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자존심 걸려 창단한 지 4년만인 87년 현대 축구단 전격 해체 충격파

국내 프로 스포츠의 역사는 82년 프로야구에서 시작됐다. 다음 해인 83년에 프로축구와 프로씨름이 출범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81년부터 프로야구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당시 고교 야구가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기에 이를 바탕으로 지역을 연고로 하는 프로 스포츠로는 야구가 적격이었다. 프로야구를 준비하던 사람들은 지역 연고 대기업을 찾아가 프로야구단 창단을 권유했다. 대구의 삼성, 부산의 롯데, 광주의 해태 등이었다.

추진 인사들은 당연히 강원도가 고향인 정 회장에게 인천·경기·강원을 연고로 하는 현대 구단의 창단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정 회장은 서울올림픽 유치 추진위원장이었다. 올림픽 유치라는 큰 사업을 맡은 정 회장이 프로야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정중하게 고사했다. 현대가 처음부터 프로야구에 뛰어들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정 회장이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고, 대한체육회장을 맡은 이후 프로축구단 창단에는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83년 12월, 현대 호랑이 축구단(현 울산 현대)이 창단됐다. 국내 4호 프로축구 구단이다. 처음에는 인천과 경기를 연고지로 했다가 87년 강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90년부터는 모기업인 현대자동차가 있는 울산으로 옮겨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현대 프로축구단의 모기업은 98년에 정몽준 회장의 현대중공업으로 변경됐다.
창단한 지 4년만인 87년 11월, 현대축구단이 전격 해체를 선언해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적이 있었다.
발단은 고려대 김종부 선수를 둘러싼 현대와 대우의 스카우트 싸움이었다. 축구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라이벌 관계였던 현대와 대우는 김종부 쟁탈전을 그룹의 자존심을 건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83년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4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김종부는 그해 11월, 만 18세에 국가대표로 뽑혀 한국 축구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대형 공격수로 관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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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텔링 이민우 편집고문■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대한일보와 합동 통신사를 거쳐 중앙일보 체육부장, 부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LA 올림픽,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92 바르셀로나올림픽, 96 애틀랜타올림픽 등을 취재했다. 체육기자 생활을 끝낸 뒤에도 삼성 스포츠단 상무와 명지대 체육부장 등 계속 체육계에서 일했다. 고려대 체육언론인회 회장과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총장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