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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대공황 '모던 타임스 ⑫ 소비를 추월한 생산
영화로 쓰는 세계 경제위기사(14) 대공황 '모던 타임스 ⑫ 소비를 추월한 생산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 jkrepo@naver.com
  • 승인 2022.01.07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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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경제 위기'의 원인으로 '과잉 생산' 꼽아
게인즈, '영혼의 질병'으로 여긴 '마르크스주의'와도 생각 비슷

마르크스는 위기의 원인을 '과잉생산'으로 본다. 그의 동료인 엥겔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후예들은 좀 다르다. 대다수 노동자들의 임금감소와 실업으로 소비를 못한다는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이른바 '과소소비론'이다. 또한 이 '과소소비론'은 케인스의 '유효수요론'과도 연결된다. 케인스가 사회주의자 아닌가 의심받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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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공급을 지배하던 수요가 공급에 선행했었다. 생산은 한발 한발 소비의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그런데 이미 사용하고 있는 도구들에 의해 끊임없이 더 확대된 규모로 생산하도록 강요된 거대공업은 수요를 기다릴 새가 없게 된다. 생산이 소비에 선행하며 공급은 수요를 강요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즉 개인적 교환에 기초하고 있는 산업에서는 그렇게도 무수히 많은 빈곤의 원천인 '생산의 무정부 상태'가 동시에 모든 진보의 원인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사회주의 철학자 피에르 프루동(Pierre Proudhon)은 1846년 현실세계를 '모순의 세계'로 파악한 책 『빈곤의 철학』을 출간했다. 마르크스는 이 책을 희화화하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1947년 『철학의 빈곤』이 그것이다. 마르크스는 이 책에서도 '생산의 무정부성'이 '과잉생산의 원인'임을 분명히 밝힌다. '생산의 무정부성'이란 개념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이처럼 오래됐다. 이 글을 쓴 다음해인 1848년 엥겔스와 함께 쓴 『공산당 선언』에서도 과잉생산을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위기 때에는 이전의 어느 시대에도 불합리하다고밖에 여겨지지 않는 하나의 전염병, 즉 과잉생산이라는 전염병이 발생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주의 철학자 피에르 프루동(Pierre Proudhon). 마르크스는 그가 쓴 『빈곤의 철학』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책 『철학의 빈곤』을 냈다.
프랑스의 사회주의 철학자 피에르 프루동(Pierre Proudhon). 마르크스는 그가 쓴 『빈곤의 철학』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책 『철학의 빈곤』을 냈다.

마르크스의 이 같은 주장에 그 후예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 러시아 최고의 경제학자로 불리는 투간-바라노프스키(Tugan-Baranovskii, M. I.)라는 사람은 위기가 생산 부문 간 생산량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불비례설'을 주장하는데 이는, 마르크스가 아닌, 마르크스주의가 말하는 경제위기설의 주요 주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는 넓게 보면 마르크스의 과잉생산론으로 볼 수 있다.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밖에 경제위기를 '이윤율의 저하 경향'이라거나 '노동의 유기적 구성' 등의 논리로 얘기하기도 하는데 어렵고 너무 상세한 내용이 되니 그냥 넘어가도 될 성 싶다.

■ 엥겔스, "과소소비론은 천박한 이론"

하지만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게 있다. 적잖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위기의 원인이라 말하는 '과소소비'에 대한 것이다. 때로 이는 케인스의 '유효수요부족론'과 비교되며 같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케인스의 '유효수요론'이 생산-소비-저축의 관계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마르크스주의의 '과소소비론'은 '자본주의 체제 내 자본의 축적 모순'에서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마르크스ㆍ엥겔스는 '과소소비'를 위기의 원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들은 "과소소비 때문이 공황이 발생한다"는 생각을 "속류 경제학자들의 천박함에 기인한다"며 맹렬하게 비난했다. 1878년 출판된 『반(反)뒤링론』에서 엥겔스가 했던 말을 들어보자.

"대중의 소비가, 생명을 유지하고 대를 이어가는데 절대로 필요한 것에만 제한되어 있는 현상은 결코 새롭지 않다. 이는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이 존재한 때로부터 (줄곧) 있어 왔던 것이다. ······ 과소소비는 수천 년 이래의 항구적인 역사적 현상이지만 과잉생산의 결과 공황 시에 돌연히 나타나는 판매의 전반적인 침체는 최근 50년 내에 비로소 볼 수 있게 된 현상이다. 그런즉 새로운 충돌을 과잉생산이라는 새로운 현상으로 설명하지 않고 과소소비라는 수천 년 이래의 낡은 사실로 설명하는 데에는 뒤링 씨와 같은 속류 경제학적인 천박성이 필요하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에 대한 조력자'라는 뜻으로 스스로를 '제2바이올린'이라 불렀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천박하다"는 말까지 하며 난자한 카를 E. 뒤링(Karl Eugen Düring)은 누구인가? '유물론적 실증주의'라는 사상을 기반으로 사회민주주의 철학을 전파했던 학자다. 1833년 생인 그는 『반(反)뒤링론』이 출간된 1878년 마흔 다섯으로 마르크스보다는 15년, 엥겔스보다는 13년이나 어린 학자였다. 그가 엥겔스에게 이처럼 심한 말을 들은 것은 1873년 발행된 『국민경제 및 사회주의의 비판적 역사』 때문이었다. 엥겔스가 비난의 사례로 내놓은 뒤링의 글을 다음과 같다.

"(그는 거대 위기의 원인을 과잉생산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공급과 수요 사이의 엄청난 격차를 만들고 그것을 결정적으로 확장시키는 대중 소비의 지연, 즉 자연적인 국민 수요의 성장에 대한 간섭(!)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과소소비(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대중 소비의 지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과소소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얘기다. 도대체 케인스의 '유효수요부족론'과 뭐가 다를까? 이 차이를 알려면 상당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뒤링과 케인스의 비교를 전문으로 하지 않는다면, 즉 그 세밀한 차이를 알기 위해 달려들지 않는다면, 웬만한 사람들에게 이 둘은 같다. 게다가 케인스는 "일반적 과잉생산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인물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입장에서 보면 뒤링을 대하는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유효수요부족이란 수 천 년 인류 역사에서 늘 있어 왔던 일"이라며 "과잉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특수한 상황을 언급하지 않는 케인스 교수에게는 속류 경제학적인 천박성이 필요하다"고 외치지 않았을까?

독일 사회민주주의 철학의 대가 카를 E. 뒤링(Karl Eugen Düring). 엥겔스는 그의 '과소소비론'을
독일 사회민주주의 철학의 대가 카를 E. 뒤링(Karl Eugen Düring). 엥겔스는 그의 '과소소비론'을 "천박하다"고까지 말하며 비판했다.

이 말을 듣는다면 '천재' 소리 듣는 케인스가 가만있을 리 없다. 그는 대공황과 함께 마르크스주의가 세계를 강타했던 1930년대 사람이었다. 케인스의 전기를 쓴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는 "마르크스주의는 가장 총명하고 뛰어난 사람들에 의해 전쟁ㆍ파시즘ㆍ실업의 치유책으로 환영받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썼다. 그러나 케인스에게만큼은 예외였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영혼의 질병'으로 생각했다. 또한 케인스는 마르크스주의를 리카도가 저지른 최악이며 어리석은 오류 위에 세워진 것"이라 비난했다. 또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해서는 "지루하고 시간에 뒤쳐진 학문적 쟁론들"이라는 말까지 했다.

예나 지금이나 케인스를 사회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로 보려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들은 서로를 '적'으로 간주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마르크스ㆍ엥겔스와 케인스는 숱한 논쟁을 거치며 무패의 대 전적을 기록했던 인물들이다. 대공황을 둘러싸고 이들이 논쟁을 펼쳤다면 어땠을까? 다양한 살상력의 화살을 갖춘 호크아이와 무적의 방패로 무장한 캡틴 아메리카의 한판 대결을 보는 듯 흥미롭다. 대공황의 원인은 과잉생산이었을까, 과소소비였을까? 일반적인 불황과 경제위기는 과잉생산 때문일까 아니면 과소소비 때문일까? 마르크스ㆍ엥겔스와 케인스의 논쟁을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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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 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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