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7 19:25 (화)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82)소양강댐 건설 논란
[독점 연재] 김학렬 일대기(82)소양강댐 건설 논란
  • 김정수 전 중앙일보 경제 대기자
  • econopal@hotmail.com
  • 승인 2022.01.2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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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경제성장률 높아지자 도로와 댐 등 사회 인프라 건설에 눈 돌려
소양강 물줄기 막아 홍수 조절까지 하는 다목적댐 건설에 정부내 이견 암초
황병태 기획원 국장 朴통앞에서 보스인 부총리에 '반기'들고 '다목적' 방점
김학렬 부총리, 댐 열공 끝에 '다목적' 결론…개발시대 건설된 '명품' 반열에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김학렬 부총리의 22년 관료 생활의 여정은 오로지 '5천년 가난'에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역정이었다. 평소 김 부총리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록 하기를 꺼려한 까닭에 그의 육필 자료는 거의 없다. 칠순이 된 그의 장남 김정수 경제 대기자는 지난 수년간 그의 발자취를 더듬고 국가기록원 등 정부 자료집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관중인 사진 등을 뒤져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1960년대 중반, 경제가 9%를 넘나드는 높은 성장률을 보이면서 정부는 경제개발 추진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 무렵부터 정부의 투자 우선순위가 점차 도로와 상하수도, 댐 등 사회 인프라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런 고양된 분위기를 타고 건설부(주원 장관)가 소양강댐[1]건설계획을 내놓았다.

건설부 안은, 북한강 합류 지점에서 소양강 물줄기를 가로막아 25억 톤 이상의 강물을 가두어 담는 다목적 고(高)댐[2]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전력 공급만을 위한 댐이라면 저(低)댐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건설부는 홍수 조절 등 다목적에 활용할 수 있는 다목적 고댐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다목적댐 건설에 소요되는 엄청난 비용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큰 장애 요인은 고댐 건설에 관한 정부 내의 강한 반대 의견들이었다. 일부 정권 실세와 한국전력은 일본 미쓰비시의 차관과 기술을 받아들이자면서 저댐을 주장하고 나섰고, 왕초 부총리도 저댐을 밀고 있었다.

소양강댐에 관한 정부 안에서의 논란은 다시 쓰루의 열공 모드를 작동시켰다. 댐에 관한 국내외 자료 수집, 전문가와 정책 담당자 등과의 대면 의견 청취 등을 거친 그의 결론은 고댐이었다. 그는 "댐을 만드는 데는 공업용수, 생활용수, 홍수 조절, 발전 등 다양한 목적이 있는데, 소양강댐을 저댐으로 하면 홍수 조절에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비용이 훨씬 더 들더라도 고댐으로 가야 합니다"라고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건설부 안은, 북한강 합류 지점에서 소양강 물줄기를 가로막아 25억 톤 이상의 강물을 가두어 담는 다목적 고(高)댐[2] 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전력 공급만을 위한 댐이라면 저(低)댐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건설부는 홍수 조절 등 다목적에 활용할 수 있는 다목적 고댐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사진=한국수자원공사.
건설부 안은, 북한강 합류 지점에서 소양강 물줄기를 가로막아 25억 톤 이상의 강물을 가두어 담는 다목적 고(高)댐[2] 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전력 공급만을 위한 댐이라면 저(低)댐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건설부는 홍수 조절 등 다목적에 활용할 수 있는 다목적 고댐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사진=한국수자원공사.

(그의 고댐 건설 건의에 왕초의 저댐 입장이 얼마나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두 사람은 경부고속도로에 이어 소양강댐 건설에 관해서도 입장을 달리했다.) 그리고 최종성 당시 건설부 차관이 대통령에게 단독 브리핑할 기회를 만들어줘, 박통이 기획원-청와대 비서실-중앙정보부 등 실세 라인 외의 다른 목소리를 듣게 했다. 어느 정도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박통은 고위 장관들을 모두 불러 소양강댐 회의를 열었다. 박통의 지시로 그 회의에는 기획원 황병태 경제협력국장도 참석하고 있었다.

잠시 부처들의 입장을 듣고 있던 박통은 황 국장의 의견을 물었다. 고댐 건설에는 외자와 그에 동반하는 선진 기술 도입이 필수였고, 그 경우 실무 책임자는 황 국장이었다. 자기가 모시고 있는 왕초가 저댐을 선호하는 걸 알면서도, 황 국장은 자신의 소신대로 "홍수와 가뭄 등 종합적 관리를 위해서는 고댐이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 평소 고댐을 주장해온 쓰루가 그 말을 받아서 "고댐을 짓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 것 같다"며 거들고 나섰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무언의 반(反)왕초 전선이 형성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황 국장이 왕초 면전에서 그와 반대되는 의견을 개진한 데에는, 경부고속도로에 이어 소양강댐에 관해서도 박통과 '지는 해' 왕초 간의 근본적인 이견을 감지한 것도 일부 작용했음 직하다.

왕초가 뭐라고 의견을 내려고 하자 박통은 "일본 상업차관 업자들이 들락거리면서 바람을 불어넣은 것 같은데, 원래 건설부 방안대로 고댐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 더 이상 재론하지 말기 바란다"며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빈약했던 정부 재정에 큰 주름살을 줄 만큼 건설 비용이 많이 들기는 했지만, 소양강댐은 훗날 건설된 팔당댐과 의왕댐 등 수많은 고댐의 건설을 이끌어 4대강 유역 개발의 핵심적 상징이 되었다. 소양강댐은 홍수 조절로도 훌륭하게 제 몫을 다해 '개발연대에 건설된 명품'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쓰루는 (기획원 차관에서 재무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2차 계획 집행이 발걸음을 떼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행정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경제수석이 됨으로써,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자신의 '아들' 2차 계획의 성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챙겨야 할 입장이 되었다.

1967년에는 민정 이양(1963년) 후 두 번째 대선과 총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해 선거는 1963년보다 더 어렵게 치러지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성장 실적으로 정치적 지지 기반을 굳히려고 했다. 그래서 2차 계획(1967~1971년)의 신속 추진을 '성공적 정권'의 상징으로 삼고자 했다. 안성맞춤으로 실제 계획보다 더 잰걸음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그 속도로 가면 계획 목표 조기 달성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박통은 서슴지 않고 선거 유세 중에 "2차 계획을 3년 반 안에 완료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선거가 끝난 이후 언론은 '2차 계획 3년 반 완료'를 박 정권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공약으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 공약을 한 것은 박통이지만, '1.5년 단축'의 총대는 부총리인 왕초가 짊어졌다. 만일 2차 계획 목표를 조기에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박 정권뿐 아니라 자신의 업적 내지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박통은 이미 '목표의 조기 달성'으로부터 발을 빼고 있었다. 이왕에 계획보다 빨리 경제 발전이 진행되고 있으니, 1년 반 앞당겨 '목표 조기 달성'으로 할 게 아니라 그것을 계획 말년, 즉 다음 양대 선거가 있는 1971년에 가서 '목표 초과 달성'이라는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수석으로 옮겨 앉은 쓰루도 자기가 아버지로 불리는 2차 계획이 남의 성과, 더구나 왕초의 성과로 인식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2차 계획 1.5년 조기 달성'에 반대하고 있었다. '3.5개년 계획'을 둘러싼 논란은 박통이 공식 석상에서 "무리하지 마라"고 말하여 브레이크를 걸 때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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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7년 4월에 착공하여 총공사비 318억 원을 들여 1973년 10월에 완공하였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의 약 4분의 3이 댐 하나 건설에 들어간 셈이다.

[2] 이전까지는 생활용수, 공업용수 및 농업용수의 확보 또는 수력발전 등 특정 목적에 부응하는 각종 단일 목적 저댐을 건설하여왔으나, 1965년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을 건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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