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얼큰 해진 정주영회장, 느닷없이 '부인에게 절하라' 호통 쳐 참석한 남자들 놀라

정주영 회장은 나중에 현대그룹 회장이 됐을 때도 똑같이 할머니를 챙겼다. 명절 때는 물론 집안의 대소사에 잊지 않고 할머니를 초대했다. 할머니는 "청운동 자택에 자주 가다 보니 꼭 아들 집에 가는 기분"이라며 "내가 늙으니까 이 양반이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 회장이라는 걸 자꾸 잊어버려"라고 말하곤 했다.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1984년 송년회 이야기를 자주 했다. 할머니의 구순九旬을 맞아 정 회장이 마련한 자리였다.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어. 송년회를 하니까 아들 내외와 함께 평창동 현대 영빈관으로 오라고. 그래서 한복 차려입고 갔더니 옛날 쌀집에서 정 회장하고 같이 종업원으로 일했던 이원재 부부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더라고. 또 고향 동창생 몇 명까지 10명도 넘게 초대된 자리였어. 대그룹 회장이 됐으면서도 옛 인연을 잊지 않고 챙기네 하고 생각했지."
정 회장은 "아주머니 구순이라서 제가 저녁 한 끼 대접하려고 모셨습니다. 아주머니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말했다.
할머니를 모시고 갔던 아버지 말에 의하면 그 자리에 국악인 안비취 선생이 오셔서 귀한 공연을 가까이서 봤다고 자랑했다. 정 회장이 이날 모임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고 했다.
할머니는 "정 회장이 처음 쌀집에 온 지 50년 만에 쌀집 식구들이 다시 모인 셈"이라며 "북 치고 장구 치고, 노래 부르고, 참 즐거운 시간이었어"라고 회상했다.
"쌀집에서 일할 때 큰 요릿집에 가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못 간 얘기며, 소학교 때 같은 반 여학생을 짝사랑하던 얘기도 하면서 4시간이 넘게 신나게 놀다 왔어."
할머니는 이때가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즐겁게 놀았던 시간으로 기억했다."술이 한 순배 돌아 다들 얼큰해졌는데 느닷없이 정 회장이 마나님께 절을 해야 한다는 거야. 마나님이 깜짝 놀라 '절은 무슨 절 이냐'고 펄쩍 뛰었지. 정 회장이 평소에 마나님 속을 많이 썩였으니까 오늘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마나님에게 넙죽 절을 하는 거야. 그러고 가만히 있을 양반이야? 거기 앉아있는 남자들한테 모두 자기 부인에게 절하라고 호통을 치더라고. 남자들이 놀라서 우르르 일어나 절했지. 부인들이 모두 기분 좋았을 거야."<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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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