 본사를 찾아갔다. 구단 해체의 진위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마침 현대축구단 구단주인 정세영 현대자동차 회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줬다. 나도 정세영 회장이 구면이긴 했으나 그래도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했다. 요즘 말하는 '아빠 찬스'였다. 할머니 찬스에 이어 아버지 찬스까지 써먹은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체육 기자라서 축구 문제로 찾아뵀다"라고 운을 뗐다. 나는 "회장님, 대우도 김종부 포기했고, 최순영 회장도 사퇴했으니 이쯤 해서 복귀하시죠"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갑자기 정세영 회장이 언성을 높이며 "김우중, 그 x같은 xx"라며 원색적인 욕을 쏟아냈다. 깜짝 놀랐다. 솔직히 현대와 대우의 골이 그처럼 깊은 줄은 몰랐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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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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