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1 18:45 (화)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⑨ '위기 예측' 잘못한 애꾸눈 사슴의 교훈
[서명수의 이솝 경제학] ⑨ '위기 예측' 잘못한 애꾸눈 사슴의 교훈
  •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 sms085@naver.com
  • 승인 2023.09.07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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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가능한 위기는 얼마든지 대비 … '위기설'이 종종 '설'로 그치는 것은 사람들이 대비하기 때문
17세기 한 생태학자 호주서 '검은 백조'(블랙스완) 발견…'불가능'이 실제 발생한다는 뜻으로 변모
최초의 블랙스완 사건은 1929년 대공황…우리나라에선 '대마불사' 대기업의 몰락 안긴 외환 위기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사슴이 있었습니다. 애꾸눈 사슴은 항상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한쪽 눈을 가지고는 무서운 동물이나 사냥꾼들이 다가오는 것을 잘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애꾸눈 사슴은 어린 나뭇잎을 먹기 위해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애꾸눈 사슴은 사냥꾼이 다가오는지 감시하기 위해 잘 보이는 눈을 육지 쪽으로 향하게 하고, 안 보이는 눈은 바다 쪽으로 향했습니다. 바다 쪽에는 별로 위험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애꾸눈 사슴은 육지를 경계하면서 열심히 나뭇잎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그 부근을 지나가던 바다의 밀렵꾼들이 사슴을 발견했습니다. 밀렵꾼들은 사슴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바다 쪽으로 향한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슴은 아무런 위험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나뭇잎을 먹었습니다.

밀렵꾼들은 가까이 다가와서 사슴을 향해 화살을 쏘았습니다. "이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지?" 애꾸눈 사슴은 깜짝 놀라서 몸을 피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애꾸눈 사슴은 화살을 맞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으로 억울한 일이구나. 나는 육지 쪽이 위험할 줄 알고 그쪽을 조심하고 바다 쪽은 위험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놓았는데, 오히려 바다 쪽이 더 위험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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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꾸눈 사슴은 육지만 경계하다가 밀렵꾼이 바다 쪽에서 올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해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습니다. 때때로 위기는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곳에서 발생합니다. 우리는 항상 모든 위험에 미리 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위기가 찾아오니까요.

과거에 쌓아온 기록이나 경험에만 의존해 기존의 방식을 고집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예측 불가능한 위기와 예측 가능한 위기

위기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위기와 예측 가능한 위기입니다. 예측 가능한 위기야 얼마든지 대비를 할 수 있으니 그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습니다.

그럴 듯 하게 포장된 ' 위기설'이 종종 나돌지만 현실화하지 않은 채 '설'로 그치는 것은 사람들이 충분히 대비하기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고된 위기는 위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예측 불가능한 위기입니다. 이게 진짜 위기입니다. 애꾸눈 사슴의 경우처럼 돌발적 상황이라 꼼짝없이 당하고 맙니다. 잘 굴러가던 경제에도 가끔 부지불식간에 위기가 어느날 불쑥 찾아와 나라를 곤경에 빠뜨립니다. 요즘은 전세계적으로 경제의 개방화가 진행되면서 한 나라에 발생한 사건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기업들이 장사를 잘하는 일 못지 않게 '위기관리'를 중요한 경영전략으로 삼고 있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경제용어 중에 '블랙스완'이란 말이 있습니다. 블랙스완은 우리말로 검은 백조란 뜻입니다. 검은 백조는 모든 백조는 흰색이라는 인식 때문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 또는 '고정관념과는 전혀 다른 어떤 상상'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서양 고전에서 사용하던 용어입니다. 그러나 17세기 한 생태학자가 실제로 호주에 살고 있는 검은 백조를 발견함으로써 그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상황이 실제 발생하는 것'이란 의미로 변한 것이지요.

블랙스완이 금융계에 널리 회자된 것은 레바논 출신의 금융전문가 나심 니컬러스 탈레브가 2007년 『블랙스완』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면서입니다. 탈레브는 블랙스완의 속성을 3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나타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일반의 기대와 벗어나는 '통계적 극단값'이 존재합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사건이나 사고라는 의미입니다. 둘째, 파괴적입니다. 블랙스완이 출현한 그 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파급돼 글로벌 경제를,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셋째, 블랙스완이 출현하면 그제서야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느라 법석을 떱니다.

최초의 블랙스완 사건은 1929년부터 시작된 대공황입니다. 그해 10월24일 뉴욕증권거래소를 강타한 주가대폭락은 미국 경제를 불황속으로 밀어넣었고, 이어 1933년말까지 거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여기에 말려들면서 전세계적인 대공황으로 번졌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는 겉으로는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만성적인 과잉생산과 증시 과열로 경제에 거품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는데, 이것이 주가대폭락을 부른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주가폭락은 경제의 각 부문에 파급되면서 물가 급락, 생산축소, 기업 도산, 실업자 급증 등 10여년 동안 세계경제를 마비시켰습니다. 특히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3년에는 미국 근로자의 30%인 1500만명의 실업자가 쏟아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덮친 블랙스완

우리나라가 블랙스완의 공격 대상이 된 적도 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우리 경제에 1997년 위기가 닥쳤습니다. 그동안 기업들이 외국에서 무리하게 돈을 빌려 몸집만 키웠고, 정부는 외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때마침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도 외환위기를 겪고 있었는데, 이에 불안해 하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갑자기 보유주식을 팔고 투자자금을 빼내가는 바람에 주가가 폭락하고 외환 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외환이 부족하니 외국에서 빌린 돈을 제때 갚지도 못하고, 물건을 만들 원료를 수입할 수도 없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지요. 나라의 경제가 휘청거리자 문을 닫는 기업과 공장이 늘어나고 직장에서 쫓겨나는 사람도 많아졌어요. 대기업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던 신화도 이때 깨졌습니다. 결국 우리나라는 국제 통화 기금(IMF) 부족한 외환을 빌리고, 관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영향으로 금리가 치솟고, 많은 기업이 외국인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이걸 'IMF사태', 또는 '환란'이라고 부릅니다.

IMF의 권고에 따라 기업들은 문어발처럼 벌인 사업을 정리하고, 중심이 되는 사업에만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투자하도록 설득에 나섰고요. 국민들은 금 모으기 운동을 벌여 정부의 외환 보유 늘리기에 힘을 보탰습니다. 한국의 금모으기 운동은 외국 신문에 크게 보도되면서 국제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 덕분에 우리나라는 2001년에 IMF를 졸업했고, 나라 경제도 되살아났습니다.

이밖에 1987년 10월 '검은 월요일', 2000년 3월 IT버블 붕괴, 2001년 '9·11'테러, 2008년 9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2012년 6월 유럽재정위기, 2020년 3월 코로나19 사태,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경제를 마비시킨 굵직한 블랙스완 사건입니다. 그러고 보니 2000년대 들어 블랙스완의 출현이 잦아진 것은 주목할 만 합니다. 이 시기엔 글로벌 경제의 국제화·동조화가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각국 경제의 칸막이가 낮아지거나 제거되면서 한 사건의 파장이 빠르고 넓게, 그리고 깊게 퍼져나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국제화는 블랙스완이 자라는 토양을 제공한 셈입니다.

예측이 불가능한 블랙스완과 달리 예측이 가능한 위기도 있습니다. 이걸 '회색 코뿔소'라고 합니다. 회색 코뿔소는 지속적인 경고로 인해 사회가 인지하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해서 발생하는 위기를 뜻합니다. 코뿔소는 덩치가 커서 멀리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멀리 있다고 생각하면 무시하게 됩니다. 가까이 왔을 때 피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코뿔소가 달리기 시작하면 땅이 흔들릴 정도입니다. 코뿔소와 부딪히면 위험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피하려고 하지만 다가오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두려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세계정책연구소(WPI) 소장인 미셸 부커가 2013년 다보스포럼에서 회색코뿔소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습니다. 가파른 물가 상승, 금리 인상, 가계 부채, 경기 침체,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국민연금 고갈 등은 누구나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는 위기입니다.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급하지 않다고 미루어 놓았다가 위험이 현실화하면 감당하기 힘든 '회색 코뿔소'가 되는 것이죠.

블랙 스완과 회색 코뿔소는 서로 성격이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거품이 잔뜩 낀 경제에 찾아옵니다. 경제의 거품은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투자자산이 일으킵니다. 경기가 좋아지면 시중에 돈이 넘쳐나게 됩니다. 언론이나 주위에선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면서 사람들의 탐욕에 불을 지릅니다. 너도 나도 돈을 싸들고 부동산 시장과 증시로 몰려들어 과열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아파트값과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습니다. 경제의 거품은 이런 식으로 형성되는데, 거품이 낀다는 것은 위험이 차곡차곡 쌓여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선 조그만 악재도 충격파를 몰고와 결국 거품이 '펑'하고 터지고 맙니다. 거품이 끼는 도중에 조심하라는 징후가 나타나긴 합니다만 사람들은 탐욕에 취해, 또는 무사안일에 빠져 무시하다가 꼼짝없이 당하게 됩니다.

판이 바뀌는 과도기적 현상

어쩌면 블랙스완과 회색 코뿔소는 한마디로 과도기적 현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전까지 벌여왔던 판이 돌출 악재를 만나 깨지고 새판이 짜여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상처가 난 자리에 새살이 돋는 인체의 자연치유 능력을 닮았습니다.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이 끝난 1939년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만신창이가 된 한국경제는 IMF를 거치면서 건강한 몸으로 거듭났습니다. 2020년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코로나19사태는 얼굴을 맞대지 않고 경제활동을 하는 '비대면 경제'의 탄생을 불렀습니다.

판이 바뀌면 게임의 룰도 바뀝니다. 이때 과거에 쌓아온 기록이나 경험에만 의존해 기존의 방식을 고집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다윈의 '적자생존'은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입니다. 즉,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은 도태되고, 바뀐 룰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살아남고 승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블랙스완과 회색 코뿔소는 위기를 부르지만 한편으로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1997년 IMF 사태나 2008년 금융 위기 때 상당수의 중산층이 몰락하고, 빈부 격차가 크게 벌어졌습니다. 주가 폭락 속에서도 주식을 사들이는 사람도 제법 많았습니다. 이들은 금융 위기 직후 증시가 빠른 속도로 회복하면서 신흥 부자로 등장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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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서명수 이코노텔링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서 20년 넘게 금융·증권 분야를 취재, 보도하면서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산리모델링센터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여러 매체에 금융시장, 재테크, 노후준비 등의 주제에 관해 기고도 했다. 저서로는 <이솝우화로 읽는 경제이야기>, <2012 행복설계리포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공저)>, <누구나 노후월급 500만원 벌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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