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전기차 보급을 늘리기 위해 차량이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와 오염물질 기준을 강화했다. 아울러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성능의 70% 이상을 차량 운행 8년 뒤에도 유지하도록 하는 등 배터리 최소 성능 기준을 도입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12일(현지시간) 이런 내용을 담은 차량 배출 기준 강화안을 공개하고 60일 의견 수렴을 거쳐 확정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에서 판매하는 모든 차량에 적용되는 기준으로 한국 자동차와 배터리 업계에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새 규제안은 2027년식부터 2032년식 차량에 적용되며 6년간 단계적으로 차량의 이산화탄소(CO₂), 메탄계 유기가스(NMOG)와 질소산화물(NOx), 미세먼지 등의 배출 허용량을 줄여 나간다. 예를 들어 2032년식 승용차의 이산화탄소 배출 허용량을 마일당 82g으로 설정해 2026년식 대비 56% 줄이도록 했다. 자동차 메이커로선 강화된 기준을 맞추려면 내연기관차의 기술 개선으로는 한계가 있어 배출량이 적은 전기차 판매 비중을 대폭 늘릴 수밖에 없다.
EPA는 새 기준이 도입되면 전기차가 2032년식 승용차의 67%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새 승용차의 5.8%가 전기차였던 점을 고려하면 야심 찬 목표다. EPA는 새 기준을 맞추려면 차량 한 대당 비용이 약 1200달러(2023년식 기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연료비 절감 등 전체 경제적 편익이 비용을 능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EPA는 전기차 배터리의 내구성 및 품질보증 기준도 새로 마련했다. 차량 운행 5년 또는 주행거리 6만2000마일 동안 원래 배터리 성능의 80%를, 8년/10만마일 동안 70%를 유지하도록 하는 최소성능기준을 제시했다.
제조사는 차량에 배터리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를 설치해야 한다. 배터리와 관련된 전동장치(electric powertrain)의 품질도 8년/8만마일 동안 보증하도록 했다.
미국 정부의 자동차 배출가스 및 배터리 규제안 발표에 국내 관련 업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자동차업계는 생산역량과 현지 시장 수요 등 여러 변수가 있어 규제안이 제시한 기준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반면 전기차 판매 증가가 이익으로 연결되는 배터리업계는 반기는 분위기다.
현대차와 기아의 지난해 미국 내 전기차 판매 비중은 3.9%였다. 2030년까지 현대차는 이를 58%, 기아는 47%로 높인다는 목표이지만 새 기준을 맞추려면 한층 바빠지게 됐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과 맞물려 미국 현지 공장 건설에 속도를 내는 국내 배터리 업계는 이번 규제안을 긍정적으로 본다. 미국 정부가 IRA를 통해 전기차 보조금과 친환경 에너지 지원을 강화한 데다 전기차 보급 확대에도 힘을 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에는 IRA에 따른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 예상 금액이 1000억원 반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