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7 02:05 (목)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⑦ '쌀집 아주머니'에 극진 예우
[독점연재] 정주영 히스토리 ⑦ '쌀집 아주머니'에 극진 예우
  •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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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5.03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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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처럼 쌀집 차려 사업하다가 자동차 정비사업 하면서도 '할머니' 챙겨
명동 나가 사무실에 들르면 갈비 사주고 "갈비 먹고 싶을 땐 언제든 오셔요"

정주영 회장이 복흥상회에서 일한 기간은 불과 3년 정도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졌다. 비행기와 탱크를 만들기 위해 닥치는 대로 쇠붙이를 거둬들였다.

정미소 기계도 압수해가고, 철문도 뜯어갔다. 도저히 쌀집과 정미소를 운영할 상황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눈물을 머금고 문을 닫아야 했다.

정 회장의 사업 수완이 발휘된 것은 이후였다. 3년 동안 억척같이 일하고, 구두쇠처럼 돈을 모아 이미 고향에 30마지기의 논을 마련해놓았다고 했다. 이 땅을 밑천으로 삼고, 복흥상회 단골손님을 그대로 이어받아 1938년 1월, 만 23세에 신당동에 '경일(京一)상회'라는 쌀가게를 차렸다. '경성에서 제일인 쌀가게'라는 뜻이었다.

할머니의 기억이다. "쌀집 문을 닫으니 점원들이 다 뿔뿔이 흩어졌지. 마음은 아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어. 그런데 어느 날 정 회장이 찾아와서는 자기가 쌀집을 차렸다고 하는 거야. 정말 잘했다고, 당신은 장사 잘할 거라고 말해줬지."

정주영은 1938년 1월, 만 23세에 신당동에 '경일(京一)상회'라는 쌀가게를 차려 처음 독자 사업에 나섰다. 불과 1년 뒤인 1939년, 일제가 전시 군량 확보를 위해 쌀 배급제를 실시하면서 정 회장은 쌀가게 문을 닫고 1940년 자동차 정비공장인 '아도 서비스'를 인수, 본격적인 사업을 벌이게 된다.

'정주영이 일 잘한다'라는 평판은 이미 자자했기에 경일상회의 매출은 점점 늘어났다. 정 회장은 서울여상과 배화여고 기숙사에 쌀을 고정으로 납품했다. 기숙사 고정 납품을 따낸 것은 대단한 사업 수완이었다. 이때의 경험이 나중 현대 시절 각종 입찰에서 보여준 그의 탁월한 실력의 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불과 1년 뒤인 1939년, 일제가 전시 군량 확보를 위해 쌀 배급제를 실시하면서 정 회장은 쌀가게 문을 닫고 1940년 자동차 정비공장인 '아도 서비스'를 인수, 본격적인 사업을 벌이게 된다.

정 회장은 매년 명절 때는 물론이고, 다른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할머니를 찾아뵙고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조그만 은혜라도 반드시 갚는다'라는 정 회장의 의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할머니의 증언이다. "정 회장하고 계속 가까이 지내고 왕래가 있으니까 마치 우리살붙이 같았어. 처음에 정 회장 사무실이 명동 삼화빌딩 자리에 있었거든. 명동 나갈 일이 있으면 간 김에 정 회장 만나러 갔었지.

보고 싶으면 연락도 안 하고 그냥 찾아갔어. '쌀집 아주머니'라고 하면 그냥 통과야. 나중에는 다 내 얼굴을 아니까 아무도 잡는 사람이 없었지.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 양반이 내가 민망할 정도로 벌떡 일어나. 내 손을 잡고는 '아주머니, 갈비 먹으러 가십시다' 하면서 명동에 나가서 갈비를 실컷 사주곤 했어. 오랜만에 갈비를 먹고 배가 부른데 '아주머니, 갈비 잡숫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세요' 이러는 거야. 옛날 조그만 인연을 잊지 않고 계속 챙겨 주니 고마울 따름이었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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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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