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02:25 (목)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④ 외나무 두 염소의 '손실회피심리'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④ 외나무 두 염소의 '손실회피심리'
  •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sms085@naver.com
  • 승인 2023.06.01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인 투자자들은 이익이 가져다 주는 기쁨보다 손실이 주는 고통을 더 크게 느껴
이스라엘 출신 경제학자 카너먼은 주식투자자의 손실회피문제 다뤄 노벨상 수상
이익구간에선 위험을 안으려 하지 않으면서 손실구간선 물타기 등으로 대담해져

어느 깊은 산속에 외나무다리가 있었습니다. 다리 아래는 거센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떨어지는 날에는 크게 다치거나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흰 염소 한 마리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려고 막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검은 염소가 다리 위에 오른 것이 보였습니다. 흰 연소는 "아니 쟤는 내가 먼저 다리에 오르는 걸 못 봤나? 왜 계속 오지?"라고 생각하며 조심조심 전진했습니다. 그러다가 외나무다리 중간에서 두 염소가 만났습니다.

흰 염소가 말했습니다. "내가 먼저 왔잖아. 네가 양보해." 그러자 검은 염소가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더 많이 건너왔잖아. 네가 양보해." 이에 질세라 흰염소가 다시 외쳤습니다. "분명 내가 먼저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어. 그러니 니가 비켜." 검은 염소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웃기지마. 억지부리지 말고 어서 비켜. 내가 먼저야."

마침내 두 염소는 뿔을 맞대고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외나무다리가 흔들거렸습니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 않고 두 염소는 더욱 힘껏 상대를 밀어내 결국 둘다 계곡물로 떨어져 빠져죽고 말았습니다.

-----------------------------------------------------

주식 투자자들은 이익구간에선 '위험회피적'이지만 손실구간에선 '위험선호적'이 된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두 염소 중 하나가 한발짝 양보하면 외나무다리도 건너고 목숨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 됐습니다. 아마 둘의 마음속에는 '양보하면 지는 거야', '여기서 물러나면 나는 바보돼'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을 겁니다.

이런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양보를 어렵게 만들었을 듯 합니다. 손해보는 게 죽기보다도 싫었던 겁니다.

"손해 보는 일은 죽기보다 싫어"

사람은 이득 보다는 손실 보는 걸 두려워합니다. 기쁨은 순간이지만 손해의 고통은 아프고 오래 가기 때문이겠죠. 예를 들어 보죠. 길에서 1만원짜리 지폐를 주웠습니다. 공돈이 생기니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돈으로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려고 주머니를 뒤져보니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결국 물건을 사지 못하고 나왔는데, 그 속상하고 찝찝한 기분은 돈을 주었을 때의 기쁨보다 훨씬 오래 갈 것입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손해 보는 일을 피하려고 애를 쓰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이걸 '손실회피심리'라고 합니다. 두 염소가 외나무다리에서 먼저 가려고 고집을 피웠던 건 손실회피심리가 작용한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물에 빠져 죽었지만 말이죠. 행실이 나쁜 친구를 자꾸 만나게 되는 것도 친구를 잃는다는 두려움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호기심보다 앞서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제는 손실회피심리의 함정에 빠지면 이상한 판단을 내리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한다는 점입니다.

손실회피심리는 주식투자자에게 잘 나타납니다. 다음과 상황을 가정해보죠. A회사 주식과 B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두 주식 모두 100만원에 샀습니다. 현재 A 회사는 50만원이고 B 회사는 150만원입니다. 이번 달 아파트 관리비 50만원을 내야 하는데 현금이 없습니다. 그래서 둘 중 하나를 팔아야 합니다. 개인들은 이 상황에서 십중팔구 이익을 보고 있는 B 주식을 팔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A주식은 많이 오르긴 했지만 앞으로도 더 오를 가능성이 큰 반면 B주식은 실적도 나쁘고 악재가 많은데도 그렇게 합니다. 이익을 내고 있는 주식을 팔고 손실을 보고 있는 주식을 보유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A 회사 주식을 파는 순간 손실이 확정되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요?

상승장서 이익 찔끔, 하락장서 손실 왕창

이스라엘 출신 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주식투자자의 손실회피 문제를 다룬 공로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들은 이익이 가져다 주는 기쁨보다 손실이 가져다 주는 고통을 더 크게 느끼기 때문에 돈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손실을 더 키운다는 겁니다.

카너먼은 부의 효용곡선을 이익구간과 손실구간으로 나눠 그래프를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습니다. 효용곡선은 전체적으로 S자 형태를 취하는데, 이익구간보다 손실구간에서 훨씬 더 가파르게 하강합니다. 이익구간에서 효용곡선이 완만하게 오르는 것은 '위험회피적' 성향 때문입니다. 즉 이익이 증가할수록 부의 효용이 줄어 '이 정도면 배부르다'며 위험을 피하려는 심리가 발동한다는 것입니다. 투자자가 상승장에서 수익이 난 주식을 재빨리 매도해 수익을 더 키울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 건 이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이익구간에서 굳이 위험을 안으려 하지 않는 성향이 손실구간으로 넘어오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려는 성향으로 바뀝니다. 손실을 끔찍하게 싫어하기 하기 때문에 위험 앞에서 용감해진다는 말이지요. 즉 투자자들은 이익구간에선 '위험회피적'이지만 손실구간에선 '위험선호적'이 된다는 겁니다. 심지어 주가가 반토막이 나도 언제가 오르겠지 희망고문을 하며 대담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단 위험선호 성향은 본전을 만회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을 때 강하게 나타납니다. 본전 만회 가능성이 적을 때엔 손실상황은 그다지 위험선호 성향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주식투자에서 보유주식이 손실이 날 경우 주식을 추가 매수해 매입단가를 낮추는 '물타기'는 손실구간에서 위험선호 성향을 잘 보여줍니다. 물타기는 자칫 손실 폭을 더 키워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합니다. 가망이 없는 주식이라면 물타기가 아니라 손절매를 하는 것이 슬기로운 투자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투자지식이 짧은 개인은 주식보다는 위험이 덜한 펀드로 간접투자를 하는 게 원금이 깨졌을 경우 위험선호 성향의 발현 가능성을 낮추는 방법입니다.

---------------------------------------------------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29번지 (서울빌딩)
  • 대표전화 : 02-501-63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재열
  • 발행처 법인명 : 한국社史전략연구소
  • 제호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34
  • 등록일 : 2018-07-31
  • 발행·편집인 : 김승희
  • 발행일 : 2018-10-15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이코노텔링(econotelling).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unheelife2@naver.com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장재열 02-501-6388 kpb1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