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기업 간, 또는 국가 간의 치킨게임 승리자는 독점적 지위 얻어 실질적이득 차지
낮은 원가,자금력,강한 의지 '3박자' 갖춘 삼성전자는 '반도체 세계시장'서 경쟁사 압도
한 집에 두 마리의 수탉이 살고 있었습니다. 두 마리의 수탉은 한 집에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닭들의 세계에서는 오직 한 마리의 수컷이 모든 암컷들을 거느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탉 두 마리는 암탉을 거느리기 때문에 날마다 싸웠습니다.
"여기는 원래 내가 먼저 왔어. 빨리 이곳을 떠나는 게 좋을 거야."
"웃기지 말라구. 내가 힘이 더 세니까 네가 떠나는 게 당연해."
"그렇다면 한번 싸워보겠다는 거야?"
"좋아. 지는 쪽이 이곳을 떠나는 거야."
결국 수탉 두 마리는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됐습니다. 수탉들의 싸움은 무척 거칠고 끈질겼습니다. 힘이 비슷한 두 마리 수탉의 싸움은 한나절이 지나도 좀처럼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힘이 센 수탉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싸움에 진 다른 한 마리는 비틀거리더니 덤불 속으로 달아났습니다.
암탉들은 싸움에서 이긴 수탉을 향해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승리한 수탉은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수탉은 허공으로 솟구쳐 높다란 담장 위로 올라갔습니다.
"어때? 내가 최고지?내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수탉이야."
수탉이 어깨를 으쓱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나타났습니다. 독수리는 쏜살같이 내려오더니 날카로운 발톱으로 싸움에서 이긴 수탉을 움켜잡았습니다. 독수리에게 잡힌 수탉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독수리는 커다란 날개를 움직이면서 하늘 높이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덤불 속에 숨어있던 수탉이 기어나왔습니다. 이제는 모든 암탉들이 그 수탉의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수탉은 독수리에게 잡혀간 수탉을 대신해서 모든 암탉을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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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에서 이긴 수탉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돼 너무 잘난 척하다가 화를 당했습니다.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서 지나칠 정도로 오만하게 구는 사람은 어떤 화를 당하게 될지 모릅니다. 만약 수탉이 겸손하게 행동했다면 독수리에게 잡히지 않고 암탉들과 함께 살 수 있었을 겁니다.
◇암탉 10마리 차지하기 위한 수탉의 사생결단=닭은 일부다처제이며 수탉 한 마리가 암탉 10마리를 거느리고 산다고 합니다.
수탉이 두 마리면 싸움을 해 패한 한 마리는 도태하고 승리한 수탉이 주변의 모든 암탉을 통솔합니다.
인간 사회에서도 닭싸움 같은 광경이 종종 목격됩니다. 이른바 '치킨게임'이라고 하죠. 수탉처럼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지만, 닭 세계와는 약간 다른 개념입니다. 치킨게임은 원래 둘이 마주보고 돌진하다가 먼저 피하는 쪽이 지는 게임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치킨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치킨이 '겁쟁이'를 뜻하는 속어로도 쓰이기 때문입니다. 겁쟁이 게임이라고도 불리는 치킨게임은 1950년대 미국의 갱이나 반항적인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습니다.
제임스 딘 주연의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을 보면 두 젊은이가 각자 차를 몰고 결투를 벌이듯 절벽으로 달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먼저 멈추는 사람이 지는 치킨게임인 것입니다. 어떤 형태의 치킨게임이든지 한쪽이 물러서거나 양보하지 않으면 둘다 파국으로 치닫게 마련입니다. 치킨게임에서 이기는 비결은 배짱이겠죠. 하지만 이런 배짱은 지혜와 치밀한 분석에 따른 필승 전략이 아니라 막무가내식 만용일 뿐입니다. 아무리 용감해도 죽고나면 그만이기 때문이죠.
치킨게임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나는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 주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물론 상대방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파국에 근접해 갈수록 어느 순간 양쪽 모두, 또는 최소한 한쪽은 결국 백기를 들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위험을 대하는 합리적 생각입니다. 그러나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버즈라는 젊은이는 마지막 순간에 차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사실 상식적이라면 이런 게임은 보통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돌아오는 것에 비해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이득이라고 해봤자 상대방을 꺾었다는 자부심 뿐이고, 그에 대한 리스크는 사망내지 중상인 것이죠. 즉 자신의 목숨을 걸어 얻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자부심뿐입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요즘은 치킨게임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개인과 개인간의 치킨게임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업과 기업 간, 또는 국가 간의 치킨게임은 사정이 다릅니다. 싸움에서 이긴 수탉이 암탉들을 독점하듯이 치킨게임에서 진 경쟁자의 퇴출에 따라 독점적 지위 획득이라는 실질적 이득이 돌아오므로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경쟁사를 이길 수 있다면 얼마를 손해를 보든 비상식적인 출혈경쟁을 펼치기도 합니다. 이 경우 패자는 물론이고 살아남은 기업도 엄청난 손실을 입어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 있습니다. 치킨게임에서 이겨 우두머리가 됐다고 으스대다 독수리의 먹잇감이 된 이솝우화의 수탉처럼 '승자의 저주'가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치킨게임은 자존심 때문에, 또는 허약한 재정상태에선 벌일 일은 결코 아닙니다.
1980년대 미국과 소련의 군비경쟁을 꼽을 수 있습니다. 서로 경제가 기울 정도로 신무기 개발에 돈을 쏟아 붓다가 결국 자본력이 달리는 소련이 무너져버렸습니다. 군비경쟁은 대표적인 치킨게임입니다. 서로 적대 관계인 A와 B라는 두 나라가 있다고 칩시다. A가 높은 수준의 군비를 선택하면 B보다 높은 수준의 안전도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잠깐 동안입니다. 상대국도 군사력 증진에 투자하기 때문입니다. B의 안전도가 A 수준으로 높아짐에 따라 A는 군사력 우위를 지키기 위해 또 다시 군비 투자에 나섭니다. 이런 식으로 두 나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입니다. 그러는 동안 각 나라의 경제와 민생은 멍이 드는데,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쪽이 두손을 들게 됩니다.
◇삼성전자의 세계 1위 유지 비결=경제 쪽에선 생산비를 낮출 수 있는 선두 기업이 경쟁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치킨게임 전략을 사용합니다. 2008년 삼성전자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일어났던 치킨게임인데, 당시 도시바, 엘피다처럼 파이를 나눠먹던 군소 업체들을 철저히 밟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삼성전자가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낮은 원가, 풍부한 자금력, 강력한 의지의 3박자를 모두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는 당시 높은 수율을 기반으로 하여 업계 최고 수준의 원가경쟁력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똑같이 가격을 후려치면 삼성전자는 피를 보는 정도지만 경쟁사들은 골수까지 흘러나오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또한 삼성전자는 자체 자금력도 풍부했지만 필요시 계열사들을 통해 그룹 차원에서 추가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막대했기 때문에 그정도 배경이 없는 경쟁사들이 자금력으로 버티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우리나라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몇몇 업체만 남았습니다. 치킨게임은 잘못하면 같이 망하지만 경쟁 기업이 무너지면 시장의 강자로 살아남아 더 큰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단 치킨게임은 아무 때나 벌어지는 건 아닙니다. 경기가 나빠진 불황기가 그 적기입니다. 불황에는 수요가 부족해져 남는 공급량이 생기는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어 상품 경쟁력을 올리게 됩니다. 가격을 내리면 수요를 늘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원가가 높은 기업은 도산하기 때문에 더 많은 점유율을 차지해 잉여생산을 줄일 수 있습니다.
높은 시장 진입 장벽도 전제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치킨게임의승자가 나머지 기업을 파산시키고 독식을 하더라도 해당 산업의 진입장벽이 낮다면 새로운 경쟁업체가 생기게 됩니다. 산업의 진입장벽이 낮다면 선두기업이라도 쉽사리 치킨게임을 벌일 엄두를 못냅니다.
또 하나 이상의 선도기업이 존재해야 합니다. 선도기업은 경쟁업체보다 낮은 생산원가와 높은 자본력을 가집니다. 대부분 기업이 비슷한 자본력과 생산력을 가졌다면 모두가 같이 파멸하기 때문에 치킨게임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D램 반도체의 경쟁에서도 보듯이 삼성전자, 하이닉스, 마이크론은 높은 자본력과 생산력을 가져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았고 나머지 기업은 선도기업에게 밀려 파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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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