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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과 재떨이 깨며 협상한 '타이거 박' 별세
日과 재떨이 깨며 협상한 '타이거 박' 별세
  • 이기수 이코노텔링기자
  • 0-ing58@hanmail.net
  • 승인 2019.07.25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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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서 전 통상산업부 차관, 80세 일기로 필리핀서 운명
은퇴후 "남을 위해 살겠다"며 필리핀 원주민과 동거동락

공직자에서 기업인으로, 말년에는 필리핀 원주민에 봉사하는 사회사업가로 '인생 3모작'을 한 박운서 전 통상산업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24일 새벽 5시 필리핀 마닐라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0세.

박운서 전 통상산업부 차관이 별세했다. 고인은 공직퇴임후 LG그룹에서 일하다가
박운서 전 통상산업부 차관이 별세했다. 고인은 공직퇴임후 LG그룹에서 일하다가 "남은 인생 남을 위해 봉사하겠다"며 필리핀으로 떠나 현지 원주민들과 지내다가 필리핀의 병원에서 운명했다.

고인은 생전에 '타이거(Tiger) 박'으로 불렸다. 옛 상공부 통상진흥국장 시절 얻은 별명이다. 1983년 도쿄에서 일본과 무역협상을 벌일 때 재떨이를 깨뜨릴 정도로 격론을 벌이며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고 일본 언론이 붙여줬다.

공교롭게도 국제 통상규범에 어긋나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나라 안팎이 어지러운 시기에 대일 통상협상장을 호랑이처럼 주무르던 '타이거 박'이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2015년 필리핀에서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생긴 폐·신장 기능 이상과 섬망증으로 투병해왔다.

1939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대구 계성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행시 6회에 합격해 1968년 옛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청와대 경제비서관과 공업진흥청장을 지냈했고, 95년 통산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28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쳤다.

공직을 떠난 뒤 공기업이었던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사장을 거쳐 고(故) 구본무 회장의 요청으로 LG그룹에 몸담았다. 적자에 허덕이던 데이콤 회장을 맡아 흑자 회사로 탈바꿈시킨 뒤 2003년 말 은퇴했다.

은퇴 이후 고인은 여느 고위 공무원 출신과 다른 길을 걸었다. 필리핀 오리엔탈 민도로섬에 사는 원주민인 '망얀족' 돕기에 헌신했다. 민도로섬은 마닐라에서 차로 두 시간, 배로 세 시간을 가야 닿는 오지다. 망얀족 거주지는 다시 서너 시간을 더 가야 하는 오지 중 오지다.

2005년 필리핀으로 떠나기 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이제까지는 나를 위해 살았지만 남은 인생은 남을 위해 살겠다"고 말했다. 앞으론 자신을 '타이거 박'이 아니라 '언더우드 박'으로 불러 달라는 농담도 했다.

그 후 10여년 동안 필리핀 밀림에서 촌로처럼 생활했다. 15ha의 땅을 사서 벼농사를 지었다. 농작물 재배법을 공부해 시행착오 끝에 연간 4000여 가마를 수확했다. 이것으로 망얀족 아이들 밥을 먹이고, 교회 14곳을 세웠으며, 망얀족에게 농사법을 가르쳤다.

2015년 필리핀 현지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트럭이 전복되면서 언덕을 굴렀다. 구겨진 차체 조수석에서 그를 끌어냈지만 하반신 곳곳에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현지 병원 의료진은 괴사한 그의 발가락을 절단했다. 의식불명인 채로 서울로 후송됐다. 가까스로 의식은 찾았지만 양쪽 무릎과 정강이에 철심이 박히고, 요도에는 평생 달고 살아야 할 도뇨관이 달려있었다. 오른발은 엄지발가락뿐이었다. 그나마 그 하나 남은 엄지발가락 덕분에 목발을 짚고 설 수 있었다. 힘들게 몸을 추스른 그는 다시 필리핀 원주민에게로 돌아갔다.

고인은 2015년에 쓴 책『네가 가라, 내 양을 먹이라』에서 필리핀 봉사생활을 '은혜와 축복'이라고 적었다. "만약 내가 여기 오지 않았다면 정치판에 뛰어들었거나 자유경쟁의 논리를 부르짖다 보수꼴통으로 몰렸거나 장관 자리 맡아보려고 주책을 떨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이 은혜와 축복을 하나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2005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그는 "미친 듯이 일했으며 내 브랜드를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공무원 시절을 회고했다. 그러면서 후배 공무원들에게 따끔하게 말했다. "과거에는 사명감에 불타 윗사람하고 부딪치기도 했는데…. 요즘은 10년 후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대신 코드 맞춰가며 높은 자리에 오를 생각만 하는 것 같아."

유족은 부인 김옥자씨와 아들 찬준·찬훈·찬모씨가 있다. 빈소는 고인의 유해가 국내로 운구되는 27일쯤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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