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어려울 때마다 이 꿈 얘기를 하며 "오빠 회사는 불같이 다시 일어 날 것"
할머니는 또 "여동생이 말하던 꿈 얘기가 자꾸 생각난다"고 했다. 정 회장이 보문동에서 살다가 그 집을 여동생에게 주고 집을 옮겼는데 여동생이 이사 온 첫날 밤에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대문에서 누군가 정주영을 불러서 나가 봤더니 흰 수염을 길게 내려뜨린 할아버지가 성냥갑 세 통을 주면서 정주영에게 주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할머니는 "꿈에 성냥 한 갑만 받아도 부자가 된다는데 세 갑이나 받았으니 하늘에서 주신 복이지 뭐야"라고 해석했다. 정희영 씨는 현대그룹이 어려울 때마다 이 꿈 얘기를 하며 "오빠 회사는 불같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곤 했다.
정희영 씨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불과 한 달 전에도 집에 찾아 왔다. 할머니는 고관절이 부러져 3년째 누워계신 상태였다. 희영 씨는 할머니 베개 밑에 봉투를 집어넣더니 두 손을 잡으며 "아주머니, 이걸로 맛있는 거 사 잡수세요. 돌아가시면 저 안 올래요"라며 위로 말씀을 건넸다. 희영 씨가 돌아간 뒤 봉투를 확인하니 빳빳한 1만 원짜리 신권으로 100만 원이 들어있었다. 1989년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 회장은 물론 형제자매 모두 의리와 정이 가득 한 분들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7명 모두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부의금을 보내왔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정 회장은 오래 살아야 해" 라고 말했다. "얼마 전부터 나를 만나면 '아주머니 오래오래 사세요'하면서 손을 덥석 잡는데 그 큰 손에서 열이 펄펄 끓어. 그 양반은 필시 오래 살 거야. 할 일도 많고, 건강하니까 아마 백 살은 넘게 살겠지."
할머니뿐 아니라 정 회장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정 회장이 2001년에 만 86세로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할머니는 정 회장이 자기 나이보다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남자의 평균 연령을 생각하면 86세가 적은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정주영이었기에 지금도 아쉽고, 아까운 생각이다. 대한민국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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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