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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나폴레옹도 정복 못한 '빵'
[김성희의 역사갈피] 나폴레옹도 정복 못한 '빵'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08.28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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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러시아원정서 구사일생으로 돌아오면서 "빵만 있었으면" 탄식
기근에 시달리던 국민에 뼈조각 수프…지도자 고민은 늘 "먹고사니즘"
1812년 러시아 원정에 나서기 전 나폴레옹은 총리대신에게 "짐은 국민들이 빵을 제대로 먹을 수 있기를 희망하오. 값싸고 질 좋은 빵을 충분히 말이오"라고 편지를 보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사태로 우리나라 어업이 직격탄을 맞은 데서 보듯,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다.

이번 경우는 생선에 국한되지만 생존과 직결되는 식량과 관련되면 더욱 심각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세계사의 흐름이 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독일 출신의 저널리스트가 쓴 『빵의 역사』(하인리히 E. 야콥 지음, 우물이 있는 집)에는 유럽인들의 주식인 빵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은데 여기 '빵에 패배당한 나폴레옹'이 나온다.

우선 나폴레옹 치하의 프랑스는 확실히 농업국가가 아니어서 식량의 자급자족과는 거리가 멀었다. 온 유럽의 농산물이 프랑스를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더 1세가 프랑스의 적으로 돌아서자 우크라이나 산 값싼 밀에 대한 꿈은 점점 멀어졌다.

1812년 러시아 원정에 나서기 전 나폴레옹은 총리대신에게 "짐은 국민들이 빵을 제대로 먹을 수 있기를 희망하오. 값싸고 질 좋은 빵을 충분히 말이오"라고 편지를 보냈다. 그러니 동쪽으로 전진하는 부대를 따라가는 수송 마차에는 밀과 호밀이 그득했다. 야전 제빵소의 백색 공병(밀가루 기술자)들은 좋은 대우를 받았고, 프랑스 병사들의 빵은 시큼한 프로이센군의 빵이나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오스트리아군의 빵보다 훨씬 훌륭했다. 심지어 전장에서도 비스킷, 즉 두 번 구운 빵을 먹었다.

그러나 이런 호사는 길지 않았다. 애당초 준비한 군량은 3주간 분량뿐이었다. 그마저도 기병대의 진격이 너무 빨라 빵을 실은 마차들이 미처 따라오지 못했다. 게다가 러시아군이 후태하면서 여문 곡식이라면 마지막 한 톨까지 태우고 가져갔다. 프랑스 군대가 점령한 곡창지대는 사막과도 같았다. 결국 모스크바를 점령했던 나폴레옹군이 후퇴한 이유는 러시아 특유의 강추위도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식량난이었다. 한 참전군인은 "빵 없이 50일이 지나자 미칠 것 같았다. 후퇴 중 한 오두막에서 빵을 발견한 병사들은 총을 눈 위에 던져버리고 광폭한 야생동물처럼 달려들었다. 몇몇 동료들은 빵을 너무 크게 베어 물어 목이 막혀 죽었다"고 회상했다.

"빵만 충분하다면 러시아를 쳐부수는 것은 아이들 장난인데…"라고 탄식했던 나폴레옹이 구사일생으로 귀국한 후 직면한 것은 기근에 시달리는 조국이었다. 그는 빵 부스러기와 야채, 뼈를 가지고 만든 '가난한 자들을 위한 수프'를 매일 2백만 접시씩 만들어 극빈자들에게 나누어주라 명령했고, 이 조치는 5개월간 지속됐다. 이 소식을 들은, '빵이 넉넉했던' 영국은 프랑스가 조만간 끝장날 것이라 판단했다.

이후 역사는 빵, 그러니까 식량을 확보했던 나라가 승리자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유럽 나아가 세계사의 흐름이 어떻게 요동쳤는지도. 결국 개인이든 국가든 어떤 명분을 대더라도 '먹고사니즘'이 우선임을 보여주는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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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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