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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⑲ 안동 포(布)의 품격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⑲ 안동 포(布)의 품격
  •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 mksongmk@naver.com
  • 승인 2023.08.0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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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직물은 물에 젖으면 강도가 더 세져 '세탁에 강하고' 항균성까지 갖춰
신라 3대 유리왕 때부터 안동 지역의 부녀자들 대상 '삼 삼기 대회' 열려
지자체뿐 아니라 국가적인 지원 아래 1200여년 전 직조 실력 복원 기대

후덥지근하다. 장마가 끝난 뒤 극한 더위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옷을 보다 시원하게 입는 것이 좋다. 흐르는 땀을 잘 흡수하고, 그 땀을 빠르게 배출하면서 바람까지 잘 통하는 그런 옷 말이다. 이런 최상의 섬유가 있다. 바로 마직물이다.

마직물은 물에 젖으면 강도가 더 높아지므로 세탁에 강한 데다 항균성까지 있다. 세탁하고 삶아도 본래의 항균 기능이 그대로 남아있어 옷뿐 아니라 행주로 사용해도 미세균 번식에 의한 악취가 거의 없다.

마섬유는 삼베(대마), 모시(저마), 아사(아마), 황마, 시살 마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이들 가운데 대마(삼베)는 고려시대 말 문익점이 중국에서 목화씨를 가져오기 전까지 조상들이 입은 주된 의복 재료였다. 날씨가 추울 때에는 견직물을 함께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자조선 시대에 이미 양잠을 하였다고 하니 조상들은 견직물도 함께 착용했을 것이다. 항균성 때문인지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1960년대까지 속옷으로 마직물 옷을 입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직물은 그만큼 오랫동안 우리 조상들의 주된 의복 재료였다.

통일신라 흥덕왕 시절인 834년 내려진 복식금제(服飾禁制)도 이를 입증한다. 포에 대한 규제 항목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직물을 통합하여 크게 포(布)라고도 하나 마포(麻布:삼베)를 지칭한다. 이 삼베를 진골대등부터 평민까지 모두 입었다.

그러나 같은 마직물이라도 신분과 성별에 따라 차이를 두었다. 신분이 가장 높은 진골대등 남자는 26새(또는 승升), 여자는 28새를 입을 수 있도록 했다. 평민도 남자는 12새, 여자는 15새를 입도록 허용하였다. 즉 높은 계급일수록 새의 수치가 크고, 같은 계급이라 할지라도 남자보다 여자가 더 높은 새를 사용하였다. 이 같은 규제는 모든 계급에서 동일하게 적용했다.

마직물은 물에 젖으면 강도가 더 높아지므로 세탁에 강한 데다 항균성까지 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여기서 마직물의 '새(升)'란 무엇인가. 마직물의 질을 나타내는 단위다. 신기하게도 마직물을 짜는 현장에서는 오늘날까지 이 단위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참으로 끈질긴 계승이 아닐 수 없다. 대를 이어 직조 방법이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 내려오면서 단위도 그대로 사용되어 온 것이다.

새란 한 폭에 들어가는 올의 수이고, 1새는 80올로 이루어진다. 새의 수치가 클수록 한 폭에 들어가는 실이 많아진다. 따라서 가는 실로 촘촘히 직조해야 하고, 숙련된 기술이 요구되며, 직조 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품질은 좋아지나 값은 더욱 비싸진다.

마직물 한 폭의 너비는 35~38cm(현 안동포 기준)다. 흥덕왕 복식금제에서 최고의 수치인 진골대등 여자의 포가 28새로 한 폭에 2,240올(28×80)이 들어가는 마직물이었다는 의미다. 6두품, 5두품, 4두품 그리고 평민 순서로 신분에 따라 새의 수치가 낮아진다.

평민 여자에게 허용된 15새는 1,200(15×80)올로 직조한 것을 뜻한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계급이라도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높은 새의 마직물을 사용하게 한 점이다. 계급이 높을수록, 같은 계급이라 할지라도 여자가 남자보다 더 고운 마직물을 입었다는 이야기다.

전통적으로 안동은 삼베의 유명 생산지였다. 신라 3대 유리왕 때부터 안동 지역의 부녀자들이 '삼 삼기 대회'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합성섬유에 밀려 삼베 산업이 사양길로 들어섰다. 국가 무형문화제 '안동포 짜기 마을 보존회' 임방오 회장에 따르면 연간 1000필 이상을 짜던 삼베가 현재는 마을 전체에서 50필(수의 10벌 분량)정도다. 1인당 연간 1~2필을 생산해 많아야 200만원 정도 소득을 올린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정한 2023년 최저임금, 월 201만58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또한 현재 안동포는 7새 정도를 짜고 있다. 2016년 9월30일 15새를 짤 수 있었던 유일한 인간문화재가 사망하고, 현재는 12새를 짤 수 있는 무형문화재 2명이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1200여년 전에는 28새는 말할 것도 없고, 평민 여자들이 15새 마직 옷을 입었으니 당시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을지 상상이 간다. 그 때는 자급자족의 시대였으므로 특별한 기술자가 아닌 일반 부녀자들도 15새를 짤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놀라운 기술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안동포 짜기 마을 보존회'가 조성되어 삼베 생산의 맥을 잇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어 다행이다. 거기다 지자체가 합세하여 마직물의 생산과 기술력 전수를 위해 2020년부터 350억원을 투입해 친환경 셀룰로오스 소재 센터를 건립하는 등 마직물산업의 계승과 발전에 애쓰고 있다. 마섬유는 천연섬유의 대표 주자이자 앞으로 최고의 자연섬유로 각광받을 소재다. 지자체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지원 아래 1200여년 전 28새를 짰던 마직물 직조 실력을 되찾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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