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에 물든 구름, 시시각각 다른모습 연출
여름밤 한기(寒氣)… 긴 팔 입고 자도 추워

7시가 넘어 호텔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예약한 관광버스를 타고 초원관광에 나섰다. 오늘 행선지는 후허하오트에서 약 1백km 떨어진 시라무런 초원이다. 비가 온다. 내몽골은 대부분 사막 및 초원지대이고 건조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일텐데 여행 도중에 이 상식이 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6월28~29일)

어제 박물관을 갈 때도 택시기사가 이곳의 수자원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였다. 수재도 없지만 한재도 없다는 것이다. 내몽골지역은 워낙 넓은데다 지역적인 편차가 크고 사람이 집중 거주하는 도시지역에는 비교적 물 사정이 좋으리라 짐작해보았다. 초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내내 하늘이 흐리고 간혹 비를 뿌렸다. 초원에 도착한 후 방을 배정받았다. 1인용 침상 3개와 화장실과 세면대도 실내에 설치되어 있다. 방 배정을 마치고 바로 점심식사시간이다. 대형 빠오안에 마련된 식당에는 8인용탁자가 여럿 놓여있다. 이곳에서 주는 점심식사에는 밥과 8가지 채소요리가 나왔다. 비계덩어리 위주의 돼지고기요리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된다.
초원에 대한 인상은 한마디로 실망스러웠다. 대지에 자라나고 있는 풀은 우리가 기대한 초원의 양탄자와 같은 풀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우선 풀의 길이가 수cm나 될까 말까 아주 짧고, 풀이 자라는 면적보다 그냥 맨살을 드러낸 누런 흙의 대지가 훨씬 넓게 퍼져있다. 그나마 시야를 먼거리에 두고 넓은 지역을 압축해서 보면 고동색의 대지와 드문드문 자라는 풀이 겹쳐져 녹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황토색도 아닌 중간의 색상을 감상하게 된다.

마음속에 품었던 푸른 녹색의 풀의 상태보다는 끝없이 펼쳐지는 광대무변의 낮은 구릉과 평지가 주는 속이 시원해지는 탁 터지는 개방감이 감동을 주었다. 식사를 한 후 풀밭을 3,4시간 걸어보았다.

몇 시간을 걸어도 그 풍광이 그 풍광인 가운데 곳에 따라서는 풀이 밀식되어 제법 초원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곳도 있었다. 아주 좁은 시야에서 빌딩이나 주택 숲에서 살아온 일행들은 광대한 평원이 주는 감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여러 시간을 걸어도 피곤을 느끼지 못했다. 도시인들에게 초원체험은 제법 특별한 경험이었다. 일몰 장면도 장관이었다. 석양이 붉게 물들면서 시시각각으로 태양빛이 반사된 구름의 모습이 붉은 기운을 띤 채 바뀌는 것이 재밌고 색다른 구경거리였다. 밤은 좀 추웠다. 이곳을 온 시간이 가장 더운 여름철이었지만 초원의 밤은 여름이 아니었다. 긴팔 옷과 긴팔 셔츠를 입고 긴바지를 입은 채 이불을 덥고 잤는데도 추운 듯한 느낌이 밤새 지속되었다.

다음 날 아침 속이 불편하여 식사를 거르고 초원을 떠나 사막으로 이동하였다. 온 길을 되돌아가 후허하오트를 통과하여 빠오토우쪽으로 이동하여 작은 사막에 도착하다. 사막은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했고, 저녁 8시쯤 후허하오트로 돌아오다.
저녁 식사후 후허하오트 가장 중심가의 맥도날드점에서 제대로 된 아메리카노 커피를 머그잔에 마시면서 일박이일의 초원과 사막여행의 여독을 달랬다. 판매카운타의 어린여자 직원은 내 말투가 자신들의 한족과 다르다고 생각해서인지 몽골족인지 아니면 일본인인지를 묻는다.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갑자기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것저것 많이 물어온다. 이 가게에도 한국학생들이 많이 온다며 묻지 않는 얘기도 술술 잘 한다. 어느 곳을 가나 중국에서 한국의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이런 중국인들의 호의가 길게, 길게 지속되어야 할텐데. 이제 내일이면 북경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두 명의 친구와 작별하고 다시 혼자 동북 특히 흑룡강지역을 20여일 여행하게 된다.