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0 19:40 (금)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⑭ 구세주가 된 도스 플랜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5) 대공황과 히틀러 '위대한 독재자' ⑭ 구세주가 된 도스 플랜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2.05.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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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국, 독일의 ' 땅 본위 화폐 ' 렌텐마르크 불신해 새로운 ' 수혈 작전 ' 펼쳐
배상금 대폭 탕감 받고 2억달러에 이르는 신규 자금마저 대출 받아 활기 찾아
영국과 미국은 프랑스의 독주를 겨냥해 독일의 홀로서기 경제회복에 팔 걷어

'황금족쇄'. 금본위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누가 이 말을 처음 썼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주는 함축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의미는 잘 알 수 있다. 황금으로 바꿀 수 있는 돈. 누구나 그런 화폐를 갖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사람이든 나라든, 그저, 발목을 잡는 '족쇄'에 불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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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본위제 화폐 렌텐마르크. 이와 관련된 대부분의 스토리는 해피엔딩이다.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잠재웠다"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그렇게 일방적으로 끝나는 역사는 별로 없다.

대부분 얽히고설킨다. 렌텐마르크는 언제, 어떻게 끝이 났을까? 제대로 잘 굴러 갔을까? 독일은 진짜 금본위제를 버렸을까? 샤흐트는 끝까지 통화남발을 막았을까? 이들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렌텐마르크를 제대로 이해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렌텐마르크의 끝을 보자. 어디였을까? 이를 독일 배상금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도스플랜(Dawes Plan)과 연결시키는 이는 별로 없다. 하지만 그랬다. 도스 플랜은 결론적으로 렌텐마르크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렇다고 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독일과 승전국 모두에 매우 긍정적이었다. 렌텐마르크는 죽어가면서 새로운 아이를 탄생시킨다. 금본위제 화폐인 라이히스마르크다. '땅본위제'라는 기형아가 죽으며 황금알을 낳은 것이다.

찰스 G. 도스. 1923년 연합국 배상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그는 1924년 독일경제의 부활을 주도한 ‘도스플랜’을 이행시켜 1925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찰스 G. 도스. 1923년 연합국 배상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그는 1924년 독일경제의 부활을 주도한 '도스플랜'을 이행시켜 1925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924년 8월 16일 합의된 도스 플랜의 핵심 내용을 보자.

➀ 1923년 1월 루르 지역을 점령한 프랑스ㆍ벨기에군은 철수한다.

➁ 독일은, 첫해에 10억 마르크, 5년 후부터는 매년 25억 마르크의 배상금을 지급한다.

③ 배상금의 모금 대상에 새롭게 운송세ㆍ소비세ㆍ관세를 포함시킨다.

④ 독일은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채권을 발행해 약 2억 달러를 조달한다.

⑤ 중앙은행 라이히스방크는 연합군의 감독 아래 다시 조직한다.

독일로서는 얼씨구나 하는 말이 절로 나올 일이다. 영토를 되찾고 빚(배상금)을 대폭 탕감받고 배상금 모금은 쉬워지고 게다가 신규 자금까지 대출받는다. 그것도 2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한 해 전 새로 찍은 렌텐마르크가 6억 달러 규모였다. 그 돈으로 나라 경제를 살렸다. 그런데 그 액수의 1/3에 해당되는 돈을, 그것도 달러로, 새로 빌려주겠다고 한다. 엄청난 돈을 빌려주는 입장이었으니 중앙은행에 대한 간여는 오히려 당연했다. 빌려준 돈은 잘 쓰는지, 받을 돈은 제대로 걷는지를 봐야 했다.

■ 英ㆍ美, "독일이 살아야 우리도 산다"

실상 영국과 미국은 독일이 하루라도 빨리 일어나 제대로 걷기를 원했다. 전쟁 전까지만 해도 독일은 영국과 미국의 훌륭한 경제 파트너였다. 독일이 살아나야 상품도 팔 수 있을 것 아닌가. 게다가 독일이 힘을 못 쓰면 유럽 대륙에서 프랑스가 독주할 것이 분명했다. 그 또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폴레옹의 악몽을 없애는 데에 100년은 아직 짧았다. 힘으로 독일 영토였던 루르지역을 점령하는 프랑스의 행동을 보고 미국과 영국은 경악했다.

미국과 영국은 힘을 합쳤다. 독일에 빚을 탕감해 주고 돈도 새로 빌려주려 했다. 하지만 발목을 잡는 것이 있었다. 렌텐마르크였다. 땅본위 화폐라니. 애들 장난도 아니고. 금도 돈도 없는 상황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쓰였다고는 해도, 그리고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큰 성공을 거뒀다고 해도, 다른 나라에서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화폐였다.

당시 선진국 모두가 금본위제를 채택하려는 분위기였다. 그래야 국내경제는 물론 국제통화와 무역이 안정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독일은 달랐다. 돈도 금도 없었다. 과연 미국과 영국 기업이 물건을 팔고 그 대가로 '땅본위 화폐 렌텐마르크'를 받으려 할까? 전문가들 사이에서 렌텐마르크는 거의 '사기'에 버금가는 화폐였다. 독일 밖에서는 아무도 그 돈을 돈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독일과 거래하려면 화폐를 바꿔야 했다. '땅본위 화폐'를 '금본위 화폐'로 만들어야 했다. 2억 달러라는 거액을 대출해 준 여러 배경에는 바로 이 같은 이유도 있었다. 달러는 금과 동급이었다. '달러=금'이 있다면 금본위제로 못 갈 이유가 없었다. 독일 입장에서도 진정 원했던 일이었다. 그래야 진정한 통화안정과 국제적 신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 또 한 번의 화폐개혁이 불가피했다. 승전국들이 준 달러를 근거로 새 돈을 찍어내야 했다.

시간이 없었다. 도스플랜은 그해 1924년 9월부터 발효하기로 돼 있었다. 그 전에 돈을 바꿔야 했다. 바로 돈을 찍었다. 파피어마르크에서 렌텐마르크로 바꾼 지 1년도 안 된 시점이었다. 화폐개혁을 1년에 두 차례나 한다니. 정상 시국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도 해야 했다. 당시 상황은 정상이 아니지 않나. 이로써 1924년 8월 30일 또 한 번의 화폐개혁이 단행된다. 렌텐마르크에서 라이히스마르크로.

이히스마르크. 1924년 법정 화폐로 지정되며 렌텐마르크를 대체한다.
이히스마르크. 1924년 법정 화폐로 지정되며 렌텐마르크를 대체한다.

이번에는 어렵지 않았다. '땅'이 아닌 '금'이 담보된 화폐였다. 누구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렌텐마르크와 라이히스마르크의 비율도 같았다. 1:1로 지폐를 바꿔줬다. 게다가 안 바꿔도 괜찮았다. 법정화폐는 라이히스마르크였지만 렌텐마르크도 사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렌텐마르크와 라이히스마르크는 이후 1948년까지 둘 모두 사용됐다. 물론 라이히스마르크가 법정화폐이며 주력화폐였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독일은 마침내 다른 나라처럼 금본위제 화폐를 갖게 됐다. 이후 독일 경제는 탄탄대로를 걷는 것으로 보였다. 1924년부터 5년 동안 두 배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1927년에는 생산고가 전쟁 전 수준에 도달했고 1929년에는 국민 1인당 생산성이 전쟁 전보다 12%를 웃돌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929년 대공황이 터지면서 독일 내 외국자본이 빠져나갔고 독일경제는 다시 곤두박질쳤다.

대공황의 높은 파도는 또 한 번 금본위제를 무너뜨렸다. 모든 나라가 돈을 더 풀어 경제를 살리려 했기 때문이다. 안간힘을 쓰던 영국도 1931년 9월 21일 결국 금본위제를 폐기했다. 그러자 금본위제를 반대했던 케인스가 기다렸다는 듯 1931년 9월 27일자 신문 『선데이 익스프레스(The Sunday Express)』에 관련 글을 기고했다. '금본위제의 종말(The End of Golde Standard)'이라는 제목이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금본위제가 '족쇄'에 불과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황금족쇄(Golden Fetters)가 끊어진 것을 기뻐하지 않는 영국인은 거의 없습니다. <중략> 비참한 재앙이라 얘기됐던 금본위제 폐기가 이렇게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놀라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통화를 실질 가치 이상으로 유지하려는 인위적인 노력은 진작 중단됐어야 합니다. 이로써 영국의 무역ㆍ산업이 갖는 큰 이점이 빠르게 실현될 것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금본위제는 필요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실행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럼에도 과거의 환상에 얽매인 주요 선진국들이 억지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무리한 금본위제의 도입이 대공황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다시 한 번 그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금본위제의 영욕(榮辱)을 통해 화폐가 갖는 진정한 의미 모두를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가 화폐의 본질을 향해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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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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