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예상보다 크게 저하됐으며, 이는 금융위기 때보다 급격한 변화라고 신용평가회사가 분석했다. 신용등급 하락 기업이 상승 기업보다 더 많은 현상이 계속됐으며, 신용등급 하락 우위 강도가 전년보다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업체 한국기업평가는 9일 '2020년 주요 산업 전망 및 신용등급 방향성 점검'을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혔다. 발표를 맡은 송태준 한기평 평가기준실장은 "작년 신용등급 하락 우위의 강도가 심해졌다"며 "그 배경은 무엇보다도 예상을 뛰어넘는 기업실적 저하"라고 말했다.
이어 "작년 상장기업들의 매출이 정체된 가운데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며 "금융위기 때도 기업실적이 이 정도까지 나빠지진 않았으며 이는 매우 이례적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송 실장은 "상장기업들의 작년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40% 정도 감소했다"며 "최근 4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한 삼성전자도 연간 누적 영업이익이 반토막 났다"고 살명했다.
지난해 한기평이 신용등급을 높인 기업은 12곳에 그친 반면 낮춘 기업은 그 두 배에 가까운 21곳이었다. 이에 따라 등급 상승 기업 수를 하락 기업 수로 나눈 '신용등급 상하향 배율'은 0.57배로 1을 밑돌았다.
한기평의 신용등급 상하향 배율은 2015년 0.16배를 나타낸 뒤 2016년 0.45배, 2017년 0.63배, 2018년 0.88배 등 3년 연속 상승하다가 지난해 다시 하락했다. 신용등급 상하향 배율이 1을 밑도는 현상은 2013년(0.54)부터 작년까지 7년 연속 이어졌다.
송태준 실장은 "7년째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이 오른 기업보다 많았는데, 이는 과거에 목격하기 어려웠던 현상"이라며 "한국 경제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라고 밝혔다.
특히 비교적 등급이 높은 'BBB-'급 이상 '투자 등급' 기업들은 신용등급 상하향 배율이 2017년 1.11배, 2018년 1.75배를 기록해 2년 연속 1을 넘었으나 지난해는 0.71배로 급락했다. 2017∼2018년에는 투자 등급 기업 가운데 등급이 오른 기업이 떨어진 기업보다 많았는데, 2019년에는 떨어진 기업이 더 많았다는 의미다.
송 실장은 올해 신용등급과 관련한 주요 요소로 개별 기업들의 실적 회복 정도와 재무 부담 통제, 미·중 무역분쟁 재발 여부, 국내 총선과 미국 대선, 중동 불안 등을 꼽았다. 아울러 올해 신용등급 전망에 대해서는 전체 28개 산업 분야 가운데 24개는 '중립적', 4개는 '부정적'이며 '긍정적'인 분야는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인 분야는 생명보험과 부동산신탁, 디스플레이, 소매유통 등이다.
다만 송 실장은 "조선이나 건설업 등 취약한 업종의 구조조정은 지난 몇 년에 걸쳐 대부분 일단락된 것으로 보이며, 올해 안에 국내 기업들의 연쇄적인 부도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작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