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23:10 (화)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⑪ 박쥐, 가시나무, 갈매기의 '집착'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⑪ 박쥐, 가시나무, 갈매기의 '집착'
  •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sms085@naver.com
  • 승인 2023.10.05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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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만들거나 소유하게 되면 정이 들어 본래 가치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향 있어
아파트 소유자는 집값 최고치에 올랐던 추억 때문에 그 가격 밑으론 매도 머뭇거리는 함정에 빠져
김치 냉장고 '딤채'는 '소유심리' 활용해 3개월 간 무료로 제품을 쓰게 하자 '100% 구매'로 이어져

박쥐와 가시나무, 갈매기가 모여 공동 사업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사업을 하려면 돈이 필요했습니다. 박쥐가 먼저 말했습니다. "나는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돈을 빌리기가 쉬울 거야. 내가 사업에 필요한 돈을 빌려오지." 그러자 옷을 많이 가지고 있던 가시나무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옷 장사를 해보는 게 어때? 나에게 옷이 많으니까 그걸 팔면 장사가 잘 될 것 같은데..."

박쥐와 가시나무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갈매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했습니다. 갈매기는 눈이 좋아 여기저기 날아다니면서 바닷가에 떨어진 먹이를 잘 찾아내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재능을 살려서 장사에 도움을 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바닷가에는 파도에 휩쓸려 온 물건이 많아, 그중에서 쓸만한 것을 모아와서 팔자구."

박쥐와 가시나무는 갈매기 말을 받아들였고. 얼마후 그들은 제법 많은 양의 물건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장사를 하기 위해 배를 빌려 물건을 잔뜩 싣고 항해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넓은 바다로 나온지 얼마 안돼 먹구름이 몰려오고 폭풍우가 몰아치더니 파도가 배를 덮쳤습니다. 배는 그만 물속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힘들게 빠져나온 그들은 겨우 목숨만 건져 고향에 돌아왔으나 장사를 더 이상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전처럼 각자의 집으로 힘없이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갈매기는 잃어버린 물건이 어딘가에 떨어져 있지 않을까 햇볕을 뒤지며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박쥐는 돈을 빌려준 사람을 혹시 만나게 될까 두려워 문 밖을 잘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낮을 피해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밤에만 돌아다녔습니다. 가시나무는 잃어버린 옷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지나가는 사람의 옷을 붙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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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만들거나 소유하게 되면 정이 들어 본래 가치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게 되면 안타까운 마음에 그것을 쉽게 잊지 못합니다. 더구나 돈을 주고 산 물건은 더욱 강한 애착이 생겨 그 상실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겁니다. 박쥐, 가시나무, 비둘기는 장사할 물건을 졸지에 잃어버린 게 얼마나 아쉬웠으면 되찾고 싶은 마음이 평생의 습관이 됐을까요?

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만들거나 소유하게 되면 정이 들어 본래 가치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측이 사는 측보다 호가를 높게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물건을 살 때 지불하고 싶은 금액과 소유한 물건을 팔 때 받고 싶은 금액이 일치하거나 최소한 비슷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후자가 전자보다 훨씬 더 큰 게 보통입니다. 이처럼 소유는 물건에 대한 가치관을 바꿉니다. 소유하는 순간 물건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바로 '소유효과'입니다.

◆벼룩시장이 일반시장과 다른 점= 소유효과 그 자체야 그렇게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요. 문제는 소유효과의 함정에 빠졌을 때입니다. 소유물에 집착한 나머지 비상식적인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위의 이솝우화에서 소유효과의 함정에 빠진 비둘기는 잃어버린 물건을 잊지 못해 해변을 돌아다니고 가시나무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으며 평생을 보냈습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지난 1990년 머그컵 실험으로 소유효과를 설명했습니다. 카너먼은 한 그룹의 학생들에게 학교 로고가 새겨진 머그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이 머그컵을 다른 사람에게 판다고 치면 얼마에 팔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평균 7달러에 팔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그 머그컵을 사려면 얼마를 낼 생각이냐고 물었습니다. 이 학생들은 3달러를 제시했습니다. 머그컵을 가진 학생들은 단지 몇 분 간 머그컵을 만졌을 뿐인데도 두 배 이상 수준의 가치를 책정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 많게는 16.5배 더 높게 가치를 책정한 학생도 있었습니다.

소유효과는 오래 소지한 물건일수록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중고품이 거래되는 벼룩시장에선 판매자가 가격을 높게 부르는 바람에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래서 벼륙시장에서 판매자는 소유효과를 버리지 않으면 물건의 새주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반 시장의 상인은 판매할 상품을 소유물이 아니라 잠시 보관하는 물건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소유효과의 영향을 덜 받습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소유효과가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은 집입니다. 한국 사람에게 집은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재산에 비해 애착이 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파트를 팔 때 처분에 따른 손익만 따지면 되는 데, 그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파트 소유자는 과거 집값이 최고치에 올랐던 추억 때문에 그 가격 아래에선 매도를 머뭇거리게 됩니다. 게다가 자신의 아파트가 어떤 아파트보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소유효과의 함정에 빠집니다. 부동산 상승기에 어떤 지역의 아파트가 얼마에 팔렸는데, 왜 내 집은 오르지 않느냐며 속앓이를 하는 건 그래서입니다. 여기서 도가 지나치면 아파트 주민들끼리 얼마 이하로는 내놓지 말자며 방을 써 붙이는 담합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소유효과에 빠져 상식 밖의 행동을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 실험에 따르면 소유효과는 구체적인 사물일 때만 나타납니다. 상품권처럼 추상적인 물건을 거래하는 시장에선 소유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주식은 어떨까요?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구체적인 물건으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단순히 종잇조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가 보유한 주식을 발행한 회사를 '내 기업'이라고 생각한다면 소유효과는 아주 위험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에 개인적인 감정을 이입할수록 헤어지기 어려운 것처럼, 잘못된 판단으로 구입한 주식의 가격이 자꾸 떨어져도 쉽게 팔지 못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오를 것이라며 희망고문을 하다가 급기야 큰 돈을 날릴 수도 있죠.

주식투자에서 소유효과를 벗어나는 길은 주식을 소유하는 물건으로 보지 말고 잠시 머물렀다 다른 사람에게 가는 종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애착이 사라져 쉽게 헤어질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전략은 초심으로 돌아가기입니다. 보유한 주식을 팔기가 망설여진다면 '이 종목에 투자하기로 했던 당시로 돌아간다면 과연 지금 시점에도 이 종목을 살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소유효과에서 벗어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소유효과 이용한 '딤채' 마케팅 전략= 기업들은 소비자의 소유효과를 마케팅에 이용하기도 합니다. 환불보장제도가 대표적입니다. 판매자는 제품이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환불해도 좋으니 일단 가져가서 써 보라고 소비자를 유혹합니다. 경험해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한번 소유했던 물건을 환불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일단 소유하고 나면 물건이 좋아보여 더 비싼 가격으로라도 사고 싶어집니다.

김치냉장고 '딤채'는 제품 출시 초기인 1996년 약 200명의 품질평가단을 모집하고 이들에게 3개월 간 무료로 김치냉장고 제품을 사용해본 후 구매 여부를 결정하게 했습니다. 결과는 놀랍게도 100% 구매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딤채의 좋은 품질만으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일단 체험하게 되면 소비자 자신도 모르게 발생하는 소유효과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소유효과는 이미 소유하고 있는 물건뿐만 아니라 거의 소유할 뻔한 물건에 대해서도 적용됩니다. 백화점에서 어떤 상품을 사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다른 사람이 먼저 그 상품을 가져가버리면 마음이 쓰린 것이 그런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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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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