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14:35 (토)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⑱ '작은' 단추의 '큰 역사'
[패션이 엮은 인류경제사] ⑱ '작은' 단추의 '큰 역사'
  • 송명견(동덕여대 명예교수ㆍ칼럼니스트)
  • mksongmk@naver.com
  • 승인 2023.07.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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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뼈로 만든 단추 등장…신분상징 액세서리로 변화
프랑스와 1세 왕의 웃 옷에는 금 단추가 1만3600개나 달려
13세기쯤 유럽은 십자군 전쟁때 건너온 '동양의 단추' 접해
프랑스출신 단추수집가가 모은 3천점 佛중요문화자산으로

단추는 옷을 쉽게 입고 벗도록 옷에 붙이는 부속품이다. 선사시대 뼈로 만든 단추가 있다고 하니 참으로 긴 역사를 가늠케 한다.

단추는 기능적인 필요에 의해 탄생하였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며 한 시대의 역사와 문화, 나아가 착용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액세서리로까지 자리 잡게 된다. 때문에 인간과 더불어 수천 년을 함께 한 단추에는 시대별 사회상은 물론 문화사적인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로익 알리오(Loic Allio)는 프랑스 출신 단추 수집가다. 당초 직업이 화가였던 그를 세계적 명사로 만든 것은 그림이 아닌 작은 단추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준 'ML'이라고 적힌 단추 하나가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 단추에 새겨진 ML은 프랑스 화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 1883~1956년)의 이니셜로 바로 그녀의 작품이었다. 이 단추가 그를 단추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로익 알리오는 프랑스 단추의 매력에 빠져 30년 동안 세계를 돌며 3000여개의 단추를 수집하였다. 2011년 프랑스 국립문화재심의위원회가 그가 수집한 단추들을 프랑스 중요문화자산으로 지정하며 가치를 인정하였다. 그 단추 하나하나에 담긴 '위대한 힘'이 우리나라(2017년)를 비롯한 세계 주요 박물관 전시를 통해 감탄과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하찮게 보이는 작은 단추 알맹이 속에 담긴 프랑스의 찬란한 문화를 자국 후손은 물론 세계 곳곳에 소개하면서 로익 알리오는 개인적인 명예를 넘어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애국자가 되었다.

단추가 서양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3세기였으며, 동양의 단추가 십자군전쟁을 통해 서양으로 건너갔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단추가 서양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3세기였다. 동양의 단추가 십자군전쟁을 통해 서양으로 건너갔다.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서 복식문화가 교류됐다는 방증이다.

단추 때문에 서양 옷에도 변화가 왔다. 통자루형(머리와 손이 들어가는 구멍만 남기고 다 꿰맨 형태)의 옷이 아닌, 사라센의 옷처럼 앞을 열고 단추로 여미어 입는 옷들이 등장하였다.

이렇게 서양으로 건너간 단추는 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수단이 되었다. 다이아몬드와 루비, 금, 은 등 귀금속을 재료로 장인들의 손을 통해 예술품으로 등극하였다. 값비싼 단추일수록, 비싼 장식을 많이 달수록 착용한 사람의 지위가 높음을 보여주었다. 프랑스 왕 프랑스와 1세(재위 1515~1547년)의 웃옷에는 금단추가 1만3600개나 달렸다고 한다. 17세기까지 서양에서의 단추는 가히 귀족들의 사치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에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사람들의 생각과 삶이 바뀌었다. 그 시대를 담아내는 단추도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귀금속이 아닌 나무나 곤충, 심지어 머리카락 등으로 만든 서민용 단추가 쏟아져 나왔다. 이로써 작은 단추에 사람들의 삶과 생각, 사회상을 담아내는 '단추의 황금기'를 일궜다. 19세기 이후부터는 장인의 손이 아닌 공장에서 단추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전반까지 단추는 의상 디자인의 핵심 요소이자 예술가의 내면 의식을 반영하는 중요한 표현 매체로 인식되며 미술작품에 버금가는 단추를 만들어냈다. 여성을 처음으로 코르셋에서 해방시킨 폴 푸아레나 전설적인 디자이너 엘자 스키아파렐리는 단추를 통해 그들이 만들어낸 옷의 가치를 더했다.

특히 엘자 스키아파렐리는 "스키아파렐리의 왕국에서는 단추가 왕이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의상 디자인에서 단추를 중요하게 여겼다. 18세기 말 오트 쿠튀르(고급 여성복)가 출현하면서 1940년대까지 단추는 제2의 황금기를 맞았다. 20세기 후반을 넘기며 단추는 본래 기능으로 돌아간 듯하지만, 여전히 자아를 드러내고 옷의 디자인을 살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낡고 때 묻은 작은 단추 하나에서 엄청난 가치를 발견해낸 로익 알리오의 값진 '눈'과 '단추 찾아 3만리' 여정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한편으론 동양에서 처음 만들어진 단추가 서양에서 화려하게 꽃피운 점과 그 단추를 수집하여 자국의 문화를 널리 알린 애국자이자 세계적 명사가 된 로익 알리오를 보며 '왜 우리에게는 그런 인물이 없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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