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5 06:55 (월)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⑲샤흐트의 '어음 매직'(1)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⑲샤흐트의 '어음 매직'(1)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2.08.02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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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먼저 '대공항' 극복한 것에 대한 이견있지만 대다수는 인정
히틀러, 수상취임 직후 대통령 사망하자 '무소불위의 권력'인 총통에 올라
중앙은행 총재 샤흐트는 '경제장관' 겸직해 '군사대국의 종잣돈' 마련 수완

이유야 어쨌든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대공황을 극복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하지만 소수다. 대다수는 이를 인정한다. 그러나 인정하는 이들 중에서도 소수는 부정적 견해를 피력한다. 히틀러가 대공황을 극복한 것처럼 보이기는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기'일 뿐이라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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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1월 히틀러는 마침내 수상이 됐다. 샤흐트의 도움이 컸다. 그 보답이었을까. 두 달 뒤인 1933년 3월 히틀러는 샤흐트를 중앙은행 총재에 앉혔다. 그리고 며칠 뒤였다. 히틀러는 의회를 협박해 '비상조치법(Enabling Act)'을 통과시킨다. 수상의 법률 제정권을 인정하는 법률이었다. 이로써 히틀러는 스스로 법을 만들 수 있는 권한까지 갖게 된다. 한 마디로 '파죽지세(破竹之勢)'였다.

바이마르 공화국 제2대 대통령이었던 파울 폰 힌덴부르크.
바이마르 공화국 제2대 대통령이었던 파울 폰 힌덴부르크.

운도 따랐다. 1933년 8월 2일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 대통령이 사망했다. 87세의 고령으로 치매 증상까지 보였던 대통령이었다. 히틀러에게 수상의 자리를 내 준 것도 고령과 치매 때문이었다는 설이 있다. 어쨌거나 히틀러는 얼씨구나 한다. 공석이 된 대통령 자리까지 꿰찬다. 그야말로 무소불위(無所不爲)였다. 그리고 마침내 '제국'을 선포한다. 1933년 9월 그는 '지도자'라는 뜻의 '총통(퓌러, Führer)' 직함을 갖게 됐다. 그러나 말만 '총통'일뿐 실상은 '황제'와 다름없었다.

■ 돈이 없다? 그럼 만들어라!

1933년 3월, 다시 중앙은행 총재 자리에 오른 샤흐트.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1934년 8월 대통령이 죽자마자 히틀러는 그에게 경제부 장관 자리까지 줬다. '보은(報恩) 인사'라 할만 했다. 히틀러의 출세 가도에 샤흐트의 공이 절대적이지 않았나. 하지만 그에 대한 인사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히틀러는 샤흐트에게 중요한 미션도 줬다. 대공황을 이겨내고 첨단 무기로 무장된 군대를 만들 '돈'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샤흐트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중앙은행 총재에 경제부 장관까지 내주며 나라경제와 관련해 전권을 위임한 히틀러였다. 그런 히틀러가 돈을 원했다. 그러니 줘야 했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1924년 '도스플랜'과 1929년 '영플랜'으로 독일경제는 간신히 안정을 취하고 이제 막 도약하려는 참이었다. 하지만 미국 발 대공황이 모든 걸 망쳤다. 돈이 빠져 나갔고 성장 동력이 쪼그라들었다. 실업도 늘었다. 1932년 무렵 실업률은 28%, 즉 3~4명 중 1명이 실업자였다. 독일에는 '돈'이 없었다.

어떻게 돈을 만든다는 말인가. 화폐발행? 그건 불가능했다. 이미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독일이었다. 다시 또 그 지옥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세금? 기업도 국민도 돈이 없었다. 더 거둘 세원도 없었다. 국채발행? 모든 선진국이 망해 가는데 누가 패전국 국채를 사주겠는가. 게다가 히틀러가 쓸 용처도 문제였다. 재무장(再武裝). 승전국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히틀러를 노려보고 있었다. 화폐나 국채발행은 자칫 그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었다.

그러니 샤흐트는 없는 돈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도 다른 나라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몰래 돈을 만들어 몰래 무기를 만들고 군인을 뽑아야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샤흐트였다. 그는 이미 한 차례 '샤흐트 매직'을 선보였다. 모두가 '렌텐마르크의 기적'을 보지 않았나. 히틀러는 그것을 기대했다. 샤흐트라면 또 한 번의 '매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돈'을 마련해 줄 것으로 봤다.

샤흐트는 히틀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또 한 번의 '매직'을 만들어 냈다. 또 한 번의 '샤흐트 매직'으로 나락에 빠진 독일경제를 다시 살려내며 독일을 다시 군사대국을 만들 수 있는 돈을 마련했다. 어떻게? 놀라지 마시라. 이번에 그가 '주술'을 건 대상은 '화폐'가 아닌 '어음'이었다. 그가 자신의 마술봉으로 기업끼리 주고받는 어음을 툭 치자, 어음은 황금으로 바뀌어버렸다. 그것도 밖의 사람들은 볼 수 없는 '투명 황금'으로.

'샤흐트의 어음 매직'에 감추어진 비밀을 보려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가장 먼저 '어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어음'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진화된 신용경제의 역사적 산물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몇 달 뒤 들어올 돈이 있다. 그런데 물건은 지금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몇 달 뒤 돈을 주겠다는 약정서를 써 준 뒤 물품을 양도받으면 된다. 어음은 이때 언제 돈을 주겠다는 약정서, 즉 '지급보증서'로 보면 된다.

16세기 독일의 지질학자 게오르크 브라운(Georg Braun)이 그린 베네치아. 환어음은 13세기 말 동방무역이 발달한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16세기 독일의 지질학자 게오르크 브라운(Georg Braun)이 그린 베네치아. 환어음은 13세기 말 동방무역이 발달한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이 '지급보증서'로서의 어음은 수표나 회사채 등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진화의 길을 걸었다. 그리하여 자기만의 고유한 특성을 유지했다. 그 특성은 다음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➀ 전통적인 의미에서, 어음의 발행자(drawer)는 당연히 지급자(drawee)였다. 하지만 이후 무역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어음이 등장한다. 즉, 물품구입대금의 지급자를 발행자가 아닌 제3자에게 위탁하는 형태였다. '지급자=발행자' 형태의 어음은 '약속어음(Promissory Note)', '지급자=위탁자' 형태의 어음은 '환어음(Bill of Exchange)'이란 이름을 갖게 된다. 환어음은 13세기 말 동방무역이 발달한 이탈이아 베네치아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➁ 어음은 발행자 중심의 유가증권이다. 따라서 발행인이 유리하도록 고안됐다. 어음 발행인은 수개월 뒤 물품대금을 준다고 약속했지만 그 기간 동안의 이자는 별도 계산하지 않는다. 확실히 '발행인 중심'이다. 따라서 어음 소지자(bearer)는 약속 날짜까지 기다렸다가 약속한 금액을 다 받거나 아니면 소정 비율을 할인해(손해를 보고) 금융기관이나 제3자에게 어음을 넘기고 물품대금을 우선 지급받는다.

➂ 어음은 "약속증서로 미리 지불을 대신하고 추후 정산한다"는 점에서 당좌수표와 유사하다. 하지만 수표는 '만기(滿期)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 점에서 어음은 수표와 다르다. 또한 이자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는 회사채와, 또 타인에게 양도 시 이전 소지자가 어음을 보증한다는 배서(背書)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어음은 현금과도 다른 성격을 갖는다.

➃ 어음은 또한 민간에서 발행ㆍ보증ㆍ유통되는 증서다. 정부가 간여할 여지가 별로 없다. 우선 정부는 어음을 발행할 필요가 없다. 돈이 필요하면 세금을 걷거나 국채를 발행하면 된다. 정부가 민간의 어음을 보증할 일도 없다. 그냥 민간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수출입 등 대외적으로 국가의 신용이 필요할 때 정부는 어음을 보증한다. 그러나 이때도 정부가 직접 보증을 선다기보다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을 통하는 게 일반적이다.

어음은 역사적 진화의 산물이다. 결국 어음의 특성은 어음의 진화의 결과다. 샤흐트는 이 같은 '어음'에 '매직'을 섞었다. 어떤 특성은 살리고 어떤 특성은 살짝 변질시켰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다. 샤흐트의 '어음 매직'은 독일이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 독일의 재무장과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 발발에도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그의 '어음 매직' 분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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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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