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5 21:05 (화)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18) 부자와 가죽장이--돈의 상대성 원리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18) 부자와 가죽장이--돈의 상대성 원리
  •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sms085@naver.com
  • 승인 2024.01.25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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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5000원 짜리 휴대용 밧데리를 1만원에 살 수 있다면 더 멀리 있는 편의점이라도 갈 것
10만원 하는 무선 이어폰을 9만5000원에 살 수 있다고 해도 굳이 다른 가게로 갈 지 의문
돈의 상대성이 일으키는 착각은 알아둬야 불필요한 지출 막고 과소비 따른 자책감도 지워

어느 마을에 아주 많은 재산을 가진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부자는 날마다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정원에는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꽃과 나무들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부자의 집 근처에 가죽일을 하는 사람이 새로 이사를 왔습니다. 가죽 일을 하는 사람의 집에는 부자의 집과는 달리 날마다 동물들의 배설물과 피 냄새 그리고 가죽을 손질하는 냄새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고약한 냄새가 나자 부자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냄새야? 정말 지독하구나."

향기로운 냄새만 맡고 싶던 부자는 고약한 냄새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어. 옆집에 있는 가죽장이를 멀리 쫓아내는 것이 좋겠네." 부자는 가죽장이를 불러서 당장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라고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가난한 가죽장이는 허리를 굽신거리며 곧 이사를 가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가죽장이는 여전히 자기 일에만 열중할 뿐이었습니다.

부자는 날마다 가죽장이에게 이사를 가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럴 때 마다 가죽장이는 곧 간다고 하면서 차일피일 이사를 미루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해서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부자는 가죽 냄새에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가죽장이에게 이사를 가라고 못살게 굴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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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환경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 덧 익숙해지게 된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좋은 환경에서만 살다가 갑자기 나쁜 환경에서 살게 되면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견디기 힘들다고 해서 그 환경에서 살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나쁜 환경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 덧 익숙해지게 됩니다.

가죽 냄새보다 더 지독한 악취가 나오지 않는 한 부자는 가죽장이한테 이사가라고 하지 않을 겁니다. 사람의 후각이란 처음 자극보다 더 센 자극을 받아야만 자극의 변화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자극의 강도와 감각 사이의 비례 관계= 독일 학자 에른스트 하인리히 베버(1795~1878)와 구스타프 페히너(1801∼1885)의 이름을 딴 '베버-페히너의 법칙'은 자극의 강도와 사람의 감각 사이에는 일정한 비례 관계가 있다는 걸 설명해 줍니다. 자극이 강할수록 자극의 변화를 느끼려면 변화의 차이가 커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양초 10개가 켜져 있는 방에 1개를 더 켜면 방이 환해졌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양초 100개가 켜 있는 방에 1개를 더 켜면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 법칙에 따르면 양초 100개를 켠 방에서는 양초 10개를 더 켜야 양초 10개에서 하나 늘었을 때의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감각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자극의 강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입니다. 어떤 조건에서 자극에 받느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양초 하나를 켜는 경우 양초 100개가 켜진 방보다는 캄캄한 방에서 켰을 때 훨씬 밝게 느껴집니다.

이 법칙은 일상 곳곳에서 쉽게 발견됩니다. 예를 들면, 음악 콘서트장에서는 조용한 데서 이야기할 때보다 더 큰 소리로 이야기해야지만 서로 알아들을 수가 있고, 밤에는 달이 보이지만 낮에는 태양빛의 자극이 세기 때문에 달이 보이지 않습니다. 기온이 똑같이 3도 상승하더라도 13도에서 16도로 상승했을 때보다 3도에서 6도로 상승했을 때 온도변화를 더 쉽게 느낍니다.

옛날 어른들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라'라고 했는데, 크게 고생한 이후에는 웬만한 어려움이 닥쳐도 크게 느껴지지 않아서 잘 극복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바쁜 직장생활을 할 때 틈을 내어 갔다 온 3박 4일의 달콤한 여름 휴가와 은퇴자가 여유롭게 갔다 온 휴가가 그 묘미가 같지 않은 것도 결국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휴일이란 지옥이나 다름없다"고 한 버나드 쇼의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 것인가 봅니다.

그러면 이러한 베버-페히너의 법칙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첫번째, 심리적인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죠.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이라는 것도 실체가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상대적인 느낌입니다. '얻은 것이 많을수록 느끼는 행복은 작아진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지 못할 때도 행복은 여전히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단지 마음 속에 그에 대한 감성을 잃었을 뿐입니다.

또 이 법칙은 돈에 대한 감각에서도 나타납니다. 1만원과 1만5000원 차이는 크게 보이지만 10만원과 10만5000원 차이는 그리 크게 안 보입니다. 1만5000원 짜리 휴대용 밧데리를 1만원에 살 수 있다면 더 멀리 있는 편의점이라도 그리로 갑니다. 그러나 10만원 하는 무선 이어폰을 9만5000원에 살 수 있다고 해도 굳이 다른 가게로 가지 않습니다. 10만원을 쓸 때에는 5000원은 푼돈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사람들은 돈을 상대적으로 판단합니다. 그 결과 같은 1만원이라도 크게 느끼기도, 적게 느끼기도 합니다. 보통 사람과 부자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자는 돈의 상대성이 만들어 내는 착각에 잘 속지 않습니다. 수 백억 원을 가지고 있더라도 부자는 1만원이라도 절대 푼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100만원을 쓸 때 5만원을 더 쓰는 것은 얼마되지 않은 몇 푼의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얼마 되지도 않는다는 착각이 결국 이제껏 애써 모은 돈을 감쪽같이 사라지게 만듭니다. 만약 언제든 만원이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씀씀이가 헤픈 건 아닌지 스스로 점검해 볼 것을 권합니다. 나의 돈이 지금 어디에선가 줄줄 새 나가가고 있다는 뜻이니까 말입니다.

해외여행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항공권과 숙박비에 큰 돈을 쓰면 외식비는 상대적으로 싸 보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카드 사용내역을 확인하는 순간 외식비가 의외로 많이 나온 것을 보고 놀랍니다. 대형 마트에서 쇼핑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사지도 않은 것 같은 데 계산대에 계산을 해 보니 금액이 너무 많이 나와 몇가지를 덜어낸 경험이 있을 겁니다. 한꺼번에 여러 물건을 사다 보면 자질구레한 물건 값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요하지도 않은 이런 저런 물건을 카트에 담습니다. 푼돈의 무서움은 한참 쌓인 다음에야 알게 됩니다.

규모가 큰 소비를 할 때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엄청난 손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새 집을 하나 장만했다고 칩니다. 집은 전 재산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비쌉니다. 큰돈을 쓰고 나면 불필요한 지출이 늘어납니다. 가전제품, 가구 등은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입니다. 결국 지름신이 강림합니다. 기왕 사는 것 고급 가구로 집안을 채우겠다며 마구 질러댑니다. 이런 식으로 하다 빚쟁이가 된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목격했습니다.

◇돈의 상대성이 부르는 착각=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큰 금액을 투자하다 보면 100만원, 200만원 손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적은 금액부터 투자해 서서히 늘려가면 감정적 동요나 실수를 잘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10만원을 투자해 1만원을 잃은 사람은 10분의 1이나 잃었다는 생각에 가슴을 치며 다음에는 절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500만원을 넣고 50만원을 잃은 사람에게는 1만원 잃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닌게 됩니다. 즉 돈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 1만원을 쉽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연스럽게 큰돈도 흥청망청 쓰게 돼 나중에는 돈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립니다.

수백 억원을 가지고 있어도 1만원은 언제나 1만원일 뿐입니다. 10만원, 1000만원, 1억원을 먼저 소비했든 안했든 1만원은 늘 1만원입니다. 무조건 아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해외여행에서 약간의 호기를 부리고 싶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집을 살 때 평소 마음을 두고 있었던 가구가 있다면 사세요. 그러나 돈의 상대성이 일으키는 착각은 알아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불필요한 지출을 막을 수 있고 과소비에 따른 자책감도 지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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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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