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2 20:15 (토)
[특별기획]'SK 70년' 최종건語錄유산② "뜨거운 열정"
[특별기획]'SK 70년' 최종건語錄유산② "뜨거운 열정"
  • 특별기획팀
  • webmaster@econotelling.com
  • 승인 2023.11.24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몇 개월 동안 최종건의 공장재건 노력과 열정을 지켜본 주변 사람 감동 받아
돌처럼 단단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해 자금 지원 받아 내
동생 최종현이 유학자금을 내놓자"선경직물 반드시 우뚝 세우겠다"고 각오

공장 재건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부지 인수 자금이었다. 스물여덟 살 청년에게는 만만치 않은 돈이었다. 더구나 연이어 사업 실패를 거듭한 그는 더 이상 아버지 최학배 공의 신뢰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몇 개월 동안 최종건의 노력과 열정을 지켜본 주변 사람들이 나서면서 돌처럼 단단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생 최종현도 아버지를 설득하며 자신의 유학을 일시 단념하고 유학 자금까지 보태겠다고 적극 도왔다.

"먼저 형의 사업비를 대주어 사업이 잘되면 그때 유학을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최종건 창업회장, 1953년 대한민국 최고의 섬유 기업을 꿈꾸며 자료=SK.
최종건 창업회장, 1953년 대한민국 최고의 섬유 기업을 꿈꾸며. 자료=SK.

동생의 유학 자금만은 한사코 받을 수 없다던 최종건은 마음을 돌렸다. 함께 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히 동생의 유학을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선경직물을 우뚝 세우겠노라고 각오를 다졌다.

창업 무렵의 선경직물(1953). 최종건 창업회장은 1953년 3월 재건을 시작했다. 기숙사 건물 복구에 이어 흩어진 부속품을 모아 직기를 재조립했다. 재조립한 직기 4대는 복구한 기숙사 건물에 설치했다. 이후 추가로 직기를 더 조립해 1953년 7월 총 15대의 직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진=SK.
창업 무렵의 선경직물(1953). 최종건 창업회장은 1953년 3월 재건을 시작했다. 기숙사 건물 복구에 이어 흩어진 부속품을 모아 직기를 재조립했다. 재조립한 직기 4대는 복구한 기숙사 건물에 설치했다. 이후 추가로 직기를 더 조립해 1953년 7월 총 15대의 직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진=SK.

1953년 4월 8일, 최종건은 선경직물 공장부지 약 3만 9,000㎡ 중 약 1만 3,200㎡를 차철순과 공동명의로 매입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SK 70년의 시작이었다.

오직 맨손만으로 폐허에 불과한 선경직물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신념이 만든 기적이 아니었을까. 최종건이 평생 간직한 아버지의 말씀이 있다. 그것은 사업가 최종건을 만든 엄청난 유산이기도 했다.<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 229번지 (서울빌딩)
  • 대표전화 : 02-501-63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재열
  • 발행처 법인명 : 한국社史전략연구소
  • 제호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 등록번호 : 서울 아 05334
  • 등록일 : 2018-07-31
  • 발행·편집인 : 김승희
  • 발행일 : 2018-10-15
  • 이코노텔링(econotelling)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5 이코노텔링(econotelling).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unheelife2@naver.com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장재열 02-501-6388 kpb11@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