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0:05 (토)
[손장환의 스포츠史說] 승부차기의 압박감
[손장환의 스포츠史說] 승부차기의 압박감
  • 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 inheri2012@gmail.com
  • 승인 2021.07.14 2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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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성공률 70%그쳐 … 獨분데스리가 98골 차범근"너무 떨려 한 번도 안 찼다"
유로2020결승서 다섯번째 키커로 나서 실축한 잉글랜드 선수 인종차별 공격 받아
승부차기의 관건은 압박감이다. 압박감을 덜 느끼는 팀이 이길 확률이 높다. 사진=UEFA,UEFA EURO 2020/이코노텔링그래픽팀.
승부차기의 관건은 압박감이다. 압박감을 덜 느끼는 팀이 이길 확률이 높다. 사진=UEFA,UEFA EURO 2020/이코노텔링그래픽팀.

7월 12일 유로 2020 결승에서 이탈리아가 잉글랜드를 꺾고 우승했다.

승부차기에서 잉글랜드의 3,4,5번 키커가 연속 실축하는 장면을 보면서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실축한 세 선수가 하필이면 모두 흑인이라니. 더구나 성공한 1,2번 키커는 백인이었기에 불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난리가 났다.

1960년 시작한 유럽축구선수권에서 잉글랜드는 아직 우승이 없다. 이번이 첫 우승의 기회였고, 더구나 홈구장인 웸블리에서 결승전이 벌어졌다. 선취골도 잉글랜드가 넣었고, 승부차기에서도 2-1로 앞서갔다. 그런데 홈팬들 앞에서 역전패를 당했다. 알다시피 잉글랜드는 '훌리건'의 고향이다. 누군가 희생양이 필요했고, 그게 인종차별로 연결됐다. 불행한 일이다.

승부차기의 관건은 압박감이다. 압박감을 덜 느끼는 팀이 이길 확률이 높다. 일반적으로 승부차기 성공률은 80%가 넘지만 큰 대회일수록 성공률이 떨어진다. 역대 월드컵 승부차기 성공률은 70%다.

가장 유명한 승부차기 장면은 바로 1994년 미국 월드컵 결승에서 나온 로베르토 바조의 실축이다. 90년대 이탈리아 최고의 스타였던 바조는 브라질과의 결승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5번 키커로 나왔다. 어이없는 홈런볼을 날리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던 '말총머리' 바조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보여준 대한민국의 승부차기도 명승부로 기억한다. 솔직히 다섯 명이 다 성공시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16강이라는 목표를 이미 초과 달성한데다 온 국민의 열광적인 응원으로 기가 살아난 결과였다. 그때 내가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기쁜 얼굴의 홍명보를 봤다.

차범근의 업적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는 것이 바로 페널티킥이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0년간 308경기에서 총 98골을 넣어 외국인 선수 최다득점을 기록(1999년에 깨졌다)했는데 이 98골이 모두 필드골이다. 손쉬운 페널티골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킥도 차지 않았다. 이 기록은 분데스리가 10년간 경고(옐로카드)가 단 한 차례밖에 없었다는 사실과 함께 차범근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종종 인용된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다.

"일부러 안 찬 게 아니라, 못 찼어. 실축했을 때의 부담감을 견디기 힘들었어. 나보고 차라고 해도 거절했어. 내가 겁이 많잖아."

천하의 차범근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이런 걸 보면 그 부담을 이겨내고 성공시키는 선수들은 진정 강심장의 소유자들이다.

잉글랜드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승부차기 순번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승부차기 자체의 압박감도 큰데다 1번과 5번의 부담은 최고조이기에 경험도 많고 배짱이 좋은 선수를 배치하는 게 일반적이다. 1번을 케인으로 한 것은 수긍할만하다. 그런데 만 19세의 사카를 마지막 5번에 배치한 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사카의 실축으로 패배가 확정됐으니 감독에게 비난의 화살이 몰리는 게 당연하다. 사우스게이트 감독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선수들을 가장 잘 아는 감독 나름으로는 최상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카의 부담이 얼마나 컸을 지는 상상이 된다.

'승부차기에서 실축하는 선수는 역적'이라는 공식이 존재하는 한 승부차기는 잔인한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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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이코노텔링 손장환 편집위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1986년 중앙일보 입사. 사회부-경제부 거쳐 93년 3월부터 체육부 기자 시작.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주요 종목 취재를 했으며 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98년 프랑스 월드컵,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한일 월드컵,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을 현장 취재했다. 중앙일보 체육부장 시절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으며Jtbc 초대 문화스포츠부장을 거쳐 2013년 중앙북스 상무로 퇴직했다. 현재 1인 출판사 'LiSa' 대표이며 저서로 부부에세이 '느림보 토끼와 함께 살기'와 소설 '파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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