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18:50 (화)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⑫ '북풍과 태양'…'넛지 마케팅' 효용가치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⑫ '북풍과 태양'…'넛지 마케팅' 효용가치
  •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sms085@naver.com
  • 승인 2023.10.19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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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비합리적이고 계몽적인 것을 싫어해 자연스런 상황 만들어 올바른 선택 유도 하는 게 효율적
노골적인 '북풍'보다'태양'의 은근함에 방점…美서 퇴직연금 가입 후 탈퇴하게하자 가입율 수직상승

북풍과 태양이 서로 자신의 힘이 더 세다고 우기다가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북풍이 먼저 소리를 쳤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힘이 더 센지 시합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태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북풍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북풍은 주의를 두리번 거리다 길을 가는 나그네를 발견했습니다, 북풍은 태양을 향해 말했습니다. "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쪽이 이기는 거야." 태양이 미소를 지으며 "그래"라고 대답했습니다. 북풍은 세찬 바람을 잔뜩 몰고 오면서 소리쳤습니다. "내가 입김을 약간만 불처도 저 사람의 외투를 벗길 수 있을 거야." 북풍이 큰 소리를 쳤습니다. 북풍은 나그네를 향해 세찬 바람을 불었습니다. 나그네는 바람 피하기 위해 머리를 숙이며 외투의 단추를 꼭꼭 채웠습니다.

나그네의 외투가 좀체 벗겨지지 않자, 북풍은 더욱 힘을 주면서 입김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나그네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더욱 단단한 옷을 여몄습니다. 태양이 미소를 지으며 "자 이제는 내 차례야." 태양은 처음엔 아주 부드러운 빛을 비추었습니다. 나그네는 단단히 여미고 있던 외투의 단추를 풀었습니다. 태양은 다시 뜨거운 열기를 뿜었습니다. "날씨가 왜 이렇게 변덕스럽지? 조금전에는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이제는 너무 덥구나." 잠시 후 나그네는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옷을 모두 벗은 채 강으로 달려가 목욕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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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특정 행동을 유도할 때엔 직설적이고 물리적인 방법보다 우회적이고 친화적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누구나 다 아는 이솝우화의 '북풍과 태양'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김대중 정부 시절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햇볕 정책으로 더 유명해졌죠.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특정 행동을 유도할 때엔 직설적이고 물리적인 방법보다 우회적이고 친화적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하고 있습니다.

◇공항 화장실이 청결해진 이유= 실화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1990년대 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 화장실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공항 측은 어떻게 하면 지저분한 남자 화장실을 깨끗하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오줌을 소변기 밖으로 흘리지 말자'는 계몽 표어를 붙었지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진지하게 훈계하는 것보다 낫겠지 싶어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은 아니다'는 식의 유모성 표어를 만들었지만 이 역시 큰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고심 끝에 소변기에 파 한 마리를 그려 넣었더니, 소변기 밖으로 새는 소변량이 80%나 줄어들었습니다. 소변을 보는 남자들이 '조준 사격'을 하는 재미로 파리를 겨냥했기 때문이었죠. 공항 화장실이 청결해졌음은 물론 청소비용을 10% 이상 절약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이 지난 2008년 집필한 『넛지: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에 나옵니다. 인간은 비합리적이고 계몽적인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북풍'식이 아닌 '태양'식으로 강요보다는 자연스런 상황을 만들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효율적이라며 이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넛지(nudge)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주의를 환기시키다'는 뜻입니다. 세일러와 선스타인은 이 단어에 대해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정의를 새로 내리고,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거나 명령하지 않아도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메커니즘을 슬쩍 바꿔주면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넛지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세일러 교수는 넛지 이론으로 행동경제학의 토대를 닦은 공로로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합리적이지 않은 인간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경제 효용을 높인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선스타인 교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금융, 환경 등 각종 규제를 총괄하는 직책에 중용돼 미국의 공공 정책에 넛지 이론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퇴직연금 자동가입 정책입니다. 원래 회사와 개인이 비용을 나눠 부담하는 퇴직연금에 가입하려면 가입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됐습니다. 근로자 입장에서 보면 따로 돈을 더 내는 것도 아니므로 가입 신청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이같은 방식으로 퇴직연금 제도를 운영하는 사업장을 조사했더니 가입자가 절반도 안 됐습니다. 당장 커다란 이득이 생기지 않는 한 먼 미래의 이익을 좇으려고 눈앞에 불편을 초래하기보다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쪽을 택하는 습성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퇴직연금 가입 순서를 슬그머니 바꿨더니 결과가 딴판이었습니다. 본래 근로자가 먼저 가입 신청을 해야 퇴직연금에 가입할 수 있던 것을 일단 퇴직연금에 먼저 가입하게 한 다음 원하는 사람만 탈퇴 신청을 받아주기로 한 것입니다. 단순히 의사결정 순서만 달리 했을 뿐인데, 효과는 탁월했습니다.

이 같은 순서로 퇴직연금을 도입한 회사에서 3개월 후 신입사원의 퇴직연금 가입비율이 98%까지 치솟았습니다. 전체 직원의 퇴직연금 가입비율도 도입 3개월째 20%에서 36개월째에는 65%로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일단 가입하면 탈퇴하는 사람도 드물었습니다.

요즘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바닥에 길게 페인트 칠을 해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행유도선이라는 건데, 넛지의 한 사례입니다. 운전자가 헷갈리기 쉬운 고속도로 분기점, 고가도로 밑 교차로, 여러 방면으로 진입로가 혼잡한 곳에서 다양한 색상의 주행유도선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주행 유도선을 설치한 76곳에서 발생한 사고가 설치 전에 비해 약 27% 감소했습니다. 부드러운 개입이 교통사고 감소라는 큰 변화로 이어진 것입니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는 운전 중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외국 유아용품 회사가 자사 제품 홍보용으로 만든 이 디자인과 문구도 넛지의 사례입니다. 바로 '아이가 타고 있으니, 안전하게 운전하는 게 어때요?'라는 의미입니다. 단속과 같은 강한 개입도 효과가 있지만, 아이가 타고 있다는 문구와 디자인은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운전자를 무의식적으로 조심성 있게 만들어 줍니다.

마트에서도 넛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계산대 주변에 사탕이나 껌, 젤리,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이 매대에 놓여 있는데, 다 이유가 있습니다. 계산을 기다리면서 혹은 계산대에 향하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뻗을 수 있는 거리에 가격이 저렴하면서 군것질거리로 좋은 이런 간식들이 진열돼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의 경우 구매가 더욱 늘어난다고 합니다. 고객에게 물품 구매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선택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다리는 장소에 가져다 놓을 뿐이지만 결과는 놀랍습니다. 마트 계산대 주변 간식 코너는 단순히 자투리 공간을 채워 넣은 게 아닙니다. 고객의 선택을 자연스럽게 유도해 매출증대를 일으키기 위해 설계된 공간입니다.

이 마트 사례는 넛지 마케팅의 하나입니다. 넛지 마케팅이란 똑똑해진 현대의 소비자들에게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느껴지게끔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옆구리를 슬쩍 찌르듯이 가까이 다가가 기업이나 상품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만들어 구매행동을 유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소비자들은 마케팅을 식상하고 뻔하고, 목적이 들여다보이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쉽게 신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마케팅 전략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하면서 고객이 사고 싶어하는 상품,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토리, 부드럽게 유혹하는 대화법, 고객을 끌어들이는 채널, 구매 행동을 유발하고 다시 사고 싶게 하는 게 넛지 마케팅의 지향점입니다.

◇폭스바겐의 넛지 마케팅 실험= 다음은 『넛지』책에 소개된 넛지 마케팅 성공사례입니다. "누구나 계단을 이용하면 에너지를 절약하고 신체에 좋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순간의 귀찮음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선택을 장려할 수 있을까요? 독일의 자동차 회사 폭스바겐은 '아주 작은 즐거움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행동을 바꾸게 하며,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주제 아래 재미있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2009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지하철역에 피아노 건반 모양의 계단을 설치한 것입니다. 센서도 부착해 사람들의 발걸음에 맞춰 소리도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평소보다 66%의 사람들이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이 실험은 일상 속에 스포츠가 함께 있다는 메시지도 전달하면서 폭스바겐에 대한 호의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공기관이 아닌 사기업의 넛지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업의 공익적 목적 외의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순간, 오히려 소비자의 반감을 살 수 있어서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기업의 과도한 홍보에 지쳤기에 넛지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날엔 기만을 당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TV드라마에 가구나 의상을 협찬하는 간접 광고가 그 예입니다. 이런 간접광고가 맥락이 없거나 노골적이면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녹이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넛지 마케팅에 성공한 기업들은 하나 같이 마케팅 의도를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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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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