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채우기는 대기업과 비슷해서 70점이지만 가슴채우기는 부족"
임원들에게 경영수업 시키고 있지만 두 딸의 승계 가능성 배제 안해

시몬느는 세계 최대의 명품백 메이커이다. 글로벌 명품 핸드백 시장 점유율이 무려 10%이다. 미국 명품백 시장 점유율은 30% 선에 이른다. 말 그대로 글로벌 리딩 컴퍼니이다.
시몬느는 1987년 박은관 회장이 설립했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건 B2B 기업이기 때문이다. 시몬느는 자사가 만든 핸드백을 제조자개발생산(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또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고객사에 공급한다. 고객사의 핸드백 디자인 및 소재 개발에도 참여하는 ODM의 비중이 70% 선이다. OEM보다, 풀서비스를 하는 ODM이 마진과 고객사에 대한 영향력 면에서 더 유리함은 물론이다. 주요 고객사는 코치, 마이클코어스, 마크제이콥스, 도나카란뉴욕(DKNY), 케이트 스페이드, 로렌 랄프 로렌 등이다. 하나같이 쟁쟁한 브랜드들이다. DKNY와는 35년째, 코치와는 25년째 거래한다. 제조한 백은 전량 수출한다.
시몬느의 연 매출액은 1조원이 넘는다. 핸드백 수출만으로 1조원 클럽에 가입한 셈이다. 1조의 매출액을 핸드백 소매가로 따지면 8조원어치에 해당한다. 본사 직원 약 400명의 경력을 합산하면 6500년이나 된다. 박 회장 자신의 핸드백 업계 종사 경력만도 44년이다.
그는 핸드백 OEM 수출업체 (주)청산의 수출부장으로 근무하다 시몬느를 창업했다. 전 직장인 청산 기존 바이어와의 거래를 피하려 미국의 명품 백 시장을 뚫었다. 중저가 제품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나름의 판단도 했다. 미국 현지 백화점에서 DKNY 제품을 구해 국내에서 그대로 재현했다. 이렇게 만든 핸드백 6개로 마침내 미국 시장에 입성했다. "싸게 잘 만들었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라 곤란하다"던 시장이다. 박 회장은 "3대째 핸드백을 만드는 이탈리아 업체도 처음 시작할 땐 나처럼 맨땅에 헤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업을 하는 데는 정보 못지않게 배짱(gut)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1999년 명품의 고향인 유럽에 진출할 땐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쳤다. 프랑스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 그룹 사장단의 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이탈리아산 명품, 시몬느 제품 각각 다섯 개씩 총 10개를 섞어놓고 LVMH 전문가들이 이탈리아 명품을 가려냈다. 그들이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고 고른 다섯 개의 백 중 세 개가 시몬느 제품이었다.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할 땐 고객사들이 '메이드 인 차이나'는 절대 안 된다고 해 1년 걸렸습니다. 이 역시 제조국(country of origin) 장벽이죠. 중국으로 옮긴 건 인건비가 싸기도 했지만, 서울 근교에 5000명이 일할 공장 부지와 수공업에 종사할 그 인원의 인력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박 회장은 인문학을 전공했다.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출신. 2018년엔 EY 최우수 기업가상을 받았다. 그의 방엔 늘 핸드백 샘플이 그득하다. 매달 100개가량의 핸드백 샘플을 직접 리뷰한다. 고희를 바라보는 오너 CEO인 그는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두고 임원들에게 경영 수업을 시키고 있다. 가족 승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두 딸에게 경영자로 살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고 귀띔했다.
제조업계의 창업 CEO인 박 회장은 "기업은 시장, 커뮤니티, 구성원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3자와 좋은 관계를 맺은 회사가 곧 좋은 기업입니다. 이 세 가지 관계가 때로는 상충하기도 해요. 시몬느의 시장 및 커뮤니티와의 관계는 B학점은 될 거예요. 구성원 관계 면에서는 구성원의 지갑과 머리, 가슴을 채워 주려 노력합니다. 지갑 채우기는 급여 수준이 대기업과 비슷하니 70점은 돼요. 머리 채우기는 한 60점, 가슴 채우기가 아직 50점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시몬느 구성원의 DNA는 도전정신, 캐주얼, 리버럴이다. 이 회사는 무에서 시작해 제조에 이어 판매까지, 아시아에 없던 럭셔리 시장을 창출했다.
"사훈은 따로 없지만 구성원들에게 자유로운 생각, 열린 감성, 새로운 것에 대한 마르지 않는 호기심을 강조합니다. 시몬느의 인재관이기도 하죠."
인공지능(AI)의 영향이 전 산업에 전방위적으로 파급되고 있다. 명품백 회사는 어떨까?
"기본적으로 소량 다품종 생산이라 AI 등의 영향은 제한적입니다. 핸드백 디자인에 이미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죠. 일부 디자인 영역이 AI에 넘어갈 가능성은 있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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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노텔링 이필재 편집위원 ■ 중앙일보 경제부를 거쳐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월간중앙 경제전문기자, 이코노미스트ㆍ포브스코리아 경영전문기자, 이코노미스트 인터뷰 전문기자 등을 지냈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에게 배워라-대한민국 최고경영자들이 말하는 경영 트렌드>, <CEO를 신화로 만든 운명의 한 문장>, <아홉 경영구루에게 묻다>, <CEO 브랜딩>, <한국의 CEO는 무엇으로 사는가>(공저) 등 다섯 권의 CEO 관련서를 썼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잡지교육원에서 기자 및 기자 지망생을 가르친다. 기자협회보 편집인,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이사로 있었고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초빙교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