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한계 부닥치자 수출로 활로 모색 … 무역 회사 '선경산업' 세워 불황 타개

최종건은 쉬지 않고 끊임없이 앞을 향해 달리는 사람이었다. 아버지 최학배 공의 평소 가르침대로 인생은 달리는 것이며, 달리지 않으면 쓰러진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철학에 더해 결단을 과감히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을 원동력으로,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1962년 수출의 물꼬를 텄음에도 선경직물은 심한 불황에 허덕였다. 당시 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원사 품귀 현상으로 조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했으며, 원사 사정이 풀리자 이번에는 과잉 생산으로 재고가 쌓였다.
이때 최종건은 새로운 결심을 한다. 아무리 질 좋은 제품을 많이 생산해도 시장에 팔지 못하면 재고 부담으로 경영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내수만으로는 부족했으며, 결국 살길은 수출뿐이라는 결론이었다.

"이제 우리도 무역 회사를 세운다!"
많은 임원이 의구심을 품었다. 자금 사정도 좋지 않은 마당에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다는 게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밀어붙이지 않으면 나중에 더욱 힘들 것이라는 게 최종건의 판단이었다. 그에게 위기는 과정일 뿐이었다.

1962년 8월 최종건은 무역업을 목적으로 하는 선경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한다. 이후 홍콩과의 거래가 계속 이어져 선경은 그해 4만 6,000달러의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또한 최종현이 합류해 해외 거래의 전면에 나선 1963년에는 첫 수출 물량의 무려 10배에 해당하는 300만 마를 역시 이전 해보다 높은 가격으로 수주해 1962년 대비 37배에 이르는 실적을 거두게 된다.
손해를 보더라도 수출길을 여는 게 중요하다는 최종건의 전략이 불과 1년 만에 빛을 본 순간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