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9 01:30 (화)
영화로쓰는 세계경제위기史(11) 바람의 라이온⑦경제난 역이용한 '해적'
영화로쓰는 세계경제위기史(11) 바람의 라이온⑦경제난 역이용한 '해적'
  • 이코노텔링 이재광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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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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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에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금융 흔들리자 J.P.모건, 구원투수로 나서
철강 이어 '석탄과 철광산' 손에 넣으려 대주주였던 증권사 '무어 & 실리'에 압박
루즈벨트도 내키지 않았지만 '매수 승인'…모건, '민간소유 중앙銀' 야심 드러내

루즈벨트는 전쟁 덕을 톡톡히 봤다. 해군 차관보였던 그는 전쟁이 터지자 민간 의용대를 조직해 전쟁에 참여했다. '과장된 것'이라는 평가도 있으나 어쨌든 그는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둬 전후 '전쟁영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해 말 치러진 뉴욕주지사 선거에서 당선된 것도 이 전쟁 덕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년 뒤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그는 매킨리 대통령의 재선 과정에서 러닝메이트가 됐고 부통령이 됐으며 대통령의 사망으로 대통령 대리까지 됐던 것이다.

미서전쟁의 과정에서 봤듯 루즈벨트는 '팽창론자'였다. 위대한 미국 건설을 위해서는 서부를 넘어 태평양을 장악해야 한다고 봤다. 미서전쟁 전부터 그는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쿠바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미서전쟁 당시 부하들과 포즈를 잡은 루즈벨트.
미서전쟁 당시 부하들과 포즈를 잡은 루즈벨트.

이 같은 정책기조는 그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당연히 이어졌다. 파나마 운하를 관철시켰을 뿐 아니라 앞서 얘기했듯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주역도 그였다. 그는 일본에 조선의 병합을 인정하고 대신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점유를 용인했던 것이다.

■ 기회를 잡기 위해 위기를 만든다?

이 같은 개인 성향이 대선 정국과 맞물려 있던 상황에서 모로코 피랍 사건이 터졌던 것이다. 루즈벨트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납치된 미국인의 생명을 구해내야 했다. 그것도 선거 전에.

하지만 많은 이들이 우려를 드러냈다. 20세기 초는 제국주의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시점이었다. 특히 모로코는 아프리카 최북단으로 좁은 지브롤터 해협을 두고 유럽과 마주보고 있었다. 아프리카로 들어가는 관문이어서 영국과 독일, 프랑스가 지역 헤게모니를 두고 벌이던 각축전이 치열했다. '세계 최대 분쟁지역'이라는 오명은 당연했다.

자 그런데 이 '분쟁지역'에서 미국의 한 가족이 납치됐다. 마침 그 나라 대통령은 터프하고 와일드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물이다. 게다가 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가 군사작전을 펼칠 가능성은 농후했고 자칫 심각한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루즈벨트는 군사작전을 펼쳤다. 다행이 강대국 간 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피랍 가족은 구출됐다. 이로써 루즈벨트는 박수를 받았고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무사히 재선에 성공했다.

자 이제 다시 국내 문제로 돌아와 보자. 1904년 대통령에 당선되고 두 해 뒤 루즈벨트는 엄청난 천재지변에 당황한다. 1906년 터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다. 지진도 지진이었지만 이로 인한 경제적 파국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이때 구원투수로 나섰던 것이 J. P. 모건이었다. 그는 중앙은행 대신 그 역할을 자임했으며 엄청난 돈을 지원했다. 무료로? 애국심으로? 당연히 그건 아니었다. 맛난 먹이 감이 그의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모건이 흑심을 품었던 상대는 테네시석탄ㆍ철강회사. 당시 그는 U.S.스틸의 주인이었다. 테네시주의 석탄과 철광산을 보유하고 있던 테네시석탄ㆍ철강회사를 손에 넣기만 한다면 U.S.스틸과 함께 양 날개를 얻게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테네시석탄ㆍ철강회사의 지분 대부분을 보유 중인 증권사 무어 & 실리(Moore & Schley)가 지분을 넘겨줄리 없었고 넘겨준다 해도 루즈벨트 대통령의 야심찬 대기업 규제 정책으로 받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1907년 경제위기가 터지자 얘기가 달라졌다. 무엇보다 증권사 무어 & 실리가 파산지경에 몰렸다. 이 회사의 파산은 일개 증권사의 파산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위기에서 거대 증권사의 파산은 금융시장 전반의 붕괴를 가져올 가능성이 컸다. 증시 관계자는 물론 미국 내 금융 자본가들은 공포 가득한 눈으로 그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중앙은행이 없던 당시 금융계 인사들이 모건을 급히 찾아와 구제 금융을 요청한 이유도 알만 하다.

모건에게는 기회가 왔다. 무어 & 실리에 구제 금융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회사가 보유 중인 테네시석탄ㆍ철강회사의 지분을 요구했다. 무어 & 실리는 물론 금융계 전반은 이 요구를 거절할 입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문제가 또 남아 있었다. 대통령 루즈벨트였다. 모건의 테네시석탄ㆍ철강회사 인수는 반독점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결국 모건은 금융인들에게 또 하나의 조건을 달았다.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금융 관계자들은 급했다. 이 또한 거부할 입장이 아니었다.

주말에 모건과 자리를 함께 했던 금융계 인사들은 월요일 개장 직전 루즈벨트를 만났다. 그리고 결국 승낙을 받아냈다. 당시 루즈벨트는 "반대할 공적인 이유가 없다"며 공식적으로 셔먼법 발동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증시 개장 5분 전에 일어난 극적인 상황이었다. 이로써 뉴욕 증시는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또한 모건은 오랜 염원을 달성했다. 지금도 이 일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그의 엄청난 사업 능력을 보여준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모건이 얻은 것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모건은 이 기회를 더 크게 활용한다. 그저 회사 하나 얻은 것과는 격이 달랐다. 앞서 말했던 대로 이때의 위기를 빌미로 민간 소유의 중앙은행 설립의 기틀을 마련했던 것이다. 그는 올드리치 상원의원을 시켜 경제위기 전반을 분석할 수 있는 위원회를 만들었고 이 위원회 보고서는 수년 뒤 연준 창설의 근간이 됐다. 은행의 지배권은 모건의 수중에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한 가지 덧붙일 게 있다. 이 같은 위기가 그에게 좋은 일만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때의 위기와 관련해서도 '음모론'이 전해져 온다. 모건은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게 아니라 기회를 잡기 위해 위기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검토해 보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얘기다. 그가 억울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같은 음모론을 피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존 멀리스 감독. 특이한 스토리 라인이나 행동 등으로 그는 ‘헐리우드의 야만인’이나 ‘헐리우드의 미치광이’ 등으로 통한다.
존 멀리스 감독. 특이한 스토리 라인이나 행동 등으로 그는 '헐리우드의 야만인'이나 '헐리우드의 미치광이' 등으로 통한다.

■ 미 제국주의 그린 미국 영화

영화 <바람과 라이온>은 몇 가지 측면에서 특이하다. 사실(史實)에 대한 왜곡 정도로만 보면 거론할 가치도 없을 만큼 엉망이다. 피랍인을 남성이 아닌 여성, 그것도 매력적인 배우 캔디스 버겐(Candice Bergen)으로 바꿔 놓았고 흉악한 납치범을 남성미 넘치는 숀 커너리로 대체했다.

그리고 그를 여자와 아이에게 아량이 넘치는 인물로 그렸다. 매력적인 남녀의 로맨스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재료다. 정통 역사학계가로부터 '역사왜곡'이라는 비난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필자가 보기에, 뚜렷한 장점을 갖는다. 영화를 통해 감독의 확실한 역사관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1월 영화 '기생충'으로 골든글로브 외국어상을 수상하며 수상소감 중 "우리는 영화라는 유일한 언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필자가 보기에, <바람과 라이온>은 어떻게 이 '영화라는 언어'로 역사를 '잘' 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재료다. 이에 대한 얘기는 많고 길다. 간단하게 다음 몇 가지 장면만 간추려 생각해 보자.

➀이 글 서두에서 사용된 장면을 보라. 루즈벨트는 라이슐리와 모건을 '해적'이라 말했다. 이 장면에서 그는 총을 쏘고 있다. 표적지에는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빌헬름 황제와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2세가 그려져 있다. 어린 아들은 위험하게 표적지 아래 구덩이에서 표적지 교체 작업을 한다. 이 같은 장면 설정으로 감독은 영화만의 언어로 관객에게 이렇게 말한다. "진짜 해적은 바로 이 사람, 루즈벨트지요."

➁루즈벨트와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영화의 백미(白眉)다. 대표적으로 미군이 탕헤르주 주군(主君)의 궁전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장면을 보라. 궁전 수비대와 총격전이 벌어지며 수 십 명의 모로코 군인이 전사한다. 궁을 점령한 미군은 "라이슐리와 협상하라"며 주군을 위협하고 협박한다. 일본 감독이 일본 자금으로 대한제국기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➂루즈벨트의 야만과 힘에 대한 숭배를 그리는 장면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냥한 곰 앞에서의 기자 인터뷰, 사냥한 곰의 박제를 얌전히 걷고 있는 모습에서 공격적인 모습으로 바꾸라는 지시, 총기 회사에 총을 좀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질책, 상의를 벗은 채 벌이는 권투시합과 그로 인한 한쪽 눈의 실명.... 관객은 자신이 싫어하는 인물을 '해적'이나 '야만족'이라 부르는 루즈벨트의 야만성과 해적성을 보며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➃루즈벨트 주변에 몇 차례 등장하는 군복차림의 일본인도 관심 대상이다. 왜 이 일본인은 생일파티나 사격장 장면 등에서 등장해야 하는 것일까? 그냥 '등장'에 그치지 않는다. 엑스트라급인 모건이 한 마디 대사 없이 처리된 반면 이 일본인에게는, 분량이 꽤 되는 대사도 있다. 그의 이름은 다카히라 고고로(高平小五郞). 당시 미국 주재 일본 공사였다. 엑스트라급을 넘어서는 그의 역할로 루즈벨트와 일본의 가까웠던 관계를 이해하게 해 준다.

앞서 말했듯 당시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수준이다. 당시 미국은 청과 러시아와 싸워 이긴 일본을, 미국처럼 신흥강국으로 여기게 됐다. 필리핀과 멀리 만주까지 넘보던 루즈벨트에게 일본은 동맹을 강화해 유럽의 강국과 대치할 파트너로 삼기로 한다. 나아가 일본 문화에까지 깊은 관심을 보인 루즈벨트는 미국의 대표적인 친일 대통령으로 꼽힌다. 그는 러일전쟁의 중재자로 나서 1905년 '프츠머스조약'을 성사시킴으로써 다음해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게 된다. 감독은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이 일본군의 등장으로 관객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영화가 사실(史實)을 왜곡한 것은 맞다. 하지만 일관된 역사관을 갖고, '영화만의 언어'로 훌륭한 역사하게 역사를 썼다. 당연히 감독에게 관심이 간다. 존 밀리어스(John Milius). 그는 시나리오 작가로 출발했다. 1966년부터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쓴 뒤 1973년 갱영화 <딜린저(Dillinger)>로 처음 감독으로서 이름을 알린다. <바람과 라이온>은 그가 감독한 두 번째 작품. 하지만 프랜시스 포드 코포라(Francis Ford Coppola) 감독이 1979년 만든 괴물 같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시나리오작가와 1982년 로버트 하워드(Robert Ervin Howard)의 판타지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야만인 코난>의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특이한 감독이 특이한 영화를 만드는 것일까? 영화계는 그를 가리켜 '헐리우드의 야만인'이나 '헐리우드의 미치광이' 등으로 불린다. '야만인'으로 불리는 이유. 실제로 그의 성격이 그렇다. 특히 총을 좋아 하는 캐릭터가 영화 속 인물들과 매치된다. '야만'과 '폭력', '총과 칼', '피'는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공통분모이다. 이 '야만'은 당연히 '광기'를 불러 온다. 그는 총을 소지하기 좋아하고 때로 총기로 사람을 위협하기도 한다. '미치광이' 소리를 들을 만하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그는 '천재' 소리도 듣는다. 특이한 성격과 사고방식이 남과 다른 특이한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 내는 탓이다.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1970년대 인기 있는 시나리오 작가"로 알려져 있다. 영화 <바람과 라이온> 그리고 이를 감독한 밀리어스에 대해 관심을 가질 만하다. 필자의 개인적인 관점에 불과할 수 있지만, 그는 영화가 역사를 쓸 수 있는 독특한 방식을 제시해 준다. '역사를 쓰는 영화 언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섭렵해 볼 가치가 있다. 그가 쓰는 역사의 방식은 오래 전 다뤘던 산만한 역사영화 <철의 여인>이나 탐미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기괴한 이탈리아 영화 <그때 그들>과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참고로 영화 <박물관은 살아 있다(2)>를 상기해 보라. 말을 타고 움직이는 수염 기른 군복의 남자가 루즈벨트다. 주인공 래리에게 용기를 주는 그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 같은 이미지는 이 역을 맡은 배우가 정감 있는 로빈 윌리엄스라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이미지는 <바람과 라이언>의 루즈벨트와는 딴판이다. 누구의 이미지가 더 실제적일까? 당연히 해적처럼 보이는 <바람과 라이언>의 루즈벨트다. 앞서 말했듯 그의 외교정책을 가리켜 '몽둥이외교(Big Stick Diplomacy)'라고 한 것에서도 그의 터프한 단면을 읽을 수 있다. <바람의 라이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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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광 이코노텔링대기자❙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사회학(고려대)ㆍ행정학(경희대)박사❙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뉴욕주립대 초빙연구위원, 젊은영화비평집단 고문, 중앙일보 기자 역임❙단편소설 '나카마'로 제36회(2013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인문학상 수상❙저서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 『식민과 제국의 길』, 『과잉생산, 불황, 그리고 거버넌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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