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동안 최종건의 공장재건 노력과 열정을 지켜본 주변 사람 감동 받아
돌처럼 단단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해 자금 지원 받아 내
동생 최종현이 유학자금을 내놓자"선경직물 반드시 우뚝 세우겠다"고 각오
돌처럼 단단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해 자금 지원 받아 내
동생 최종현이 유학자금을 내놓자"선경직물 반드시 우뚝 세우겠다"고 각오

공장 재건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부지 인수 자금이었다. 스물여덟 살 청년에게는 만만치 않은 돈이었다. 더구나 연이어 사업 실패를 거듭한 그는 더 이상 아버지 최학배 공의 신뢰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몇 개월 동안 최종건의 노력과 열정을 지켜본 주변 사람들이 나서면서 돌처럼 단단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생 최종현도 아버지를 설득하며 자신의 유학을 일시 단념하고 유학 자금까지 보태겠다고 적극 도왔다.
"먼저 형의 사업비를 대주어 사업이 잘되면 그때 유학을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동생의 유학 자금만은 한사코 받을 수 없다던 최종건은 마음을 돌렸다. 함께 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히 동생의 유학을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선경직물을 우뚝 세우겠노라고 각오를 다졌다.

1953년 4월 8일, 최종건은 선경직물 공장부지 약 3만 9,000㎡ 중 약 1만 3,200㎡를 차철순과 공동명의로 매입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SK 70년의 시작이었다.
오직 맨손만으로 폐허에 불과한 선경직물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신념이 만든 기적이 아니었을까. 최종건이 평생 간직한 아버지의 말씀이 있다. 그것은 사업가 최종건을 만든 엄청난 유산이기도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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