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나 사업이 너무 앞서 나가도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도 자각해
"디지털 키 하나로 세상의 모든 플랫폼과 접속하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게 우리 회사의 비전입니다."
2019년 특정 이동통신사의 망을 사용하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 쓸 수 있는 스마트폰 차 키인 '디지털 키'를 선보인 ㈜케이스마텍의 정순호 대표는 "디지털 키에 적용한 사물 인터넷(IoT) 기술은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물을 잇는 많은 분야에 응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디지털 키 애플리케이션(앱)을 깔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차문 여닫기, 시동 온·오프, 경적 울림·끔을 할 수 있고 트렁크도 여닫을 수 있다. 차 한 대당 오너의 휴대전화 포함해 네 명까지 키를 공유할 수 있다. 기존 솔루션과 달리 IoT 기술로 차량과 직접 소통해 통신망 사각지대가 없다. 이동통신망을 사용하지 않으니 통신이 안 되는 지하 주차장 깊은 곳이나 오지에서도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
"이통망과 무관하게 휴대전화와 차량 간에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이라 통신 사각지대에서도 차량을 인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사실 미국과 유럽은 통신이 안 되는 지역이 꽤 있어 이통망을 이용하는 앱은 글로벌 진출에 제약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분실했다면 콜센터를 통해 디지털 키를 회수할 수도 있다. 제네시스를 포함한 현대자동차, 기아차 35종에 도입됐다. 현대차와의 협업에, 선행 연구개발부터 상용화까지 3년 반 걸렸다.
"개발에 3년 반이나 걸려 후발주자로서는 추격이 쉽지 않을 겁니다. 특히 보안 기술, 차량과 연동하는 노하우는 따라잡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격차를 벌이려 스마트 주차 지원 등 추가 기능도 탑재할 겁니다."
케이스마텍이라는 상호의 케이는 케이팝 할 때의 케이와 같다. 한국의 스마트 기술로 글로벌 시장을 노리겠다는 구성원들의 의지를 담았다. 이 회사는 2010년 설립 이래 근거리 무선통신(NFC)과 무선 보안인증 분야에 '선택과 집중'했다. 금융권에 모바일 보안인증 솔루션을 제공해 성장을 기틀을 잡았고, 그 후 사람인증과 사물인증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IoT 기술에 착안해 차량용 디지털 키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33억 원. 13년 연속 성장에 최근 5년간은 연평균 26.4%의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세 개의 이정표를 세웠다. ▲하나금융그룹의 모바일 서비스 기획·개발 프로젝트 ▲2016년 보안 솔루션을 2차 금융개인인증 수단으로 개발·적용한 것 ▲2019년 현대차와 협업해 디지털 키 지원 차량을 출시, IoT 보안인증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이다. 핀테크 쪽에서 개발한 인증 기술을 IoT와 접목해 독보적인 디지털 키를 개발했다.
나름의 성장통도 겪었다. 스마트폰을 활용해 각종 태그 및 서비스를 쉽게 연결하는 NFC 허브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목표였는데 당시만 해도 배터리 용량 문제로 NFC 기능이 오프 모드로 설정돼 있었다. 사용자로 하여금 NFC 기능을 다시 켜게 하는 게 서비스에 큰 걸림돌이 됐다.
"기술이나 사업이 너무 앞서 나가도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딱 반 발짝만 앞서 나가야 하죠."
그는 "비즈니스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배웠다"고 덧붙였다.
정 대표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고교 시절엔 방송반이었고, 전교 학생회장도 했다. 잘 놀았고, 술도 입에 댔다. 어느 날 담임교사가 집으로 불렀다. 소줏잔을 내밀었다.
"순호야. 인생을 즐기고 싶니? 인생 최고의 시간은 눈을 감는 순간이라야 한다. 네가 하루하루 성장해 죽을 때 너의 인생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선생님의 이 조언은 그 후 그의 인생 좌우명이 됐다. 나이 마흔에 사표를 던지고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자신을 돌아봤고, 스스로 비웠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드는 회사로 가꿔 가자고 가족(구성원)들에게 말합니다. 그러자면 상상력과 상상을 현실화하는 기술력이 필수적이죠."
NFC 시장 동향을 제대로 파악 못해 낭패를 봤을 땐 과거 직장 상사였던 고인옥 당시 공동대표와 함께 자발적으로 연봉을 깎았다. 그렇게 위기를 넘겼다.
"개인적으로 엔지니어 창업을 권하지 않는 배경이죠. 언제든 상상력의 한계를 느끼면 후배들에게 자리를 넘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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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노텔링 이필재 편집위원 ■ 중앙일보 경제부를 거쳐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월간중앙 경제전문기자, 이코노미스트ㆍ포브스코리아 경영전문기자, 이코노미스트 인터뷰 전문기자 등을 지냈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에게 배워라-대한민국 최고경영자들이 말하는 경영 트렌드>, <CEO를 신화로 만든 운명의 한 문장>, <아홉 경영구루에게 묻다>, <CEO 브랜딩>, <한국의 CEO는 무엇으로 사는가>(공저) 등 다섯 권의 CEO 관련서를 썼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잡지교육원에서 기자 및 기자 지망생을 가르친다. 기자협회보 편집인,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이사로 있었고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초빙교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