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09 14:20 (화)
[김성희의 역사갈피]전쟁 중 식량부족이 낳은 공갈빵
[김성희의 역사갈피]전쟁 중 식량부족이 낳은 공갈빵
  • 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 jaejae99@hanmail.net
  • 승인 2022.07.0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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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해상봉쇄로 밀 부족 겪은 독일 관변 학자 등 동원해 대체식품 개발 열 올려
한스 프리덴탈은 지푸라기로 만든 빵 연구했고 그래브너는 골풀로 만든 빵 제안해
러시아는 1909년에서 1914년까지 연간 밀 수확량의 절반을 독일에 수출했고 러시아의 곡물은 독일의 군수품이 되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러시아는 1909년에서 1914년까지 연간 밀 수확량의 절반을 독일에 수출했고 러시아의 곡물은 독일의 군수품이 되었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의 식탁에 주름살이 생겼다 한다. 구미인들의 기본 식량인 빵의 원료가 되는 밀의 국제시장 가격이 오른 것은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식용유 제한판매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애그플레이션이라 해서 전 세계적 경제 침체가 코앞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데 식량이 세계사의 숨은 동인(動因)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독일의 저널리스트가 쓴 『빵의 역사』(하인리히 E. 야콥 지음, 우물이 있는 집)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끝난 데에는 빵 부족이 크게 작용했다.

1900년까지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밀 생산국가였다. 그 러시아는 1909년에서 1914년까지 연간 밀 수확량의 절반을 독일에 수출했다. 1914년 8월 독일 기마대대는 잘 먹인 튼튼한 말을 타고 러시아 국경을 넘었다. 러시아의 곡물이 독일의 군수품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독일은 곧 식량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영국의 해상 봉쇄로 미국산 밀 수입이 중단되었고, 폴란드 등 점령지 동유럽에서는 노동력 부족으로 충분한 식량을 확보할 수 없었다.

1916년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이런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독일 병사들은 풍부하고 질 좋은 전투식량을 배급한다는 소문 때문에 치명적인 베르덩 전투에 참전하기를 지원할 정도였다.

당시 독일 정부는 이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예상대로다. 독일의 관변 영양학자들은 어른이 하루 필요한 열량은 2,000칼로리이며 단백질은 60그램이라고 '설교'했다. 이와 함께 숲과 들판에서 대체식품을 찾는 데 열을 올렸다. 한스 프리덴탈은 지푸라기로 만든 빵을 진지하게 연구했으며, 그래브너는 골풀로 만든 빵을 먹자고 제안했다. 심지어 톱밥이나 목재 펄프에 든 셀룰로스를 화학적으로 처리해 인간이 소화할 수 있는 탄수화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도 있었다. 공기 속의 질소를 화학적 방법 또는 전기 공정을 통해 고정시킨 합성 질소물질을 효모의 먹이로 해서 단백질을 생산한다는 공상과학적 방법도 나왔다. 이 놀라운 '공갈빵'의 발명자들은 이것이 소고기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3배는 더 높고, 파운드당 생산비용은 3%에 불과하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이 같은 권력과 '어용 과학'의 야합은 범죄였다 할 만하다. 이들의 '마술'을 믿고 독일인들은 주린 배를 안고 전쟁을 이어나갔으니 말이다. 식량부족의 실상을 알아챘다면 독일인들은 2년 정도는 일찍 무기를 던지고 항복했으리란 것이 정설이다. 그랬더라면 무고한 생명들이 덜 희생되었을 것이다.

'공갈빵'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이런 대중조작이 오늘날에는 또 다른 형태로 행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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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김성희 객원 편집위원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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