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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역사갈피] '소문만으로 탄핵' 악용 소지
[김성희의 역사갈피] '소문만으로 탄핵' 악용 소지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10.04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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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 때 대사헌에 오른 양성지를 사헌부 장령 김제신이 '비리 연루 풍문' 내세워 탄핵
양성지 불복했지만 이틀 만에 교체…대간 10명밖에 없어 증거 제시 불가능해 현실적 선택
탄핵 대상은 주로 고위 대신이어서 후대로 갈수록 대간 이용한 ' 당쟁 확대 '의 불씨로 변질
조선 시대에 '나라 사람이 다 안다'는 공론이 유일한 근거인 '풍문 탄핵'은 악용될 소지가 넘쳐났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1477년 성종 8년의 일이다. 양성지가 사헌부의 장인 대사헌에 임명되었다. 사헌부는 사간원과 더불어 관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국왕의 독주를 견제하는, 조선 시대의 대표적 감사기관이다. 양성지는 세조가 "나의 제갈량"이라 부르며 총애했던 인물로, 여섯 임금을 모시며 『동국통감』, 『고려사』 등의 편찬에 기여하는 등 조선 초기에 활약했던 명신이다.

그런데 사헌부 장령 김제신이 양성지를 탄핵했다. 그가 이조판서로 재임 시에 많은 뇌물을 받았던 탐욕스러운 인물이므로 대사헌에 임명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자, 당대의 명신이자 자기 '보스'인 양성지를 탄핵했으니 정치적 파장이 클 수밖에.

양성지가 자신이 언제 누구에게 뇌물을 받았는지를 증명하라고 반발한 것은 당연했다. 이에 성종은 김제신에게 양성지의 재임 시 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물었다. 김제신은 명확한 답을 하지 못했다. 다만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그런 나쁜 소문이 있는 사람은 대사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이른바 '풍문 탄핵'이다.

조정의 의견이 갈렸다. 정창손 등은 풍문으로 대신을 탄핵해서는 안 된다며 소문의 진원지를 밝히고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성종은 김제신 편에 섰다. 풍문의 진원지를 밝히라고 한다면 대간들이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할 수 없다면서 양성지를 이틀 만에 대사헌의 직에서 교체하고 김제신은 해임하지 않았다. 당연히 양성지는 불복했다.

"…남에게 들었다고 하고 혹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소위 남에게 들었다면 그는 누구이며 모든 사람이 다 안다고 하면 그들은 또 누구입니까?"라며 대질하여 사실 여부를 가려 달라고 요구했다.

여기엔 배경이 있다. 사헌부와 사간원에 배속된 대간의 수는 모두 합쳐 1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 인원으로 당시 모든 관료의 비행을 일일이 감찰하며 증거를 제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또 대간의 탄핵 대상은 주로 고위 대신들이었다. 증거에 의해서만 대신들을 탄핵하라는 것은 사실상 대간의 언로를 막는 조치였다. 당시로선 현실적 필요성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나라 사람이 다 안다'는 공론이 유일한 근거인 '풍문 탄핵'은 악용될 소지가 넘쳐났다. 대간들 자신이 공론을 제대로 대변할 만큼 공정하고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이란 전제가 충족되어야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후대로 갈수록 대간을 이용한 '풍문 탄핵'은 당쟁 확대의 한 원인이 되었다.

『조선은 어떻게 부정부패를 막았을까』(이성무 지음, 청아출판사)에 실린 이야기다. 법무부 장관 탄핵설에 이어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가결되는 정국을 보다가 떠오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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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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