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9:15 (금)
◇김수종의 취재여록 ① 특종이 된 ‘리우정상회의’
◇김수종의 취재여록 ① 특종이 된 ‘리우정상회의’
  • 김수종 이코노텔링 편집고문(전 한국일보 주필)
  • diamond1516@hanmail.net
  • 승인 2019.11.1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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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체제 종식으로 평화무드 속 뉴욕 UN본부 취재중 외교관의 뜻밖 전화 한 통
"세계정상100명 모이는 회의에 국내언론 냉담…특파원 현지보도 긴요"하소연
1면 톱으로 나가자 언론 법석… 국무회의 안건 채택 돼 총리 참석 방향으로 가닥
리우 지구정상회의 심벌 마크. 세계가 처음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안을 모색한 다자협의 체제의 시동을 건 회의다.
리우 지구정상회의 심벌 마크. 세계가 처음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안을 모색한 다자협의 체제의 시동을 건 회의다.

21세기는 기후변화(Climate Change)의 시대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 남짓 인류 문명을 꽃피웠던 것은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 덕택이었다. 그러나 화석연료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 때문에 기후변화가 일어났다. 기후변화는 우리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건강은 물론 국제관계를 지배할 것이다. 앞으로 10년 후, 즉 2030년이 되면 기후변화는 단순한 자연재해의 차원을 넘어 70억 인류의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 같다.기후변화가 국제문제로 처음 떠오른 계기는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Earth Summit)였다. 30년 전만 해도 기후변화가 이렇게 심각한 이슈로 우리 삶을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일부 과학자들만 기후변화의 위험을 경고했을 뿐이다. 사실 기후변화라는 말조차 생소한 용어였다. 당시 지구정상회의를 취재했던 김수종 이코노텔링 편집고문(당시 한국일보 뉴욕특파원)의 취재노트를 통해 21세기의 환경 문제의 의미를 5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나는 1991년 여름 한국일보 뉴욕 특파원으로 발령받았다. 그해 9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독일이 통일되고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는 등 냉전체제 종식에 힘입어 노태우 정부가 추진한 북방외교의 성과였다. 이런 변화를 취재하기 위해 주요 언론사마다 뉴욕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했다.

정치부 기자로 민주화 이후 변화무쌍했던 ‘3김 시대’ 정치권을 취재하던 나는 낯선 도시 뉴욕과 익숙지 않은 유엔본부 취재에 적응 중이었다. 1992년 유엔본부는 평온했다. 냉전 체제가 끝난 국제질서는 2차 대전 이후 평화무드가 그 어느 때보다 팽배하던 시절이었다. 남한을 사갈(蛇蝎ㆍ뱀과 전갈이라는 뜻으로 기피인물을 뜻함) 처럼 바라보던 주 유엔 북한 외교관들도 남한 기자들과 조금씩 접촉할 때였다. 이런 화해무드 탓인지 남한의 주 유엔 대사가 교체되어 본국으로 가게 되어 유엔로비에서 송별 파티를 열었는데, 북한 대사가 인사차 찾아올 정도였다.

기후변화가 국제문제로 처음 떠오른 계기는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Earth Summit)였다. 30년 전만 해도 기후변화가 이렇게 심각한 이슈로 우리 삶을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일부 과학자들만 기후변화의 위험을 경고했을 뿐이다. 사진은 당시 정상회의 모습.
기후변화가 국제문제로 처음 떠오른 계기는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Earth Summit)였다. 30년 전만 해도 기후변화가 이렇게 심각한 이슈로 우리 삶을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일부 과학자들만 기후변화의 위험을 경고했을 뿐이다. 사진은 당시 정상회의 모습.

유엔본부가 있는 맨하탄은 임대료가 비쌌기 때문에 특파원들은 대부분 허드슨 강 건너 뉴저지에 살았다. 특파원들은 주로 주 유엔 한국 대표부를 출입처 삼아 자주 갔다. 갓 유엔에 가입한 탓에 한국 외교관들도 유엔외교 활동에 그리 익숙하지 못할 때였다. 일본은 그때 안보리 이사국이어서 한국 외교관들이 그들을 통해 정보 귀동냥을 했고, 특파원들에게도 릴레이로 귀띔해주는 식이었다. 그때 유엔을 취재했던 기자로서 15년 후 한국 출신 유엔사무총장이 배출되었다는 것은 믿기지 않은 사건이었다.

그해 3월초 어느 날 아침 집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집에서 뭐하는 거요. 기자가 맨해튼을 비우면 되나요? 별일 없으면 유엔근처에서 점심이나 같이 합시다.”

주 유엔 한국 대표부에 근무하는 어느 참사관의 전화였다. 참사관은 실무급 고위직의 외교관이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흐릿한데 전화를 걸어 나를 불러낸 외교관이 이수혁 참사관(현 주미대사)이 아니었나 싶다.차를 몰고 유엔본부 근처에 있는 약속된 음식점으로 갔다. 참사관 옆에는 정장 차림의 남자가 함께 있었다. 참사관이 “서울본부에서 유엔 회의에 참석하러 나온 외교부의 과장”이라고 소개했다. 받은 명함에는 ‘환경 과학 과장 정래권’이라는 이름이 씌어 있었다. 환경 과학이 외교부와 무슨 관계가 있지 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당시 뉴욕 특파원의 관심거리는 유엔 동시가입에 따른 남북 접촉과 그해 뉴욕에서 열리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지명 전당대회였지 다른 이슈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때였다. 유엔본부에서는 매일 수많은 국제회의가 열리고 하루 수십 건의 보도 자료가 뿌려졌지만 제목에 'ROK'(한국)나 ‘DPRK'(북한)가 없으면 그냥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그런데 가볍게 점심을 하자던 참사관이 식사가 끝날 즈음 정색을 하며 “우리 정래권 과장의 얘기를 들어보고 좀 도와주시오.”라고 말했다. 정 과장은 봉투에서 두터운 서류뭉치를 꺼내고는 “특파원님, 한번만 봐 주십시오. 올해 6월 브라질에서 중요한 환경관련 유엔회의가 열리는데 우리 언론들이 도무지 관심이 없으니 정부가 대표단을 파견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명예가 걸린 문제입니다.”

정 과장은 ‘기후변화’ ‘의제21’ ‘화석연료’ ‘이산화탄소’ 등 당시로서는 생소한 용어를 들이대며 “브라질 리우에서 6월에 열리는 환경정상회의(Earth Summit)에 세계 각국에서 총리급 이상 대표가 100여 명 참석하는데 우리나라는 총리는 고사하고 외교장관도 참석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니 1년간 준비해온 실무자로서 난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니 기사를 써 주십시오.”라고 읍소했다.

“외교부나 환경처 출입 기자에게 자료를 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내가 이렇게 반문하자, 정 과장이 대답했다. “그렇게 했죠. 그런데 외교부 출입 기자들은 ‘기사가치가 없다.’고 무시하고, 환경처 출입기자들은 신참들이어서 데스크에 말발이 먹히지 않아 기사가 크게 나가지 않는다고 해요. 국가안보 문제와 한미 관계가 아니면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누가 해외 특파원이 송고하면 같은 기사도 크게 나간다고 말해주더군요. 유엔활동이고 한국에도 중요하니 한 번 써주시지요.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세계 정상 100명이 모이는 국제회의가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화석연료를 규제하는 기후변화협약 얘기가 석유 소비국인 한국에게 영향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를 쓴다면 야마(핵심 뜻하는 기자들의 은어)를 어떻게 잡지. 앞으로 석유도 마음대로 못쓴다고 두드려 맞춰야 하나” 고민 섞인 내 독백에 정 과장은 “바로 그겁니다. 리우 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되면 석유 사용을 규제하게 될 겁니다. 그게 방향입니다.”

그날 저녁 나는 신문사 외신부로 전화를 걸었더니 마침 특파원 담당인 외신부장이 야간 당직을 하고 있었다. 내 보고를 받은 그는 “좋아요. 새로운 기사를 찾던 중인데 잘됐네. 충분히 길게 써 보내시오.”라고 말했다. 나는 밤새 자료를 나름 분석해서 기사를 송고했다.

이튿날 아침 정 과장이 전화를 걸어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저 어제 만났던 정래권 과장입니다. 한국일보에 리우환경회의 기사가 1면 톱으로 대서특필됐습니다. 오늘 아침 외교부에 난리 났다고 합니다. 국무회의에 보고되고 아마 총리가 대표가 되어 리우회의에 참석할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점심 대접하겠습니다. 나오십시오. 할 얘기도 있으니.”

당시는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뉴욕에 있는 나는 한국일보 지면에 내가 보낸 기사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쓴 이 기사 때문에 다른 언론사의 뉴욕특파원들은 본사의 낙종 추궁에 곤욕을 치렀다. “6월 브라질 리우 환경정상회의서 기후변화협약 채택, 앞으로 석유 사용도 제한.” 이런 요지의 타이틀을 달고 한국일보 지면이

27년전 리우 지구정상회의를 가장 먼저 취재보도한 김수종 당시 한국일보 뉴욕특파원. 사진=김수종 이코노텔링 편집고문.
27년전 리우 지구정상회의를 가장 먼저 취재보도한 김수종 당시 한국일보 뉴욕특파원. 사진=김수종 이코노텔링 편집고문.

 치고 나갔으니 신문사마다 “한국일보에 이런 기사가 나갔는데 이게 뭐야.”며 뉴욕특파원을 달달 볶았을 것은 불문가지다.

이렇게 해서 나의 ‘리우환경지구정상회의’ 기사는 특종 보도가 되었다. 한국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자료를 갖고 기사를 썼으니, 특종 아닌 특종이었다.

맨해튼에서 만난 정래권 과장은 크게 흥분해 있었다. 그는 1991년부터 과학 환경 과장을 맡아 리우 유엔환경회의 준비로 혼자 동분서주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 국제회의가 중진국인 한국에 중요한 것임을 꿰뚫고 있었다. 그러나 남북한대결외교와 대미외교에 매달려온 외교부에서는 담당 국장도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정 과장은 고독하게 준비했던 것이다. 내가 쓴 기사가 크게 보도되면서 그의 노력과 고민이 일시에 보상을 받게 되었으니 그가 흥분하는 건 당연했다.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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