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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6) 대공황과 일본…'마지막 황제'⑭일본,중일전쟁 벌여 대공황 탈출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6) 대공황과 일본…'마지막 황제'⑭일본,중일전쟁 벌여 대공황 탈출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3.08.16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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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가 있었지만 참여 군인들은 기껏해야 영관급…성공해도 정권장악 의도없어
국민신망 업고 총리 '겁박'해 정치 중심 부상…천황을 파시스트나 군국주의자 유인
1931년 군부는'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총리와 천황 '전장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

대공황 극복은 어렵다. 하지만 쉬운 길도 있다. 침략전쟁이다. 전쟁을 일으키면 정부는 돈을 찍고 군수산업을 활성화시킨다. 그럼으로써 돈이 돌고 기계가 돈다. 게다가 옆 나라를 무력으로 점령한다면 자원 탈취도 가능하다. 주변 나라를 희생시켜 자국의 배를 불릴 수 있었던 것이다. 1930년대 독일이 바로 그랬다. 하지만 일본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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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0월 미국의 주가 대폭락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일파만파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대부분 나라에서는 경제위기 타파가 제1의 과제였을 정도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가 먼저 이 대공황의 여파로부터 벗어났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이었다. 이들의 공통점? 군국주의, 파시스트, 전체주의 국가라는 점이다. 또 독일과 일본은 이웃 나라를 침탈함으로써 경제를 살린 반면 이탈리아는 강력한 보호무역과 국책사업 투자 등 자급자족경제로 위기를 극복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1936년 2월 26일 쿠데타를 일으킨 젊은 군인들.
1936년 2월 26일 쿠데타를 일으킨 젊은 군인들.

일본만 본다면 독일이나 이탈리아에 비해 훨씬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 군부의 집권 과정이다.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합법적인 선거를 통한 방법과 불법적인 쿠데타를 통한 방법이다. 독일과 이탈리아 사례를 보면 이 같은 특성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히틀러는 선거라는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무솔리니는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획득한다. 물론 무솔리니를 모방한 히틀러도 쿠데타를 노렸지만 실패하고 만다.

일본은 어땠을까? 군국주의, 파시즘, 전체주의를 추구했던 일본 군부는 어떻게 정권을 잡았을까? 선거로? 쿠데타로? 아니다. 만일 이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했다면 일본 군부는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하게 정권을 획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일본 군부는 그만큼 힘이 있었고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여론도 강성한 나라를 선호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방식을 추구하지 않았다.

물론 쿠데타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달랐다. 기껏해야 위관급, 영관급이 주도했다. 뒤에 누군가가 있지 않았겠느냐고? 아니다. 그들은 쿠데타에 성공한다 해도 주모자가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성공하면 군 관련 대신을 총리로 추대할 생각이라 했다. 정작 당사자도 모르는 쿠데타 시도였는데 말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고위 장성 등 군의 강력한 리더가 쿠데타를 일으켰다면 성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 일본 군부, 내각 겁박해 권력 장악

그럼 일본 군부는 어떻게 정권을 장악했을까? 몇 가지 방법이 있었다. ①문제를 일으켜 총리를 교체하거나 내각을 무너뜨리는 방법, ②쿠데타를 일으키거나 암살하는 방법, 그리고 ③총리를 겁박하는 방법 등이 그것이었다. 오카다 게이스케(岡田啓介) 총리는 첫 번째,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리는 두 번째, 그리고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 총리는 마지막 방법을 쓰며 제거 또는 회유ㆍ협박한 사례였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의 매우 독특한 정치체제에 주목해야 한다. 왜 일본은 선거나 쿠데타를 활용해 정권을 잡으려 하지 않았던가? 물론 일본에도 쿠데타 시도는 있었다. 5ㆍ15, 2ㆍ26은 대표적인 쿠데타였다. 하지만 이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나 독일의 히틀러가 썼던 방식이 아니었다. 쿠데타에 성공한 무솔리니는 직접 최고 권력자가 됐고 쿠데타에 실패했지만 히틀러 역시, 성공했다면, 아마도 최고 권력자가 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앞서 말했던 대로 쿠데타 참여 군인들이 기껏 영관ㆍ위관급이었다. 쿠데타에 성공해도 정권을 장악할 생각은 없었다.

왤까? 이에 대한 답을 내려면 우리는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우선 이걸 생각해 보자. 20세기 전반기 동안 일본의 최고 권력자 또는 권력기관은 누구 또는 어디였을까? 총리? 군부? 귀족원? 중의원? 다 틀렸다. 답은 천황, 그리고 황실이었다. 또한 누구도 그 권한을 대신 할 수 없었고 대신하려 하지도 않았다. 천황은 종교적으로는 신과 동급이었으며 세속적으로는 절대 권력자였다. 종교적 최고 권위와 세속적 최고 권력을 모두 가졌던 인물이 있었을까? 거의 찾아보기 힘든 사례였다.

메이지 천황
메이지 천황

이 같은 특성은 언제 시작된 것일까? 오래됐다. 천황의 역사는 기원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확인된 것만 3세기 또는 4세기다.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권력이 분리됐던 것은 12세기 들어서였다. 1192년 가마쿠라 바쿠후(鎌倉幕府)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쇼군(將軍)이 된 뒤였다. 이후 천황은 정치적 실권을 잃고 만다. 종교적 권위만 인정받아 간신히 명목을 유지하고 있었다. 메이지유신은 이 같은 천황에게 세속적 권력을 되돌려준 역사적 대 사건이었다. 이로써 천황은, 무려 700년 만에,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권력 모두를 검어진 인물이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 내에서는 누구도, 아무리 총과 칼이 강하다 해도,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없었다. 일본 군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천황을 그들과 같은 파시스트나 군국주의자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를 위해 친군부적 총리가 필요했다. 군부에 동조하지 않는 총리는 어떻게든 쫓아내야 했다. 그리고 결국은 그 모든 것을 해 냈다. 군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총리와 천황을 전장의 늪으로 끌고 들어갔던 것이다.

그럼 우리는 최종적으로 이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일본은 결국 대공황을 극복했다. 어떻게? 전쟁으로. 이 내용은 길게 설명할 필요 없다. 다음과 같은 인용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저명한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만약 1931년 대외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대공황은 농업과 공업 사이에 상승적으로 작용해 한층 심각해졌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다름 아닌 대공황기에 '만주국' 수립이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공황에서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전쟁에 의한 공황 극복 효과가 기대됐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태는 대외전쟁을 즉시 필요로 할 만큼 심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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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 ❙ 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 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 ❙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 ❙ 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 ❙ 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식민과 제국의 길』『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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