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세 불리했던 부시는 집요하게 '상대 이미지' 깎아 내려 대선쟁취

정치를 두고 흔히 '타협의 기술'이라 포장하기도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정치'는 그럴지 몰라도 선거는 아니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승자독식'의 전형적 사례가 선거다. 선거판이 흔히 '진흙탕 속의 개싸움'으로 변하는 이유다.
『네거티브, 그 치명적 유혹』(커윈 C. 스윈트 지음, 플래닛미디어)란 책이 있다. 미국의 정치평론가이자 정치학 교수인 지은이가 "미국 역사를 바꾼 최악의 네거티브 캠페인" 25건을 정리, 소개한 것이다.
지은이는 그중 6위로 꼽힌 1988년 대통령 선거를 네거티브 캠페인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았다. 부시 진영의 선거전략이 "상대 후보자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방법에 대한 지침서 같다"는 이유였다.
당초 판세는 부시가 불리했다. 전임 레이건 대통령 시절 부통령이었으나 존재감이 약해 '나약한 겁쟁이'라는 이미지였고, 그 전 150년 동안 대통령으로 직행한 부통령도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매사추세츠 주지사 출신인 듀카키스는 '매사추세츠의 기적'이라 불린 치적을 일궈내 능력을 인정받은 데다 희귀한 그리스계 이민자 출신 정치인이란 점도 플러스 요인이었다. 때문에 그해 여름까지 듀카키스는 지지율에서 18%나 부시를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부시 진영의 끊임없는 공격으로 역전되어 그 결과는 역사가 보여주는 그대로다.
지은이는 부시 진영의 네거티브 공격 중 '회전문 광고' '보스턴 항구 광고' '성조기에 대한 맹세를 둘러싼 애국심 공세' 등을 대표적으로 꼽았다. 이 중 '회전문 광고'를 보자. 당시 매사추세츠주는 장기수에게 주말 휴가 제도를 실시했는데 마침 윌리 호튼이란 살인범이 주말 휴가를 이용해 살인과 강간을 저질러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부시 진영은 감옥의 커다란 철제 회전문을 통해 수많은 흉악범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TV 광고를 제작, 방영하며 듀카키스의 이런 미온적 태도가 범죄를 양산한다고 공격했다.
사실 죄수 주말 휴가 제도는 99%의 성공률을 보였고 호튼 사건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그러나 "듀카키스의 껍질을 벗겨내려는" 부시 진영에게 사실이나 통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인도주의를 내세운 '진보주의자' 듀카키스가 범죄를 키운다는 인식을 유권자들에게 심는 것이 중요했다.
이는 선거기간 내내 이슈가 되어 급기야 TV토론에서 "당신 아내를 강간하고 살해한 범죄자에 대한 사형을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졌는데 듀카키스는 여기서 결정적 패착을 두었다. 낮고 덤덤한 목소리로 "지지하지 않는다"라 답하는 바람에 일반 유권자들에게 비인간적이고 유약한 진보주의자라는 이미지를 심었다.
이어지는 네거티브 공격에 대해 '수비'에만 급급했던 듀카키스는 "이 선거는 사상을 평가하는 선거가 아닙니다. 능력을 평가하는 선거입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이미 배는 떠난 뒤였다. 악전고투 끝에 결국 선거인단 투표에서 218대 340이란 압도적 표 차로 패배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