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조에서 4타 뒤진 고진영의 '인내 그리고 인내'… 세계1위 되 찾은 역전샷
시즌 네 번째 LPGA 메이저대회인 에비앙챔피언십의 4라운드가 열리는 프랑스 에비앙리조트는 하루종일 비가 왔다. 이따금씩 비가 가늘어지기도 했으나 우중 골프였다. 경기도 두 시간여 지연됐다. 결국 이 비는 승부를 가른 하늘의 조화였다.

그린이 부드러워졌고 물을 머금은 페어웨이는 장타자보다 정교한 샷에 더 마음을 열었다. 마지막 날 챔피언조에 편성된 ‘한국 낭자 3인방’은 누가 우승해도 그럴만한 자격을 갖춘 LPGA 톱 플레이어다. 고진영은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ANA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을 해 호수에 몸을 담궜다. 박성현 역시 올시즌 2승을 기록하고 있는데다 다른 메이저대회에 비해 비교적 짧은 코스인 에비앙에서 통산 메이저 3승을 이룰 준비가 돼 있었다. 파 5에서 누구보다도 버디 이상의 기록을 써낼 선수로 꼽혔다. 김효주(15언더)에 한 타 뒤진 채 2위로 최종라운드에 나선 만큼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김효주는 어떤가. 비록 올해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 준우승 한차례를 포함해 꾸준히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그는 5년전에 이미 이 대회에서 백전노장 캐리웹(호주)을 누르고 우승을 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는 “에비앙 코스는 편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의 여신’은 챔피언조에서 가장 타수가 밀린 11언더파의 고진영에게 미소를 보냈다. 1번과 2번홀에서 연거푸 보기를 범한 박성현은 초반부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빗속이어서 장타마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볼의 궤적은 멀리 나갔으나 볼은 힘없이 페어웨이에 박혔다. 러닝이 없었다.
결국 14번째 파3홀이 승부를 갈랐다. 그 때까지 선두를 좀처럼 내주지 않았던 김효주는 트리플 보기(파3에서는 속칭 양파)를 범해 속절없이 고진영에게 1위자리를 내줬다. 얄궂게도 김효주의 볼은 벙커 가장자리 깊숙히 박혀 정상적인 샷이 어려운 곳에 떨어졌다. 거기다 주말 골프들이 이야기하는 ‘계란 후라이’모양으로 똬리를 틀었다.
탈출이 급선무였지만 김효주는 그린을 정조준하는 회심의 샷을 날렸다. 하지만 벙커 위 끝자락에서 맴돌던 볼은 벙커로 미끄러지며 귀환했다. 세번째샷으로 그린에 올렸지만 김효주의 퍼팅은 속도와 방향에서 길을 잃었다. 쓰리 펏으로 홀을 떠나야 했다.
샷의 구질이 다르고 경기운영 패턴이 다른 세 사람이 서로를 너무 의식한 탓인지 선두와 네 다섯차로 밀렸던 중국의 펑샨샨이나 미국의 제니퍼 컵초에 하마터면 우승컵을 넘길 뻔했다. 특히 펑샨샨은 18번홀에서 충분히 버디를 낚을 수 있는 거리에 세번째 샷을 올려 놓아 심야에 위성중계를 지켜보던 국내 팬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세 사람이 선두를 주고 받는 사이 먼저 홀아웃한 이들은 연장전을 준비하는 듯한 모습을 중계 카메라는 자주 비춰줬다.
하지만 고진영의 ‘부처님 샷’은 흔들리지 않았다. 어떤 위기상황이 오더라도 동요하지 않는 그를 가리켜 동료들은 ‘부처님’이라고 부르곤 했다. 17번홀에서 10미터가 넘는 롱퍼팅을 성공시켜 ‘G2’와의 타수를 두 타차로 벌려놓았다. 마지막 홀은 짧은 파5다. 무리하지 않고 예기치 않은 실수만 나오지 않으면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다. 전인지가 2016년에 우승할 때도 그랬다.
그렇게 18홀에 다가선 세 한국 낭자는 치열한 승부를 뒤로 하고 마지막 마무리에 들어갔다. 우승이 물 건너 간 것으로 생각했을 법한 박성현은 세컨 샷으로 투온을 노렸다. 거리는 충분했지만 그린 오른쪽 개울가 옆에 있던 꽃밭으로 공은 숨어버렸다. 박성현은 경기위원을 불러 꽃밭에서 공을 쳐도 되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꽃 가지의 허리를 휘돌아 감는 샷을 날렸다. 지난해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16번홀에서 수초에 잠긴 공을 올려 파세이브를 했던 샷이 떠 올랐다. 그 샷으로 그는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가 우승을 했었다.
김효주 역시 평상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세번째 샷을 홀 1.5미터 거리에 붙여 버디를 기록해 기어코 공동 준우승을 캐냈다. 이 세 선수들이 각각 조를 달리해 마지막 라운드에 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은 ‘에비앙 2019’대회였다. 김효주와 고진영은 동갑내기였고 함께 국가대표로 뛰었던 사이다. ‘우정과 경쟁’이란 숙명적인 이들의 관계를 에비앙의 비는 알았을까. 이 세선수는 나란히 이번주 말(8월1일)에 열리는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오픈에 참여하기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내년엔 링크코스에서 열리지만 이번엔 비바람이 없는 내륙 코스에서 올 시즌 매이저 대회의 대미를 장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