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2 09:40 (수)
[김성희의 역사갈피]소인(小人)에도 등급
[김성희의 역사갈피]소인(小人)에도 등급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3.04.17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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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있는 소인이 훨씬 위험하고 해악도 크다는 당 고종때 역사적 증거 눈길
여황제 무측천 오른팔 역할했던 허경종, 박학하고 풍부한 경륜 내세워 악역
능력 있는 소인이 훨씬 위험하고 해악도 크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7세기 당나라 고종 때 '활약'한 허경종(許敬宗)이란 인물이 있다. 고종의 황후였지만 그의 사후 주나라를 세워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가 되었던 무측천(武則天)의 총신이었다.

그는 중신 중에 무측천이 황후가 되는 걸 최초로 지지한 이의부(李義府)와 더불어 초기 무측천의 양 날개였다.

한데 허경종은, 고양이처럼 겉으론 온순하지만 속은 음험하고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있다 해서 '이묘(李猫)'라 불린 이의부와는 달랐다.

심한 악행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무식하거나 무능하지도 않았다. 일찍이 방현령 등 훗날의 명재상들과 나란히 십팔학사가 되어 당 태종의 정치고문 역할을 했으며, 『오대사(五代史)』 등 역사서 편찬을 총괄했을 만큼 박학다식했다. 요컨대 능력은 뛰어났지만, 인품과 역사가로서의 자질은 형편 없는 소인이었다. 수나라 말에 군사반란이 일어나 부친이 목숨을 잃을 때 죽음이 두려워 구하려 들지 않았고, 뇌물을 준 사람들에 대해서는 미사려구를 동원해 좋게 기술하는 식이었다.

그 허경종이 659년 감찰어사 이소 등이 모반을 꾸민다는 고발 사건을 맡았다. 허경종은 규정대로 일을 처리하는 척하면서 원로대신 장손무기(長孫無忌)가 모반에 가담했다고 꾸며댔다. 고종의 입장에서 보면 선왕의 측근이었던 원로들의 세력을 꺾을 필요가 있었고, 무측천 또한 자신이 황후가 되는 걸 극력 반대했던 인물이었으니 권력자의 입맛에 맞춘 조치였다.

문제는 이소가 자신의 삼촌이었기에 고종은 처벌을 망설였다. 그러자 허경종은 "한 문제의 외삼촌이 살인을 저질렀을 때 문제는 눈물을 머금으려 사형을 내렸지만 오늘날 성군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지금 외척의 간악함을 방치하신다면 장래 더 큰 변란을 맞아 후회가 막급할 것입니다"라고 고종을 설득했다.

결국 고종은 다른 사람을 시켜 따로 사실 확인도 않은 채 장손무기의 관직과 봉읍을 박탈하고 검주로 유배를 보냈다. 이어 몇 달 뒤 허경종은 유배지로 사람을 보내 장손무기의 자백을 받아내고 자결하도록 압박을 가했다. 이로써 두 황제의 원로를 지냈으며 30년간 재상으로 국정을 운영했던 일세의 명신이 소인 허경종의 요설로 목숨을 잃었다.

이는 중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이중톈이 "중국 역사를 뒤흔든 5명의 독불장군"의 생애를 다룬 『품인록』(에버리치홀딩스)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다루면서 이중톈은 이렇게 평했다.

"소인에게는 네 가지 역할이 있다. 바로 조력, 아첨, 맞장구, 악역이다. 이의부는 쓸 만한 능력이 없었으므로 맞장구 역할밖에 할 수 없었지만 허경종은 풍부한 경륜이 있어 악역을 담당했다"고. 능력 있는 소인이 훨씬 위험하고 해악도 크다는 역사적 증거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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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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